
Hansun Brief 통권365호
1. 문제 제기
2. 비핵적 제한전과 비확산 제한전
3. 핵확산과 비확산의 전략적 교차점
4. 한국의 비핵 억제전략과 핵 억제전략
1. 문제 제기
2025년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에 대해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단행하여 중동 전선의 확전을 열었다. 전쟁은 미국의 전격적 개입을 계기로 발발 12일 만인 6월 23일 휴전 합의로 일단락되었다. 가자지구와 달리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적국의 핵 능력을 제거할 수 있다는 실증적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정치적·전술적으로 모두 성공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핵확산 야망국들에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핵무장을 완성하지 못한 국가는 외부의 군사적 공격에 취약하지만, 반대로 북한처럼 핵을 완성한 국가는 외세의 침공을 억제하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특히 북한은 이번 사태를 통해 핵 능력을 고도화할수록 체제는 더욱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방어선뿐만 아니라 천하무적(天下無敵)의 공격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정치적 신념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수행한 ‘비확산 제한전’이 가지는 전략적 특성과 그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핵 안보 질서에 던지는 함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2. 비핵적 제한전과 비확산 제한전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재래식 무기로 공격한 이번 작전은 국제 안보 지형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순한 재래식 군사작전인가. 아니면 핵전쟁의 일환인가. 이번 공습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는 아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1981년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 2007년 시리아의 알키바르 원자로에 대한 전술적 타격을 통해 ‘비확산 선제공격’이라는 독자적 교리를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은 그 연장선에서 수행된 것으로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적국의 핵개발 능력을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금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공격자(이스라엘)는 이미 핵보유국이고 상대국(이란)은 핵개발국임을 고려할 경우이다. 이것은 한국이 핵개발에 착수할 경우, 핵무장국 북한이 이를 사전 제거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스라엘과 유사한 선제공격 전략을 취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물론 북한이 미국의 보복 공격을 감내할 역량이 있을 경우의 시나리오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핵적 제한전’(Non-Nuclear Limited War)이자, 이란의 핵확산을 저지한다는 목적에서는 ‘비확산 제한전’(Limited War for Non-Proliferation)의 성격을 가진다. 전면전을 회피하면서도 명확한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략적 제한전’의 전형이다. 제한전이란 수단과 범위, 목표를 의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남겨두는 전쟁 방식이다. ‘제한 핵전쟁’(Limited Nuclear War)은 핵무기를 제한적·국지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으로 전면 핵전쟁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번 이스라엘의 작전은 ‘제한전’과 ‘핵 억제전략’의 복합전 차원에서 수행된 성공적인 사례였다. 한편, 이번 작전은 핵무기의 가공할 효과를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였다. 이스라엘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란에 강력한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으며, 그 결과 이란은 실질적 반격을 자제하고 형식적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공포의 핵’을 뒷배에 둔 이스라엘의 억제력과 강제력의 승리, 그것이 바로 이번 전쟁의 또 다른 전략적 의미이다. 1946년 저서 『The Absolute Weapon: Atomic Power and World Order』에서 브로디(Bernard Brodie)의 표현대로 “핵무기의 진정한 효용은 그것이 ‘사용되지 않을 때’ 발휘된다”라는 핵억지 이론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NPT(핵확산금지조약) 비가입국이며, 핵보유 여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NCND, Neither Confirm Nor Deny)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가 과연 국제 비확산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의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의 정당한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6월 21일 이란 핵시설을 정밀 타격했다. 이번 전쟁에 미국은 ‘반확산·반테러’라는 국가안보전략의 최고 명분을 부여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외교적 정당성도 뒷받침했다. 그리고 미국은 중동에서 신속하고도 결정적인 전력을 투사함으로써 중국-러시아-북한의 또 다른 전체주의 3축에 대해 제국으로서의 강력한 패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요컨대 이번 전쟁은 자유 진영인 이스라엘과 미국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핵공포를 통해 전쟁을 단기간에 종결하려 했던 푸틴의 전략이 장기전에 빠진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면전과 대조된다는 점에서도 국제 안보에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핵의 ‘비사용’을 통해 억제를 실현한 반면, 러시아는 핵의 ‘사용 위협’을 앞세운 강압과 공갈로 오히려 억제 실패와 전쟁의 장기화를 자초했다. 핵 없는 이란이 미국과의 직접 충돌을 회피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미국을 포함한 NATO 동맹군의 핵보복 능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전략적 차이를 낳는 요인이었다. 결국 이번 중동전과 유럽전은 핵무기의 억지 효과가 어떤 정치적 조건과 국제 연대 속에서 실현되느냐에 따라 상이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조적 사례라 할 수 있다.
3. 핵확산과 비확산의 전략적 교차점
핵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비확산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다. 자발적 포기, 외교적 협상, 군사적 강제력 등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비확산은 추구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일관되지 않았다. 비확산이 국제사회에 새롭게 편입되는 기회의 창이 되기도 했지만, 반드시 안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또 다른 교훈도 남겼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자.
① 남아공 사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80년대 자체적으로 최소 6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사실이 밝혀졌다. 1989년 냉전 말 남아공은 외부의 압박이나 협상 없이 스스로 자진해서 핵무기를 폐기했다. 백인 소수 정권이 흑인 다수 국민을 분리 차별하는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체제 종식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후 남아공의 정권 교체와 민주화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지금까지 핵 역사에서 자체 핵보유국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유일한 사례에 해당한다.
② 이라크 사례
반미-반이스라엘의 가장 선봉적인 국가였던 이라크의 핵확산 야망은 두 차례의 군사적 공격을 자초했다. 첫 번째는 1981년 이스라엘의 오시라크 공습이다. 1970년 중반 사담 후세인 정권은 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오시라크(Osirak)라는 연구용 경수로 원자로를 도입했지만,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모색 중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자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1981년 6월 7일 전폭기 8대를 투입해 해당 시설을 선제공습했다. 이 사건은 최초의 비확산 선제타격 사례로 기록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주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라크의 핵개발 계획을 최소 10년 이상 지체시켰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를 토대로 자국 안보를 위한 선제 비확산 교리인 ‘베긴 독트린’(Begin Doctrine)을 공식화했다. 적성국이 핵개발을 시작했거나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외교나 협상보다 군사력이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담 후세인 정권의 비밀리에 핵·생화학무기 개발을 지속하려 했다는 정황이 국제사회에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핵확산 야망과 테러 지원 국가로서의 위험성을 이유로, 핵무기를 보유한 이라크를 용인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 아래 ‘예방적 전쟁’(preventive war)의 논리를 동원하였다. 유엔 무기사찰단은 WMD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미국은 다국적군과 함께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WMD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침공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외 정당성에 심대한 손상을 초래했다. 동시에 비확산을 명분으로 한 군사행동이 정보의 불확실성과 국제적 정당성 결여 속에서 감행될 경우, 오히려 국제질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1981년 오시라크 공습이 정밀하고 제한된 범위의 비확산 군사행동의 성공 사례였다면, 2003년 이라크 침공은 정보 기반이 불확실한 예방 전쟁이 전략적으로 실패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두 사건은 군사력을 통한 비확산 조치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 특히 명확한 정보, 국제적 공감대, 제한된 목표 설정 없이 감행되는 비확산 군사행동은 오히려 신뢰의 위기와 질서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③ 시리아 사례
2007년 이스라엘은 시리아 동북부 사막에서 북한의 지원 아래 건설 중이던 원자로를 공습해 완전히 파괴했다. ‘알키바르 작전’으로 불리는 이 공격은 이스라엘의 선제 비확산 전략인 ‘베긴 독트린’의 실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시설은 북한의 영변 원자로와 유사한 흑연감속로 형태로 플루토늄을 통한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구조였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시리아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도 없이 핵시설을 은폐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시리아 간 핵확산 협력의 물적 증거라고 판단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공습을 사실상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 알키바르 공습은 이스라엘의 ‘선제 비확산 교리’가 일회성이 아닌 일관된 안보 원칙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북한의 핵기술이 중동으로 확산하는 경로를 차단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④ 리비아 사례
리비아는 핵개발을 추진하던 중 2003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제재 해제와 체제 인정 그리고 관계 정상화 등을 조건으로 핵 및 WMD 프로그램의 전면 포기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이라는 거센 민주화 물결로 인하여 리비아 역시 내전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유엔과 NATO의 개입 속에 카다피 정권은 붕괴하였다. 리비아는 핵을 포기했지만, 정권이 붕괴함에 따라서 국제비확산체제의 신뢰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북한은 리비아 사례를 생존전략의 교훈으로 여겼다. 김정은 정권은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도 “우리는 리비아처럼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했고, 핵을 포기하면 곧 정권 교체 대상이 된다는 인식이 깊게 각인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북한이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체제 생존의 보루로 간주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사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은 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자국 영토에 남겨진 구소련의 전략핵을 보유한 경우였다.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라는 핵 협상을 통해 미국·영국·러시아의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조건으로 3국 모두 핵을 완전히 반납하였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이어서 2022년 전면 침공을 겪으면서 비핵국가의 안전보장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겪어야 했다. 이 경우도 국제비확산체제의 신뢰성과 핵 협상의 실효성을 약화시킨 결정적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제한 핵전쟁’을 감행할 경우, 이것은 인류 역사상 제2차 핵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며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⑥ 이란 사례
이스라엘의 ‘선제 비확산 교리’가 다시 한번 실질적 효력을 발휘한 사례가 바로 이번 이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 작전이다. 이스라엘의 선제 핵시설 타격 ‘시즌3’로 기록된다. 이란은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과 함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하고 우라늄 농축 제한과 사찰 수용 등을 조건으로 제재 완화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JCPOA에서 탈퇴하면서 협상은 파기되었다. 이후 이란은 단계적으로 핵개발을 재개하며 자유 진영과의 긴장은 급속히 고조되었다. 2025년 6월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은 단독 행동이 아닌 미국과의 공동작전으로 수행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제 비확산 교리와 미국의 세계 전략이 완전히 통합된 비확산 전쟁이었다. 그 결과 이란의 핵개발은 수년간 지체되었고 복구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교적 협상의 재개에 응했던 국가가 군사적 선제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이중성과 신뢰성의 의문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협상이 언제든 군사력에 의해 무산될 수 있다는 인식은 핵확산 야망국들의 전략적 계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비확산 사례들은 국제 규범이나 협상만으로는 핵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확산의 성패는 해당 국가의 체제 안정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한 국가는 외부의 군사개입이 없는 한 비교적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한 국가는 일단 신뢰가 무너지면 오히려 더 큰 안보 위협에 노출되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군사력에 의한 강제적 비확산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핵확산의 저지와 전략적 목표 달성에서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북한은 이 모든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핵무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안보 그 자체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한 국가는 외부 개입으로 체제가 붕괴한다는 결론을 정치적 신념으로 받들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핵 없는 평화’라는 비확산 전략은 단순한 외교적 선언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상대에게 실질적인 억지 수단을 갖춘 전략적 설득력과 강제력 그리고 신뢰성이 함께 작동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
4. 한국의 비핵 억제전략과 핵 억제전략
1970년 발효된 NPT 체제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을 ‘공식 핵보유국’(NWS: Nuclear Weapon State)으로 규정하고, 그 외 서명국은 ‘비핵보유국’(NNWS: Non-Nuclear Weapon State)으로 분류한다. 반면 애초부터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사실상의 핵보유국’(de facto nuclear state) 또는 ‘비공식 핵무장국’(de facto nuclear power)으로 간주된다. 여기에 1985년 NPT 가입 후 2003년 탈퇴를 선언하고 2006년 최초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도 포함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국제전략연구소(IISS) 등 주요 기관에서 이러한 비공식 계열의 위상을 인정하고 있다.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는 과거 핵개발을 추진했으나 외부의 개입으로 좌절되었고, 현재 국제사회에서 IAEA 사찰 하에 ‘핵개발국’(nuclear-developing state)으로 실질적으로 관리되는 국가는 이란이 사실상 유일하다. 물론 핵개발의 재기를 노리는 국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 독일, 한국, 브라질 등은 모두 독자적인 핵연료주기 기술을 보유했거나 개발 중인 국가들로 단기간 내 핵무장이 가능한 ‘핵잠재국’(nuclear-latent state)으로 분류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 기술적으로 핵연료주기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막강한 재원을 바탕으로 언제든지 핵잠재력을 갖출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한국은 농축과 재처리 능력의 확보 여부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핵잠재력 국가인 일본과 대등한 수준의 능력을 갖출 수 있다. 상기와 같이 규범적·정치적 분류는 복잡한 해석을 수반하지만, 군사적 관점에서는 ‘핵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혹은 ‘언제든 가질 수 있느냐’가 핵 억제력과 생존전략의 본질을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된다.
이번 중동전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중대한 전략적 함의를 던진다. 북한은 현재 최소 50기에서 최대 1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의 단계를 넘어서 핵무기를 실전 배치하고 운용할 수 있는 ‘핵운용국’(Nuclear-operating State)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기존의 외교적 협상이나 확장억제 혹은 3축 체계 중심의 방어 전략만으로는 북한의 핵위협을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이번 작전은 기존 비확산 선제타격 교리를 또다시 실천한 가장 정교한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모델이 한국에 적용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한국은 이스라엘같이 핵보유국이 아니고, 북한은 이란과 같은 핵개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모델을 참조하지만, 한국은 비핵보유국의 억제전략이 가질 수 있는 한계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전략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북한의 핵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재래식 수단으로 선제타격(Kill Chain),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이라는 ‘3축 체계’를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실전 핵보유국이 된 상황에서 이 체계는 전술적 대응일 뿐 전략적 설득력이나 본질적 억제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억제전략의 수단과 목적을 재정립하고, 실질적이고 대칭적인 억지력을 갖춘 국가안보전략의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3가지 방략을 제안한다.
첫째, 비핵 억제전략의 정밀화와 전략적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다.
북한의 핵거점과 운용 인프라에 대한 정밀 타격 능력을 실전 수준으로 구체화하고 사이버전, 전자전, 위성 기반 감시체계 등 비대칭 전력을 융합한 선제·예방적 억제방안을 더욱 정교하게 구축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가 동북아 안보 질서를 위협하는 실질적·구조적 도전행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정당한 자위권’에 기초한 안보 조치라는 외교적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핵 억제전략은 본질적으로 비대칭 구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재래식 기반의 정밀 타격만으로 핵무기를 실전 배치한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난망하다. 따라서 비핵 억제전략은 필수적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전략자산과 연계되지 않는다면 생존 가능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둘째, 간접 핵 억제전략인 미국의 ‘핵우산’ 강화이다.
한국의 핵안보 자산인 미국의 ‘핵우산’(nuclear umbrella)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기 시 실제로 ‘펴질 수 있는 우산’으로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자국으로의 북한의 핵공격을 감내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핵우산의 신뢰성은 확보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추가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한국 방어를 위한 전략자산으로 미국의 핵잠수함(SSBN)을 신규로 건조하여 한반도에 상시 배치하되 한미가 공동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이 참여함으로써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높이고 비용을 분담함과 동시에 한미 간 전략산업의 협력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이 독자적인 핵잠수함 건조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확장억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억제 역량의 자율성을 확대함으로써 동북아 핵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한국의 생존과 안보 위상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조속히 개정하여 한국의 핵연료주기인 우라늄 농축 및 플루토늄 재처리에 대한 기술적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핵잠재력의 완전한 기반을 확충함과 동시에 확장억제 체제의 비대칭 구조를 보완하는 조치이다. 그리고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핵무장 옵션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실질적 토대가 된다. 궁극적으로 핵주권의 확보는 원자력 기술 보완을 넘어 국가안보체제의 자율성과 직결되는 핵심 자산이다.
세 번째는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 일본, 대만에 공동 배치하고, 유사시 이를 각국 방어에 운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의지를 명확히 천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중·러 3국이라는 핵보유국에 대응하여 자유 진영의 ‘핵 억제 밸트’를 새롭게 구축하는 전략적 구상으로, 일종의 ‘동북아판 NATO’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핵전략가인 볼슈테터(Albert Wohlstetter)가 언급했듯이 억지(deterrence)는 쌍방이 상대방의 핵보복능력을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을 때만 성립한다.역내 자유 진영 역시 북중러에 대해 상호확증파괴(MAD)의 조건을 갖추지 않는 한 억지의 균형을 이룰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방향만이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해법이며 이를 위해 보다 진전된 형태의 핵공유 모델을 개발·운용해야 한다.
셋째, 한국이 스스로 핵무장을 선택하는 직접 핵 억제전략이다.
이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가장 논쟁적이지만 전략적으로는 가장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북한의 실전 핵무장이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이 독자적 핵억지력을 구축하는 것은 상호 억지의 완전한 대칭성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핵무장론은 점차 현실적 안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70%가 핵무장의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으며 특히 북한의 고도화된 핵위협으로 인해 중도층과 젊은 세대에서도 찬성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이념적으로는 차이가 존재한다. 보수층에서는 압도적 찬성이 많지만, 진보 진영에서는 대체로 신중하거나 반대하는 경향이 높다. 진보 진영은 핵무기를 전쟁과 반평화의 상징으로 인식하며 군비경쟁의 격화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훼손을 우려한다. 따라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핵 없는 평화체제’구축을 선호한다.
보수 진영 내에서는 핵무장의 당위성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 시기와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강경한 독자 핵무장론자들이 있는가 하면, 현재 조건에서는 시기상조이며 오히려 국가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한국이 NPT를 탈퇴할 경우 북한과 같은 ‘핵 문제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으며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물론 한미동맹도 파탄 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제비확산 규범과 동맹 질서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NPT 체제의 수호자인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하거나 승인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이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일본, 대만, 독일 등 다른 비핵국들에도 도미노 효과를 야기해 NPT 체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국제적 우려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이 이미 핵운용국으로 변화되는 현실을 축소하고 미국의 확장억제 실효성을 과대평가하며 NPT 규범의 준수가 자국의 생존 논리보다 우선한다는 입장에 머무른다는 보수 내 비판을 야기한다.
한국의 NPT 탈퇴는 북한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인정할 만한 안보적 비상사태 없이 탈퇴했지만, 한국은 북한의 ‘핵을 통한 적화통일’이라는 실존적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NPT 제10조가 명시한 ‘자국의 최고 이익이 위협받는 비상사태’ 요건을 충족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 따라서 한국의 NPT 탈퇴는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북한의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일정 수준의 외교적 부담과 국제적 압박은 반드시 따르겠지만, 전면적인 국제제재나 한미동맹의 파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북한은 ‘전쟁’과 ‘공격’의 핵무장이라면 한국은 ‘평화’와 ‘방어’를 위한 핵보유인 것이다. 국제사회는 바로 이점을 잘 이해할 것이다.
NPT 체제와 동맹 유지만으로는 더 이상 실질적인 생존과 억제를 보장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세상이 바뀌었다. 핵무장은 이제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핵을 가진 적에 맞서 전략적 비대칭을 해소하고 주권 국가로서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그것은 규범 위반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고 책임 있는 자위권의 행사이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핵 없는 억제전’의 한계를 넘어서 ‘핵 있는 억제전’의 문을 여는 분기점을 마주하고 있다. 핵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준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국가전략이 그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국제안보 질서에서 일국의 안전보장은 스스로 구하는 것(self-help)이지 타국의 자비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은 국제정치의 진리이자 법칙 아닌가. 따라서 국제사회와의 외교적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정부 차원은 아닐지라도 책임 있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그리고 학계와 언론은 핵무장 여부를 둘러싼 전략적 논의를 공개적으로 확장하여 중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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