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Brief 통권324호
1. ‘통일 포기’발언에 담긴 의미
지난 9월 19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기조연설에서 “통일, 하지 맙시다. 남북 모두에게 거부감이 높은 ‘통일’을 유보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합의를 얻을 수 있다”며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말했다. 한반도의 ‘현실’에 맞게 모든 것을 재정비하자면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도 개정하고 국가보안법도 폐지하며 통일부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에 담긴 가치와 정신을 훼손한다. ‘평화’를 위해 ‘통일’을 접고 통일은 후대 세대에게 미루자는 ‘영구분단’의 무책임한 주장이다. 임종석 전 실장의 발언은 최근 ‘통일’을 지우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정책과 맥이 닿아있다. 작년 12월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통일을 포기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돌아서자”고 했다.
통일 포기 발언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다. 통일 포기는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많은 국민을 향한 폭력적 행위와 다름없다. 우리의 미래세대의 꿈을 박탈하는 행위이다. 귀향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탈북민과 이산가족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발언이다.
2. 통일 포기에 따른 폐해
통일을 포기하면 정말로 평화가 찾아올 것인가? 남북한의 문제와 한반도 안보가 해소되고 모든 모순이 사라질 것인가? 오히려 남북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첨예해지고, 한반도의 안보 위험은 더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렵다. 핵을 그대로 두고서는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 평화를 위해 통일을 포기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한반도 평화를 해친다. 북핵이 존재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유지되기 어렵다. 통일을 포기하면 북한의 핵보유 정당성을 마련해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일을 추구하는 전략이 전무한 상황에서 북핵 대비책을 마련할 수 없다.
둘째, 통일이 되지 않으면 분단비용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분단비용은 분단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체의 기회비용을 의미한다. 분단비용은 국방비, 외교 경쟁 비용, 군사적 대치 환경에서 발생하는 국가신용도 하락, 이산가족의 고통, 일상생활의 긴장감 등 분단 상황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가 지출하고 있는 분단관리 비용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낭비적 비용이다. 통일 포기는 이런 분단비용을 계속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셋째, 통일 포기는 우리 국민들의 미래를 박탈한다. 통일한국에서는 진정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창달되어 통일국가로서의 국제위상이 증대된다. 분단체제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은 한계에 도달했다. 통일은 선진일류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제공한다. 통일을 계기로 대한민국은 과거 전무후무했었던 ‘한강의 기적’과 같은 또 한차례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 통일한국은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넷째, 두 개 국가 인정과 통일 포기는 북한 인권 문제의 포기를 의미한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참혹한 인권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주민은 한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두 개 국가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할 명분이 사라진다.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에 우리가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통일 포기는 북한 주민의 참혹한 인권침해를 외면하자는 의미로 보인다.
다섯째, 우리 헌법적 가치에 따라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의 일부분으로 간주해서 탈북민의 수용이 이루어졌는데, 통일을 포기하면 이런 일들을 추진할 수 없다.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탈북민은 우리 동포가 아니라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한국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통일 포기는 인신매매,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탈북민의 고통을 저버리는 행위가 된다.
우리는 헌법적 가치에 따라 북한의 체제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북한 동포들을 억압과 기아로부터 해방함으로써 북한의 황폐화를 차단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통일은 바로 북한 동포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통일 포기는 이런 인간 존엄의 문제를 외면한다.
3. 미래의 꿈인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민족 공동체이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남과 북은 분단될 수 없고 통일이 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에게 민족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주장하는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이다. 오랜 기간 동거동락을 했으며 슬프고 힘들었던 시대에 우리를 생존할 수 있게 만든 바탕이 가족과 민족개념이다. 대한민국은 이런 민족공동체가 중심이 되고, 헌법적 가치에 따라 세워진 통일지향의 국가이다. 분단 이후 모든 사람들의 염원은 통일이다. 미래지향적인 통일의 꿈이 사라지면, 국가의 목표를 상실하게 된다.
김정은은 두 개 국가론을 내세우면서 통일을 포기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무력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온 이유는 북한 주민의 사상적 해이와 체제통제 능력의 와해로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막기 위해서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과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을 제정한 것은 그만큼 내부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한류가 거세게 부는 상황에서 모든 남북 관계를 단절해야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정책 노선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며 반통일노선을 펼치는 지금이 자유민주주의 통일 기반을 다져야 할 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통일 포기론’을 강력히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반헌법적 발상’으로 규정하며 정부의 평화적 자유 통일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갑자기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두 개 국가 인정과 통일 포기’ 주장을 우리 모두 반대해야 한다. 반민족적, 반헌법적 생각과 발언이다. 분단 이후 남북한 주민이 겪은 고통을 외면하고, 북한의 핵무력정책을 포함한 각종 대남, 대외정책에 추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일준비를 차근차근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통일 포기 주장에 우리 사회가 흔들리거나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미래세대에게 꿈을 심어주는 통일운동을 지속해야 할 때이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