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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21세기 한국 대중사회와 참사 후 참사] 통권242호
 
2022-11-10 17:07:38
첨부 : 221110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42호 

홍성기 전) 아주대학교 교수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집단으로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은 매우 크다. 이때 우리 모두가 갖는 애도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피해자와 그 유족들은 더욱 분노가 클 것이다. 이에 책임자 처벌 요구 역시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1. 참사 후 참사현상의 반복

 

201046명의 젊은 군인들이 사망한 천안함 피격 사건, 2014250명의 고등학생을 포함하여 300여 명이 사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바로 이런 종류의 참사다. 이런 참사로 한국 사회 전체가 받은 고통은 매우 크고 아직도 그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20221029, 서울의 중심, 이태원에서 150여 명의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또 일어났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서 일단 예외로 한다면, 세월호 사건과 이태원 참사의 공통점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건 혹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과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로, 여기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의 경우 사건은 이미 발생하였지만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만 하면 정부, 언론, 정치인, 시민단체 등은 큰 분노와 함께 다시는 이런 대형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책임자를 엄벌하고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나아가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과 총리, 장관 등등은 사퇴하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것처럼 또 다시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 한국 사회의 참사 후 반응 또는 처방에 있어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 진상규명 우선의 독일 고속열차 사고

 

199863일 오전 1057, 뮌헨에서 하노버를 향해 출발한 인터시티 고속열차(ICE)는 독일 북부의 작은 마을 에셰대(Eschede) 근처를 지나가던 중에 보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독일 철도청은 객차의 승차감을 높이고 정비를 쉽게 하기 위해 통 쇠로 만들던 바퀴의 중심부를 고무로 채웠다. 이 바퀴의 쇠로 만든 주변 링이 균열로 찢어지면서 객차 바닥을 뚫고 올라왔는데도 다른 쪽은 콘크리트 침목들을 때리면서 달린 것이다. 그러나 전자제어로 운행되는 고속열차의 기관사에게는 망가진 열차 바퀴로부터 아무런 경고 사인도 오지 않아 열차는 시속 200로 계속 달리면서 200톤이 넘는 육교 밑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후미의 열차 한 칸이 결국 문제의 찢어진 바퀴로 인해 탈선하자 객차들이 마치 잭 나이프(Jack knife)처럼 연쇄적으로 접히면서 육교와 충돌하였다. 육교가 주저앉으면서 객차를 덮치고, 객차들 역시 뒤집히고 엉켰다.

 

이 사고로 독일 기술자들의 자부심이었던 고속열차는 흉물로 변했다. 기관차는 객차들이 다 떨어져 나간 후에도 이를 모르고 혼자 달리다 시골의 벌판 한가운데 멈춰섰다. 마을 주민들은 쿵쿵 소리를 들었지만 다시 사방은 조용해졌다. 이렇게 독일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경찰과 소방대의 구조 활동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고속열차의 창문은 망치로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 부상자의 탈출과 구조에 장애물이 되었다. 계속되는 대규모 구조 활동에도 불구하고 101명이 사망하고 70명의 중상자를 포함하여 108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리와 도지사는 다음날인 64일 현장을 방문했고, 대통령 참석 하에 621일 장례식을 치렀다.




 

 

사고 후 2주일이 지난 617일 독일 의회에서 교통부 장관이 잠정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지만, 실제 원인 규명은 프라우엔호퍼 연구소에서 담당했다. 다음 해인 1999년 객실 차장 중 유일한 생존자가 직무유기로 기소되어 재판이 시작되었다. 1번 객실의 한 승객이 찢어진 바퀴가 객실 차량 바닥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3번 객실 차장에게 알린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열차가 육교와 충돌하여 사고가 나기까지 101초의 시간이 흘렀는데 만일 이 사이에 객실 차장이 비상브레이크 레버를 당겼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재판은 정지되었다. 승객이 객실 바닥의 바퀴 관통 사실을 차장에게 부정확하게 알렸고, 따라서 차장이 이런 대형 사고를 예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013월에는 바퀴의 미세 균열과 관련하여 유지?보수를 책임졌던 철도공무원에 대한 소송이 중단되었다. 미세 균열 발견에 필요한 초음파 진단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111월 독일 검찰은 철도청의 주요 책임자 3명을 기소하였고, 다음 해 20028월 첫 재판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철도청이 통 쇠가 아닌 +고무로 만든 바퀴를 고속열차에 도입한 것이 과연 옳았느냐가 핵심이었다. 도입 계기는 객실에 진동이, 특히 식당 칸에서 브루루하는 진동으로 접시와 잔 등이 흔들린다는 승객들의 민원이었다. 다른 한편 프라우엔호퍼 연구소는 쇠 고무 바퀴에는 통 쇠 바퀴와는 달리 미세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더 높다는, 피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2003454번째의 재판이 열린 날, 재판부는 피고 3명에 대해 각각 1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재판을 끝냈다. 왜냐하면 변호인들은 재판정에 동시통역실까지 마련하면서 일본과 스웨덴, 남아프리가 등의 전문가들을 불러 프라운엔호퍼 연구소와는 다른 의견을 제출하였기 때문이었다. 유가족들은 재판부의 결정에 분노하여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제출하였으나 같은 해 8월 재판부의 결정에 헌법 위반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19986월 고속열차 참사 발생 후 2003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르기까지 52개월 동안 책임자 처벌은 사실상 없었다.

 

독일 철도청은 10년이 지나도 이 참사에 대하여 사과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덕적 관점에서의 사과가 법적인 관점에서 혹은 실제의 과실로 이해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철도청장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상자와 유족의 고통을 더 헤아려야 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후임 철도청장은 독일철도청이 객관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사과란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며 독일 사람의 관점에서 보아도 상당히 냉정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대형사고 후 분노와 책임자 처벌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 나아가 책임자 없는 대형 참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하는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대형사고 후에 국가의 우선 과제는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밝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책임자에 대한 법적 소추를 하는 것이다. 독일 에셰대 참사 후에 재판은 사고 발생 후 피의자에 따라 1, 3년 그리고 4년 후에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대형 사고일수록 엄밀하게 그 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에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우선 국민적 분노의 쓰나미 속에서 책임자 처벌이 시작된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도 사건의 원인을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밝혔다는 것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 뒤섞여 있었음을 의미한다.

 

3.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참사 원인

 

이태원 참사는 그 원인 규명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순전히 물리적으로 보자면 한 희생자가 동시에 다른 희생자의 사망에 기여(?)할 수도 있는 다중에 의한 압사 사건이다. 많은 인파가 몰린 것도 어떤 주최자가 있어 기획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년 전부터 젊은이들을 끌어 왔던 유흥가에서 벌어진 축제였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첫 해이기에 MBC는 중계차를 보내 홍보성 뉴스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사건의 경우 사람들이 모이게 된 계기부터 사고의 예측과 예방 그리고 사건의 발생과 피해자의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원인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수년 동안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압사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안전에 대한 낙관적 예측과 함께, 올해는 코로나 해제와 언론들의 홍보로 인해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고 따라서 사고의 위험도 더 높을 수도 있다는 상반된 예측을 안전 관련 책임자들이 가질 수 있다.

 

사고 발생 전에 이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았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그 이유를 그리고 필요하면 그 이유에 대한 이유를 자세히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결정이 쉽지 않은 상태는 일상적이고 따라서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단순히 칼로 행인을 찔러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도 여러 원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 범인은 물론, 응급실에 가기까지의 시간, 응급차 우선을 무시하는 운전 관행 등등. 이때 어떤 사건의 발생에 이르는 원인들을 통칭하여 우리는 인과망(causal net)이라고 부른다. 지금 이태원 참사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 인과망을, 어떤 가능성도 제외하지 않고 섬세하게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재구성 작업에는 대규모 압사의 원인으로 보이는 인파 압축 현상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지에 대한 확인 작업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섬세한 원인 규명 작업을 정치인과 언론이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건이 나자마자 국정 책임자 윤석열은 퇴진하라부터 보고도 지휘도 하지 않은 용산서장이 책임자다,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을 찾아간 개인의 잘못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없다에 이르기까지 분노 내지는 분노를 가장하여 객관적 사실 판단을 막고 있다. 그러나 크던 작던 사고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국가는 없고 완전 예방이 국가의 존재 이유도 아니다. 대형 참사 후 이성적 판단에 의한 재발 방지 노력이 바로 국가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또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용산경찰서 서장의 행태나 경찰의 보고지휘 체계 미작동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이유이고 중요한 점도 바로 그 이유다.

 

4. 철저한 진상규명이 참사 후 참사를 예방한다.

 

많은 정치인과 기자들은 이들이 해야만 할 일을 안 한 점을 질책하고 분노하며 당장 체포하여 처벌하라고 요구하지만, 사실 당시 해야 할 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당사자들이다. 그렇기에 할 일을 안했다는 사실보다 왜 안했는지가 훨씬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사건의 재구성인 것이다. 독일 에셰대 참사에서 객실차장은 비상 상황에서는 비상브레이크를 당길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갖고 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법이건 합법이건 그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형 참사 후 사회의 반응은 정상의 정반대다. 즉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비이성적 분노에 전국민이 지배당하는 형국이다. 이미 광우병, 세월호 등에서 광기와 같은 선동 언어로 유명한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은 이번 참사에도 그 악습을 버리지 않고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 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다. 참사 후 이들의 분노에 찬 언어에 어느 정도 노출되면 국민들도 같은 이유로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결국 이들의 주장을 쉽게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는 현재의 국회의원의 자질이나 행태로 보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색맹, 복잡한 사건을 이해하고 조사하기 위한 자질이나 인내심의 부족 그리고 지금처럼 청문회나 국정조사에서 오로지 국회의원임을 내세워 반말과 폭언 그리고 답변의 기회를 주지 않는 야만으로 인해, 이성적 대화를 요구하는 참사의 발생과 대응 과정에 대한 조사를 국회에 맡길 수는 없다. 오히려 대형 참사 이후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대응 방식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는 쓸모가 있을 것 같다.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애도의 감정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 혹은 분노하는 민심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정치인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된 현상이다. 분노와 책임자 처벌에만 집착하는 행태는 또 다른 참사를 예약해 둔 것과 같다. 21세기 한국의 대중사회가 참사 후 사건의 원인을 섬세하게 재구성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참사의 재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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