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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한국 경제민주화의 사례] 통권191호
 
2021-07-09 09: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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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191호 


<경제민주화 기획시리즈4>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정치 및 경제부문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원조인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이를 폐기했는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경제민주화' 부작용과 잘못된 담론을 바로 잡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상철 한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전략연구회 부회장


1. 재벌만악론(財閥萬惡論)에 기초한 경제민주화의 이론적 오류

경제민주주의 논쟁은 어제 오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해방 직후에 경제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시도가 있었다. 일제 패망 직후 일본인이 철수한 공장을 노동자들이 접수해서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자주관리 운동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이를 위해 공장 단위별로 공장관리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이 노동자자주관리 운동은 1945년 11월 결성된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전평(朝鮮勞動組合全國評議會)의 과다한 정치투쟁으로 인해 1946년 9월 총파업이 실패한 후 급속히 소멸했다. 소멸했던 경제민주주의는 소위 ‘87년 민주화’를 계기로 헌법 개정을 통해 경제민주화로 다시 등장했다. 이때의 경제민주화는 서양의 경험과 완전 별개의 개념으로 재포장되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이론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고 국제적인 이론과 외국의 역사적 경험과도 관계없는 기형적인 형태로 재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동원의 언어로 기능하여 반시장적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좌파 진영이 주도했지만, 일부 자유 보수 진영에서도 경제민주화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소위 ‘경제민주화의 대부’라 자처하는 김종인은 한국 사회에 생소한 독일의 경제민주주의를 소개했다. 그는 경제민주주의에 내재한 반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속성을 은폐한 채 이 개념을 자의적으로 변조하여 이식했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민주당이 주도하여 사회주의 이행프로그램으로 제시한 경제민주주의의 역사적 근원을 한 번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는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주장을 편다. 이를 위해 독일의 경제민주주의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이론적 맥락을 같이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창시한 에르하르트 수상을 경제민주주의와 연계시키려 하지만, 에르하르트 수상은 경제민주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그는 경제민주주의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가져온 것은 반시장적 대안을 모색하는 경제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장경쟁 질서를 중시하는 ‘질서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사회·경제시스템의 기본이 ‘사회적 시장경제’이며 그 이론적 토대를 이루는 사상이 독일식 신자유주의인 ‘질서자유주의’이다. 오늘날에도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 주도의 경제관과 마구잡이 기업규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종인은 반대 개념인 경제민주주의와 질서자유주의를 같은 맥락의 개념으로 변조하고 오염시킨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국경제를 망치는 세력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경도된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종인은 지나친 탐욕을 억제해 특정 거대 경제 세력(대기업, 혹은 재벌)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차단함으로써 시장경제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 경제민주화라고 밝혔다. 그는 “자본주의는 기업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기업규제를 정당화하지만, 정작 한국의 경제생태계를 교란하는 지대 추구 세력인 먹튀 투기자본, 거대 공기업, 국가의 독점행정과 조직된 노동조합이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한편 그는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관심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포용과 통합이 배제와 편 가르기를 위한 용어로 사용되듯이 경제민주화는 반기업 정서를 증폭시키고 재벌의 악마화에 몰두하게 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확대, 중산층의 몰락, 가계부채의 증가, 소득 양극화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좌파 진영에서는 이를 박정희모델이 초래한 유산으로 비판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정당한 근거를 갖추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고도성장이 끝나고 감속 저성장의 추세가 초래한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한국의 양극화 지수는 높은 경제성장과 실질임금 상승 등으로 개선되었다가 외환위기 이후 악화되었다. 중산층도 80년대까지 증가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감소하였다. 한국경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좌파 학자들은 한국형 성장경제모델은 청산되어야 할 관치경제모델로 오늘날의 한국을 헬조선으로 만든 원흉으로 치부하고 있다. 또한, 한국경제의 발전을 견인한 대기업은 한국 사회의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낙인찍혀 끊임없는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재삼 강조하지만 우리나라 재벌개혁론의 근거인 주주자본주의는 이론적으로 볼 때 경제민주주의와 대척점에 있다. 경제민주주의는 주주(Shareholder)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주주자본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독일과 유럽의 좌파 진영에서도 ‘주주자본주의 대신 경제민주주의’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는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경제민주화론자들이 유럽의 역사적 경험과 이론적 발전에서 주주자본주의와 경제민주화가 상반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더욱이 한국의 재벌개혁론자들은 기형적인 재벌의 독점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주주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사실은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국내외의 투기자본과 동맹하여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론스타, 소버린, 엘리엇 등의 경험에서 본 것처럼 국제투기자본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정운찬 등이 주장하는 동반성장론 혹은 초과이익공유제도도 이론적으로는 경제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 경제민주주의는 노동자가 사측과 동등한 위치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가하거나 혹은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으로 자주적으로 경영하는 자본과 노동자의 권력관계가 핵심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갑과 을 혹은 적대적 관계로 상정하여 창출된 부의 분배 몫을 다투는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소위 ‘히든챔피언’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중소기업이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중소기업 진흥책과 경제민주주의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현 정권이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의 오리지널 버전은 ‘임금주도성장론’이다. 국제적인 ‘임금주도성장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 주주자본주의, 단기차익을 노리는 ‘카지노 자본주의’라고 비판한다. 주주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비판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전도하는 모순된 광경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진영은 이론적 정합성도 없고 국제적인 이론과 외국의 역사적 경험과도 맞지 않는 기형적인 논리적 오류에 빠져 있다.

2. 문재인 정권의 경제민주화

문재인 정권에서는 촛불과 ‘경제민주화’를 앞장세워 반자본주의적 반시장적 기업규제와 노동법 개정을 거침없이 강행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름으로 자행된 규제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되어 한국을 규제 공화국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의 경제민주화 논의에서는 사회주의적 속성이 은폐되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달라졌다. 최근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거래감독법)’, 특히 ‘3%룰(지배주주 의결권 3% 제한)’과 노동이사제 및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투자책임 원칙)’를 통한 연금사회주의 등으로 사회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사례를 들어 노동이사제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경제민주화의 하나로 등장했다. 그런데 독일은 우리와 많은 차이가 있다. 한국은 기업별로 단체협약이 이루어지고,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되어 있으므로 노조가 기업을 감시하고 기업과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산별노조, 산별교섭 형태의 독일이 갖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필요성이 없다. 그리고 독일 기업의 이사회구조는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가 양립하는 이원적 이사회구조이며, 노동이사제는 집행기능은 없고 경영이사회에 대한 감시기능만 있는 감독이사회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일원적 이사회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투적 노사관계이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된다면 노동조합원의 기득권 유지와 기업 구조개혁의 반대를 위한 노조이사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독일과 달리 노조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게 되어 경영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이사제는 낮은 단계의 노동자자주관리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기존의 주주자본주의 혹은 재벌개혁의 주장에서 이를 우회한 사회주의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질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민주화는 독일과 같은 자유로운 선진 사회가 아닌 후진 사회주의국가인 베네수엘라와 같은 퇴행의 길을 가도록 하는 특급열차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3. 경제민주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국에서 좌파 진영과 이에 호응하는 일부 우파 세력은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라고 우기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한 선진국은 없다. 미국의 반독점법, 일본의 재벌해체와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을 경제민주화의 사례로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재벌개혁은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경제민주주의의 보편적 개념과 재벌개혁은 기본적으로 별다른 관련이 없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 도입된 공동결정제는 낮은 단계의 경제민주주의이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민주당과 노조에 의해 체계화된 사회주의로의 이행 프로그램 성격은 이미 사라졌다. 공동결정제는 노사화합을 위해 기업이 일정 부분 양보한 타협의 산물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76년의 노사공동결정법이 도입된 후 4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철 지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오늘날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그룹은 거의 없다.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는 ‘석기시대의 유물’ 혹은 ‘동독’으로 취급되고 있다. 경제민주주의를 추진했던 사회민주당(SPD)은 사실상 경제민주주의를 폐기한 상태이다. 독일은 현재 극좌파와 일부 노조를 제외하면 경제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경제민주주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그룹은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를 기념하는 로자 룩셈부르크재단 정도이다.

100년 전에 사회주의 이행 전략의 산물로 등장했다가 폐기된 경제민주주의가 경제민주화로 탈바꿈해 지난 35년간 한국 사회를 농락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사회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초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과다한 기업규제와 이를 부추기고 정당화한 경제민주화이다.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망한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시대착오적 산물인 경제민주화의 미몽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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