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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 왕정 논란 불식의 해법
 
2026-09-01 09:32:06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재명 정부를 향해 뜻밖의 단어가 등장했다. ‘왕정’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을 정치적 위치가 전혀 다른 유시민 작가와 한동훈 의원이 거의 동시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유 작가는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1년간 대통령이 보인 모습은 오만한 권력자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민주당 전당대회를 평가하면서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사실상 ‘픽’해 당선시키려 하는 것은 왕정, 귀족정으로 가는 것”이며 “공화정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한동훈 의원은 대법관 제청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과 사전 조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장 탄핵까지 거론한다면 “그럼 왕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대한민국이 실제 왕정으로 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왕정’은 강한 정치적 수사다. 그러나 정치학적으로 이 표현 속에 담긴 경고는 가볍지 않다. 그것은 권력의 개인화(personalization of power)다. 대통령의 의지가 정당의 의사결정보다 앞서고, 대통령의 뜻이 국회의 다수결을 통해 곧바로 법률이 되며,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이나 인사까지 대통령과 사전 조율해야 정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공화정과 대통령 개인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막스 베버가 근대국가의 핵심으로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였다. 전근대의 왕정 지배에서는 통치자의 권력과 국가의 권력이 구별되지 않았다. 반면 근대 공화국에서는 대통령도 국가의 주인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권력을 위임받은 공직자일 뿐이다. 그래서 공화정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대통령에게 힘이 있는가”가 아니다. “대통령의 힘을 누가, 어떻게 제한하는가”다.

유시민의 비판은 정당에서 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여당의 대표 선출과 공천, 당내 권력구조까지 좌우하게 되면 정당은 대통령을 견제하고 민심을 전달하는 조직이 아니라 대통령 의중을 집행하는 조직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신임 지도부와 만나 “당정청은 공동운명체이고 한 몸”이라고 강조한 것도 정치적 단결이라는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당과 정부가 ‘한 몸’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되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기관이어야 한다.

한동훈의 비판은 사법부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최종 합의 없이 후보자를 서면 제청하면서 논란이 발생했지만, 대통령실과 사전 합의를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관행이었다. 대법원 역시 이번 제청이 헌법 제104조 제2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관례를 깨는 것과 헌법을 위반하는 것은 다르다. 더욱이 관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법원장 사퇴나 탄핵까지 거론한다면 논쟁의 차원이 달라진다. 사법부 독립의 본질은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이 제청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제청 문제로 정부 여당과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통제하는 법의 지배는 더욱 소중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붕괴 연구로 유명한 후안 린츠(Juan Jos? Linz)가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주목했던 것도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이 지나치게 절대화되는 현상이었다. 대통령도 국민이 뽑고 국회도 국민이 뽑는다. 어느 한쪽도 국민 전체를 독점적으로 대표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더욱이 대통령과 국회 다수당이 결합하면 ‘이중 정당성’의 충돌 대신 더 위험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통령 권력, 국회 절대다수, 집권당 장악’ 세 가지가 결합하면 대통령은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다.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키고, 조직을 개편하고, 인사를 밀어붙이고, 제도를 바꿀 수 있다. 처음에는 강하고 유능한 정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속도는 유능함과 같은 말이 아니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강조한 것은 정치 발전의 핵심이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정치의 제도화라는 사실이었다. 제도화란 권력자가 제도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제도에 의해 스스로 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제한할 줄 아는 대통령이 결국 가장 강한 대통령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금 가장 위험한 것도 야당의 공격이 아닐 수 있다. 대통령 주변에서 “그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대통령의 생각을 확인하는 조직이 되고, 여당이 대통령의 정책을 추인하며, 다수 의석이 모든 반론을 무력화시키면 정책 오류를 사전에 수정할 장치가 사라진다. 사회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의 ‘집단사고’(Groupthink) 이론이 경고한 것도 이것이다. 권력 집단 내부에서 이견이 사라질수록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정부에 대한 민심은 기대와 희망에서 불안과 분노로 바뀌면서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빠르게 추락한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이 취임 이후 처음 30%대로 내려왔다는 것은 이런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조원씨앤아이 조사(8월 22~24일)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38.9%인 반면 부정 평가는 57.9%였다. 지난 4월 초(66.1%)와 비교해 약 넉 달 사이 긍정 평가가 27.2%포인트나 추락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4050세대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40대 긍정 43.3%-부정 56.3%, 50대 긍정 40.9%-부정 56.3%로 부정이 긍정보다 10%포인트 이상 많다는 것은 분명 위험 신호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해 청와대는 “민생과 경제를 최우선으로 두고 국민의 삶이 개선되고, 이를 체감할 수 있도록 국정운영 전반을 섬세히 살펴 실질적 성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런 레토릭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법은 정해져 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 방식에 대전환을 하는 것이다.

첫째, 당정일체보다 당정의 건강한 긴장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을 존중하되 지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자진 사퇴 압박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오만한 발상은 즉각 중지해야 한다. 셋째, 선출된 권력 우위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51%의 민주주의는 49%를 지배할 권리가 아니라 49%까지 고려하며 통치할 책임이다. 따라서 절대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은 ‘자제와 상호 관용’의 민주적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 넷째, 대통령실 안에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레드팀’을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참모는 “맞습니다”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틀릴 수 있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다섯째, 개헌·선거제·사법제도 개편처럼 헌정질서와 관련된 사안은 다수결보다 합의를 우선해야 한다.

유시민과 한동훈이 말한 ‘왕정’은 정치적으로 과장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정치 진영에서 같은 경고음이 울렸다면 대통령은 그것을 단순한 정적의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공화국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는 헌법 조문만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는 정치적 절제다. 권력은 커질 때보다 견제가 사라질 때 더 위험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권력이 아니다. 권력의 절제다. 그것이 왕정 논란을 불식시켜 공화정을 지키고, 역설적으로 대통령 자신을 성공시키는 가장 강력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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