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반도체 산업의 성장 공식을 다시 쓰고 있다. 반도체는 경기순환 산업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구조적 성장 산업으로 전환할 것인가. 반도체 산업의 미래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사이클 시나리오다. AI 서비스 수요가 둔해지면 반도체는 공급과잉에 직면하며 가격은 급락한다. 이후 감산과 재고 조정을 거쳐 사이클이 반복된다. AI 수요 정체와 중국 CXMT의 공급 확대는 이러한 사이클을 심화시킬 수 있다.
둘째는 슈퍼사이클 시나리오다. 반도체 수요는 증가하지만, 신규 팹 건설부터 웨이퍼 생산까지 3년 이상 걸려 2028년까지 공급 확대가 제한된다. 이후에는 공급이 확대되면서 가격이 급락하며 업황은 다시 저점을 거치게 된다. 2017∼2018년 메모리 슈퍼사이클도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공급이 늘어 가격이 급락하며 저점으로 회귀했다.
셋째는 ‘구조적 성장 속 경기순환’ 시나리오다. AI 수요가 확대되는 성장 축에서 일부 제품은 경기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다.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는 가격 변동을 반복하지만, HBM과 AI 반도체는 지속 성장한다. 삼성전자의 장기계약 확대와 HBM4 매출 급증 전망, GPU 위에 HBM을 수직으로 쌓은 zHBM 혁신은 첨단 메모리 수요의 구조적 성장을 시사한다. 한편, 엔비디아가 HBM 적층 단수를 낮추는 ‘메모리 다이어트’를 검토하는 것은 가격과 투자의 오버슈팅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이 기술 전환은 가격 급등형 슈퍼사이클을 완만한 사이클을 동반한 구조적 성장으로 바꿀 수 있다.
현재 시장은 둘째와 셋째 시나리오가 겹치는 과도기다. 반도체 혁신은 새 수요를 열지만, 수요 혁신이 멈추면 구조적 성장은 일시적 슈퍼사이클에 그친다. 공급과잉 전망이 놓친 것은 AI 수요의 진화다. 빅테크들은 미래 시장 선점 투자를 계속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기술력보다 기업의 단기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먼저 평가한다. AI·반도체 성장은 실적에 반영돼도 곧바로 주가 재평가로 이어지진 않는다. 금융자본이 기술 기업의 성과를 단기 실적만으로 재단하지 않도록 장기 투자 기반을 넓히고, 예측 가능한 주주환원 정책, 기업성과·주주 가치에 연동된 보상체계, 경쟁력 있는 법인세제가 뒷받침될 때 산업의 구조적 성장은 주식시장의 장기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반도체·데이터센터 등 공급 인프라에 국가 자원이 집중되는 쏠림 경제를 AI 서비스 등 기업간거래(B2B)·기업소비간거래(B2C) 수요 혁신의 확산 경제로 보완해야 사회적 갈등과 산업 병목을 해소할 수 있다. 수요 혁신이 산업과 일상으로 확산해야 시장의 인식도 ‘AI가 과연 돈이 되겠는가’ 하는 의구심에서 ‘AI가 실제 생산성과 수익을 높이는구나’ 하는 확신으로 바뀐다. 이는 산업 생산성과 일자리를 늘려 성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힌다.
하지만 OECD와 한국노동연구원(2025)은 한국의 AI 도입률이 국제적으로 낮은 편이며, 특히 대·중소기업 간 격차가 크다고 지적한다. 중국 부품사들이 24시간 무인공장으로 한국과 생산 격차를 벌리고 단가를 국산의 절반까지 낮춘 사례는 피지컬 AI 경쟁의 절박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M.AX(제조업 AI 전환)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AI 실증 국가가 될 수 있다. 제조 데이터와 세계적 반도체 경쟁력을 함께 갖췄다. 피지컬 AI는 제조 중소기업의 반복·위험 업무를 대신하고 숙련 노동자의 암묵지를 학습·전수함으로써, 인력난을 완화하고 숙련의 계승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이 산업별 AI 생태계를 선도하고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이 산업별·기업별 AI 에이전트를 함께 개발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산업별 AI 에이전트 플랫폼은 개발 비용을 낮추고 생태계를 키우며 기업별 AI 에이전트는 생산성을 높여 추락하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AI 응용 서비스 도입이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유지·창출로 이어지려면 조직·직무와 인력 재배치를 가로막는 경직된 노사관계·노동규제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AI 서비스가 차세대 반도체 수요를 만들고, 반도체 혁신은 다시 AI 서비스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이 한국 경제와 반도체의 새로운 성장 공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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