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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광복 81년 3大 기적 망치는 퇴행 정치
 
2026-08-14 18:16:52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45815일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았다. 하지만 광복이 곧 번영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식민 지배의 상처 위에 분단이 찾아왔고, 6·25전쟁으로 국토는 폐허가 됐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이후 세계가 주목할 기적을 만들어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가 세계 시장을 누비고, K팝과 영화·드라마는 세계인의 일상이 됐다.

 

광복 81년은 세 번의 기적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산업화의 기적이다. 자원도 자본도 부족했던 나라가 교육과 수출, 기업가정신과 국민의 땀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둘째는 민주화의 기적이다. 국민은 권위주의를 극복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정착시켰다. 국민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셋째는 문화의 기적이다. 선진국의 상품과 문화를 소비하던 나라에서 전 세계에 문화와 가치를 수출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는 불편한 역설이 있다. 경제는 선진국이 되고 문화는 세계를 움직이는데 정치는 퇴보하고 있다. 정치는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토론보다 공격이 앞서고, 타협은 배신으로 취급되며, 상대 진영은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새뮤얼 헌팅턴은 정치 발전의 핵심을 단순한 민주화가 아니라 정치의 제도화에서 찾았다. 제도가 특정 개인이나 정파를 넘어 안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해야 정치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선거도 있고 국회도 있으며 정당도 있다. 문제는, 그 제도를 운용하는 정치의 규범과 문화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데 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상대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정치 질서다. 다수결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절제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은 지지하지 않은 국민까지 대표해야 하고, 국회 다수당은 의석수가 많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 역시 정부의 실패가 곧 자신의 성공이라는 유혹을 버리고 국가의 성공에 책임을 나눠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책임윤리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정치인은 의도가 선했다는 이유만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이 국민의 삶에 가져올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 좋은 의도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결과이며, 강한 권력보다 위대한 것은 절제된 권력이다.

 

이제는 네 번째 기적, ‘정치의 기적이 필요하다. 그것은 거창한 제도개혁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절제하고, 야당을 제거의 대상 아닌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위기는 정치가 낙후됐다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가 국민과 국가의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 81년은 국민이 정치보다 위대했던 역사였다. 이름 없는 국민이 가난을 이겨냈고, 민주주의를 지켰으며, 세계가 놀라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이 만든 기적을 망치는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하나의 광복이 남아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증오와 분열의 낡은 정치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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