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7 19:00:14
누군가는 수억 원의 성과급을 받지만, 누군가는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같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이 격차를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 청년들이 겪는 취업난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구조적이다. 지난 6월 청년고용률은 43.9%로 26개월 연속 하락했다. 1분기 미취업 상태의 20·30세대는 171만 명에 달한다.
내가 아는 한 청년은 기업 연계 훈련을 거쳐 개발자로 일했지만, 계약이 끝난 뒤 다시 구직자가 됐다. 100곳 넘게 지원했지만, 최종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요즘은 뽑는 데가 없어요.” 이 말은 이제 한 청년의 하소연이 아니라 세대 전체의 우울한 독백이 되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4월 청년 뉴딜에 이어 최근에는 ‘제1차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직업훈련과 AI 인재 양성, 고용안전망 강화가 골자다.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사람만 준비시키는 정책으로는 고용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다.
역대 정부는 직업훈련·취업 지원·일 경험 정책을 지속해서 내놓았다. 이번 대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문제가 수십 년째 반복된다면 정책 부족이 아니라 시스템의 고장이다. 정부는 끊임없이 청년을 준비시키지만, 노동시장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다.
필자가 청년 취업 지원 사업을 실증 분석한 결과도 같았다. 사업 참여는 노동시장 진입에 일정 효과가 있었지만, 대부분 임금과 고용안정성이 낮은 일자리로 이어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정책효과를 흡수한 것이다.
정부는 두 개의 노동시장이라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내부노동시장에 높은 임금·복지와 강한 교섭력이 집중돼 있다. 더 큰 문제는 격차보다 이동의 단절이다. 과거에는 첫 직장이 다소 열악해도 더 나은 일자리로 옮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경로가 막혔다.
청년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중소기업 자체를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과의 압도적인 격차를 보며, 한 번 외부노동시장에 들어가면 평생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을 체감한다.
AI는 이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AI가 확산되면서 내부노동시장에서는 “내가 뒤처지는 거 아닐까”를 걱정하지만, 외부노동시장에서는 “내 일이 남아 있을까”를 걱정한다.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는 기업이 신규채용부터 줄이기 때문이다.
정년연장도 같은 맥락이다. 연공급과 강한 고용 보호를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은 고임금 인력의 비용을 더 오래 부담해야 한다. 그 결과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자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AI는 노동시장의 입구를 좁히고, 정년연장은 출구를 늦춘다. 그사이 가장 오래, 고통스럽게 기다리는 사람은 청년이다.
기업은 늘 미래 비용을 계산한다. 한 번 채용하면 인력조정은 어렵고 임금은 근속과 함께 상승한다. 노사관계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기업이 사람보다 AI와 자동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제적 판단이다.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고령자의 직무와 임금을 조정하고, 단체교섭 단계부터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고용관계의 합리적 종료 가능성도 논의해야 한다. 독일처럼 해고 분쟁에서 계속 고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금전 보상을 전제로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고용 종료 규칙이 있어야 기업도 신규 채용에 나설 수 있다.
노동자를 시장 바깥에 방치해선 안 된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구직급여와 직업훈련, 전직 지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터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기업에는 유연성을, 노동자에게는 안정성을 보장하는 유연안정성이 AI 시대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이다.
청년을 준비시키는 대책은 충분히 나왔다. 이제는 청년을 받아들일 노동시장을 준비해야 한다. 청년은 이미 준비됐다. 준비되지 않은 것은 노동시장이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지원 사업이 아니다. 어느 일자리에서 시작하든 이동하고, 성장하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노동시장이다. 노동시장 개혁 없이는 청년고용 해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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