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세계는 반도체 인재 확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주요 대학에 반도체학과를 신설하고 기업 연계 계약학과를 확대하며 인재 양성에 힘써 왔다. 그러나 반도체 교육 수요와 학생 정원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전문 교수진 확충은 더디다. 제한된 교수진이 교육과 연구, 학생 지도와 산학 협력까지 동시에 떠안는 구조가 문제다. 이제 반도체학과를 몇 개 더 만들 것인지보다 누가 가르치고 연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에는 수십 년의 경험을 쌓은 현직·퇴직 엔지니어가 많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성과급을 받는 기업 핵심 엔지니어와 대학이 보수 경쟁을 하긴 어렵다.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기업의 인재를 대학으로 완전히 빼 오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다. 기업 엔지니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대학교수가 기업의 실제 기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양방향 인재 순환’을 확대해야 한다. 현직 최고 엔지니어가 기업에 몸담은 채 대학에서 강의와 공동 연구를 할 길도 넓혀야 한다. 축적한 기술을 후배에게 전수하고 장기 연구를 할 여건을 갖춰야 한다.
대학은 외국인 석학과 엔지니어를 유연하게 영입해 교수와 학생, 현장 전문가를 연결하는 글로벌 연구 거점이 될 수 있다. 어렵게 영입한 인재가 강점을 발휘하려면 교수 평가 체계를 보완해 산업 현장의 기술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획일적인 논문 성과 잣대보다 이들의 경험을 교육과 연구에 활용할 교수 경로를 열어줘야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산업계 최고 전문가를 ‘실무교수(Professor of the Practice)’로 임용해 현장 경험을 교육과 연구에 적극 활용한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산업계 전문가가 교육과 연구에 참여하는 인재 순환 체계를 운영 중이다.
이 같은 인재 순환 체계가 작동하려면 기업 자금도 대학의 인재 양성으로 흘러가야 한다. 기업이 첨단산업 분야의 교수 영입과 보수, 장학금, 연구시설과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하면 정부는 과감한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이를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국가 첨단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연구는 고가의 장비와 클린룸이 필요한 만큼, 최고의 엔지니어를 대학으로 데려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학·기업·국책연구원 간 장비 공동 활용에도 접근성·보안·지식재산권 문제가 여전히 장벽이다. 그렇다고 분절의 상태를 유지해서는 안 되고, 핵심 기술은 철저히 보호하면서도 산업 현장의 기술과 대학의 연구 역량, 연구 인프라를 보다 자유롭고 신속하게 연결할 수 있는 ‘안전한 산학 협력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산학 협력을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불확실성도 줄여야 한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 한해 고등교육법과 교원 인정 평가 기준의 예외를 적용해 현장의 최고 엔지니어가 기업에 몸담은 채 대학에서 전임교원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산학 협력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자율 계약 공간을 넓혀야 한다. 지금의 전임·비전임 중심의 획일적인 교원 신분 규정은 산학 협력 필요에 맞는 유연한 계약을 가로막는다. 한편, 제도가 기업으로 하여금 형평성을 지나치게 고려하도록 만든다면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집중 투자는 어려워진다. 대학은 기업의 기부금을 소비하는 기관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인재 양성을 이끄는 혁신의 전진 기지가 돼야 한다. 국가는 전략 기술 분야의 교육·연구 투자가 정당한 경영 판단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산학 협력의 안전지대’를 마련해야 한다.
해외 선도 대학의 경쟁력도 정부 지원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산업 전문가가 교육과 연구에 참여하고, 기업의 자금과 기술이 대학으로 흘러가며 대학의 인재와 연구 성과가 다시 산업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인재 양성의 성패는 전임교원 숫자보다 누가 가르치고 연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는 기업의 사람과 자금이 대학으로 흐르도록 막힌 길을 열고, 대학은 기업의 파트너로서 산업이 필요한 혁신 기술을 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최고의 현장 인재와 기술을 받아들이도록 기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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