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전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의 칼럼입니다
새 정부는 노동자의 권익 강화를 주요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노조법 2, 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정년 연장 등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정의롭고 바람직한 가치로 보이고,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진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은 그 명분이나 도입 취지보다 실제로 어떤 구조적 결과를 낳는지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그 결과가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한다면 실용적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노조법 2, 3조 개정안의 핵심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완화하고, 교섭 대상을 원청까지 확대하는 데 있다. 겉보기에 이는 하청 및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하청기업의 원청은 중소·중견기업이며, 이들 원청의 재정적 여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 대다수의 사업장은 노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 간 체계적인 대화 채널조차 있지도 않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13%에 불과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고작 0.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 대상을 넓힌다고 해도 실질적인 혜택이 ‘현장’까지 도달하기는 어렵다.
근로시간 단축 역시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이 있다. 주 4.5일제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히 근로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일한 업무량과 납기를 유지하려면 인력 충원이나 생산성 향상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기업은 기술 투자나 인력 확충이 가능하지만, 영세·중소기업은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에 직면하게 된다. 제조업 생산성이 낮은 국내 현실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곧바로 납기 지연과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AI와 로봇 기반의 기술혁신을 근로시간 단축의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바뀐 접근이다. 기술혁신이 선행되어야 단축이 가능한 것이지,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혁신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논의는 정년이 실질적으로 보장된 13%의 정규직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도 많은 민간기업은 정년 도래 이후 숙련자를 계약직으로 재고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법으로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혜택은 이미 안정된 고용 구조에 있는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에 집중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정년이 늘어나면 고임금·저생산성 구조의 고착화가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은 청년 등 신규채용을 줄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비정규직의 비중을 더 높일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은 일부의 권익 확대가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공정성을 함께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정책은 실험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일단 도입하고, 문제는 나중에 보완하자”는 논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한번 도입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구조적 문제가 있는 노동시장의 개혁을 위한 제도 설계에서 현실성이 부족하면 오히려 회복할 수 없는 장기적 부작용만 초래한다. 우리는 지금 AI와 자동화, 보호무역, 기후위기 등 복합적 구조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시기일수록 정책은 신중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실험이 아닌 현장 기반의 전략이어야 한다. 격차는 한국 노동시장의 본질적 구조 문제다. 이를 완화하려면 상징적 법 개정보다 실질적인 구조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을 논하기 전에,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를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고,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기보다 불안한 미래를 함께 극복하도록 기업 내 다각적 차원의 대화 채널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
정책은 명분보다 결과로 말한다. 현행 법안들이 의도와 달리 또 다른 이중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개혁은, 가장 약한 곳에 닿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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