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데일리안] 역사상 최악의 상법 개정
 
2025-07-04 10:56:27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법 개정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지만, 한국 상법의 역사상 최악의 개정이 될 전망이다. 현실적·이론적으로 수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외에 주주에 대하여까지 확대한다는 것을 보자. 상법개정안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등)은 “①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 및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②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란, 한국 모든 회사법 교과서에는 이사가 이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 재산을 편취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설명돼 있다. 그런데 이사는 주주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애초부터 주주재산을 편취할 계기가 거의 없다. 따라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란 법리적으로 오류인 주장이다.


그럼 지금 세상을 흥분시키는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란 도대체 뭔가? 상법 등이 정한 69개의 이사회 결의사항을 이사회가 결의함에 있어 소액주주(일반주주)의 이익에 해가 가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런 해석은 충실의무 개념을 한국만의 독특한 개념으로 재창조하는 것이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전혀 맞지 않는다.


지배주주가 비례적이지 않은 이익(non-ratable)을 취득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은 무시되는 경우 그 소액주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어떤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2011년 상법 개정에서 이미 입법됐다. 주요주주의 자기거래 금지 규정(상법 제398조)이 그것이다. 이 규정을 활용하면 된다. 기왕 존재하는 법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법률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경우 소정의 절차를 거친 경우 이사는 경영판단 원칙의 보호를 받는다. 한국은 미국식 경영판단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판사가 “경영상 판단이군!”하면 그것이 경영판단이라고 하는데, 이건 미국서 말하는 ‘소정의 절차’를 거쳤다면 이사가 면책되는 경영판단과 아무 관계도 없는 ‘한국식 경영판단원칙’이다.


상법 개정안 충실의무의 구체적 내용은 ‘보호의무’와 ‘공평의무’다. 보호의무라는 것만 가지고 어떤 구체적 청구권이 발생하긴 어렵고, 실제로 소액주주에게 도움을 주기도 어렵다. 공평의무도 이미 한국 회사법은 ‘주주평등의 원칙’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어 군더더기다. 모든 주주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외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중언부언일 뿐이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그 중 최악이다. 집중투표제는 1주에 대하여 선임하여야 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컨대 5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면 1주당 5개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소액주주들이나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제안을 통하여 이사 1~2명을 선임해 달라면서 후보로 내세우고,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면 그 후보는 당선될 수밖에 없다.


대주주가 주식이 많기는 하겠지만 5명에게 골고루 나누어 투표해야 하는 반면, 소액주주들은 1~2명에게 집중해 표를 몰아주므로 그들이 제안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주주총회장이 고도의 전략이 난무하는 정치판이 된다. 그렇게 선임된 이사들은 자신을 당선시켜 준 주주들의 대리인이 되어 이사회가 대리전 전쟁터가 된다.


일본은 1950년에 도입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1974년 폐지하고 기업이 원하면 정관에 넣어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유는 집중투표제 도입 이후 이사회 내부의 파벌 싸움, 경영진 간 대립, 자격 미달 이사 선임 등으로 인해 기업 경영이 원활하지 못하고, 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의무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기업들은 자산을 늘이지 않는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확대하여 분리선출 인원을 2명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처럼 분리선출 인원을 늘리면, 외부 세력이 감사위원회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져 기업 경영에 불확실성과 불안이 커질 수 있다. 기업의 신사업 추진이나 경영 전략에 차질을 줄 수 있고, 기업의 기밀 유출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


감사위원은 감사이기 이전에 이사이다. 대주주의 이사회 구성권을 박탈하는 것은 대주주의 경영권 침해이면서 헌법상 재산권의 침해가 된다. 그것을 1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전자주주총회 도입도 기업의 자율에 맡기면 충분하고, 국가가 나서서 의무화할 사항은 아니다. 국가가 이런 것까지 간섭해야 하나? 2024년 전자주주총회를 병행한 상장기업은 922개였고, 2025년에도 921개사였으므로 현재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전자총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행 법률상 오프라인 총회를 개최하지 않고 온라인 총회만 할 수는 없으므로 온라인 총회만으로도 총회를 개최할 수도 있도록 하는 정도라면 반대할 명분은 없다.


충실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는 대부분 대표소송으로 해결된다. 한국에서는 손해를 보았다는 개별 주주의 직접소송으로 해야하는지 논의조차 없다. 개별주주가 무분별하게 각 이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기 시작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그러나 상법이 개정되었다고 하여 소액주주들이 갑자기 소를 제기해 소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는 보지는 않는다. 소송비용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어서다. 다만, 소액주주 플랫폼 등에서 수만 명이 모여 그 플랫폼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변호사가 저가(低價)소송을 진행한다면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또한 한국 법률을 연구한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이 한국 대기업에 이사를 심고 배당 확대 자산매각 등을 요구하면서 단기간에 한 몫을 챙기기 위해 공격해 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감사위원 2명 이상 분리선임과 집중투표를 통한 ‘이사회 자리 차지하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다. 최근 미국, 일본, 한국의 주주행동주의 활동 패턴을 보면 이사회 자리 차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상법 개정인가?


과거에는 기본법을 주관하는 법무부가 상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최소 1~2년의 엄밀한 토론과 공청회 등을 거쳐 법안을 확정하고 국회가 이를 통과시켰었다. 이번 상법 개정은 기업인이나 경제단체, 상법 전문가들은 의견은 거의 반영되고 있지 않아 허점이 많고 기업인들의 좌절감이 크다. 이참에 ‘배임죄 폐지’가 거론되지만, 상법 개정과 아무 관계도 없고, 예전에 벌써 폐지되었어야만 했다.


한국의 입법은 불가역적이어서 한 번 잘못된 법률이 제정되면 돌이키기 어렵고, 추후보완도 매우 어렵다. 감사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세계에 유사 사례가 없는, 이른바 ‘3%룰’은 도입 후 6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행되고 있다.



 칼럼 원문은 아래 [원문 보기]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589 [데일리안] 역사상 최악의 상법 개정 25-07-04
2588 [뉴스1] '서울대 10개 만들기' 허황된 꿈이 안되려면 25-07-04
2587 [한국경제] 중국 고위 공직자의 집체학습 25-07-03
2586 [파이낸셜투데이] SWOT 분석과 이재명 정부의 과제 25-06-30
2585 [문화일보] ‘힘 통한 평화’가 싸울 필요 없는 안보 25-06-30
2584 [문화일보] 민심의 ‘소리 없는 이반’ 걱정된다 25-06-26
2583 [서울경제] “ ‘한국을 다시 성장하게’를 기치로 노동계 등에 개혁 동참 설득해야” 25-06-24
2582 [문화일보] 국가경쟁력 관건은 경영·노동 혁신 25-06-19
2581 [한국경제] '중국 제조 2025'…한국에 찾아온 위기와 기회 25-06-19
2580 [매일경제] 새 정부에 실용적 노동정책을 바란다 25-06-17
2579 [아시아투데이] 남북 대화 재개의 선행조건 25-06-17
2578 [서울경제] 더 센 상법 개정, 기업 脫한국이 두렵다 25-06-16
2577 [파이낸셜투데이] 폐족이 된 국민의힘이 가야 할 길 25-06-12
2576 [문화일보] 민주당式 대법관 증원의 3大 위험성 25-06-11
2575 [한국경제] 중국 고급식당, 줄줄이 폐업…심상치 않은 음식점의 몰락 25-06-11
2574 [문화일보] 자유민주주의, 유지냐 변경이냐 25-06-02
2573 [중앙일보] 청년 위한 새로운 노동 생태계 만들어야 25-06-02
2572 [중앙일보] 인턴십 확대, 맞춤형 직업훈련, 실무 교육 잘 맞물려야 25-06-02
2571 [문화일보] 유엔총회 첫 北인권 논의와 한국 책무 25-05-28
2570 [문화일보] 개헌 로드맵 합의 없으면 말장난일 뿐 25-05-22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