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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다수의 폭정 막는 것도 법치주의 본분
 
2025-01-03 13:58:18
◆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AI·미디어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계엄-탄핵-수사의 연장선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회복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중 특히 실질적 법치주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새겨야 할 때다.

그리스 신화의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는 오른손에는 선과 악을 가리는 정의의 저울을, 왼손에는 칼이나 법전을 들고 있다. 서양에서는 재판을 할 때 그녀가 눈가리개를 하거나 눈을 감은 채 분쟁 당사자들의 주장을 저울에 올려 그 경중을 따진다고 봤다. 법의 여신이 눈가리개를 한 이유는, 재판 받는 이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시시비비를 정확히 가리고, 편견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반면,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지 않고 있다.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할 일이 많다고 작가가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눈을 뜨거나 가리는 것은 그 나라와 사회가 처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나 실현하는 방법은 달라도 공정과 정의에 기초한 법치국가의 확립이 법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분립의 원리를 바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원리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국제 평화주의 등과 함께 대한민국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다.

법치주의는 단순히 형식적으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실질적으로 법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제정돼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이뤄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법이 다수의 횡포와 대중 선동에 악용되거나 입법·사법·행정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법치주의를 ‘의회가 법을 만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무조건적 준법주의’로 오해하는 듯하다.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압도적 다수나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만든 법에 의한 통치를 방지하고, 합리적 여론 수렴 과정과 정당한 입법 절차를 준수하면서 제정된 법에 의해 통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 더해 국내에서는 특히 ‘다수 의석의 정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게 아니라, 소수 의석의 정당과 적정한 대화와 타협을 거친 법’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는 것이 추가돼야 할 것 같다.

흔히 국회의 역할이 현대 복지국가에서 순수한 입법 기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매우 커진 행정부의 역할을 견제하는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2024년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은 입법부(야당)의 독주가 지나쳐서 ‘입법폭주’ 또는 ‘의회(야당) 독재’에 이르렀다는 강한 비판이 있을 정도였다. 29차례의 행정부 탄핵,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위헌적 법률안 통과 등으로 인해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새해에는 개헌 논의를 포함해 사회의 모든 세력이 실질적인 권력분립 원리, 자유민주주의 원리, 법치국가의 확보를 위해 전력투구해서 ‘국가와 의회의 정상성’을 복원해 ‘법의 지배’가 확립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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