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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北 “핵이 곧 국가” 천명… 비핵화 이끌 현실적 수단은 더 강력한 제재
 
2022-09-21 09:54:40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北정권, ‘핵 국체론’으로 ‘ 핵 = 신성불가침’ 설파
南에 ‘핵 보유 인정하고 새 제안 갖고 오라’ 요구한 것
스텝 꼬인 尹의 ‘담대한 구상’…국제사회, 강력 제재 유지하며
미사일방어망 확충 등 실질 대책 세워야


윤석열 정부가 향후 5년간 맞게 될 남북관계는 8·15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제시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과 그에 대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막말 비난 담화로 막이 올랐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 입장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없는 깊은 이견이 존재하며, 그 본질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파격적 양보나 경제적 출혈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것이고, 북한은 핵무장을 끝까지 고수하기 위해 어떤 난관도 고난도 참고 견디겠다는 것이다. 거기엔 애매한 중간지대도 없고 모호성의 여지도 없다.

특히 북한의 입장은 처음으로 등장한 ‘핵 국체’론에서 확인됐다. ‘국가가 핵이고 핵이 국가’라는 국가-핵 동일체론, 핵 신성불가침론을 천명한 것이다.

◇북의 ‘핵 국체’론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3000’ 계획의 복사판이라 비난한 김여정 주장과 달리, 이 제안은 북한의 비핵화 완료 이전부터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이 일부 개시되는 전향적 개념의 구상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나 미국의 정책과 상충할 여지마저 있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과거처럼 협상 과정에서 부분적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의 실리만 챙긴 채 비핵화 이행을 거부하는 방식의 책략적 접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이 모든 가용 지원책을 끌어모아 만든 제안을 ‘어리석음의 극치’로 매도하며 비핵화 거부를 재확인했다. 게다가 핵을 ‘국체’로 규정하는 새 논리까지 동원해 비핵화 불가 주장에 또 하나의 대못을 박았다.

국체란 원래 주권의 담당자, 즉 주권의 귀속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분류하는 국가 형태다. ‘핵 국체’론은 한마디로 북한 주권의 담당자가 김정은 정권도 북한 주민도 아닌, 바로 핵이라는 의미다. 이 같은 기이한 논리는 북한에 핵무기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김정일 시대 이래로 핵무기가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거듭 강조해 왔다. 북핵 협상의 주요 결실이었던 미·북 제네바 합의(1994년)에도 9·19 공동성명(2005년)에도 북한의 전면 비핵화 약속은 없었다. 역사상 비핵화 합의에 가장 근접했던 제네바 합의조차도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관한 합의였을 뿐, 핵물질과 핵무기는 미결사안이었다. 그 어디에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나 비핵화 약속은 포함된 바 없었다.

◇꼬인 ‘담대한 구상’

대북 제안을 비방하고 조롱하는 김여정 부부장 담화에 대해 정부는 즉각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북한의 온갖 비난과 험담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침묵하던 문재인 정부와 비교할 때, 그것만으로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변화이긴 하다. 이는 새 정부가 추구하는 한·미 동맹 복원과 연합군사훈련 재개, 대중국 관계 재조정 등 대외관계 변혁과도 맥을 같이하는 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 새 정부 들어 처음 선보인 포괄적 대북 제안이 문재인 정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대북 경제 지원 패키지였다는 건 아쉬움을 남긴다. 더욱이 그 제안에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제조건이 붙어 있어 북한이 거부할 개연성이 충분했다. 시기적으로도 북한이 윤석열 정부 길들이기를 잔뜩 벼르던 때인 데다 새로운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곧 시작될 시점이어서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기대할 여건은 아니었다.

윤 정부의 이번 대북 제안의 목적이 북한의 추가 핵실험 결행에 앞서 정치적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이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권 초부터 대북관계 물꼬를 터보려는 목적의 환심성 제안이었다면 북한의 거부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북한이 이번 제의를 윤 정부의 조급함과 약세의 표출로 해석하고 더 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정치·군사적 대남 압박을 강화한다면 대북정책의 스텝은 계속 꼬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는 북핵·미사일의 실전 배치는 오래전 현실화했고,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미완성이나 이는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현재 수소탄 기술 고도화와 소형 전술핵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기술적 준비가 되면 핵실험은 언제라도 재개될 것이다.

◇‘주기’ 아니고 ‘끊기’

북한의 핵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출구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정치적 수사와 외교적 모호성에 의해 진실이 가려져 왔을 뿐이다.

북의 핵 능력이 곧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을 넘어 세계 6위에 도달할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반대급부를 대가로 북한이 국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핵을 경제협력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 보겠다는 발상”이라는 김여정의 비판에서 구할 수 있다. 국가를 핵과 동일시하는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결코 안보를 돈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1990년대식 해결 방식’으로는 2020년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도 외교 협상을 통한 북한의 비핵화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불편한 진실을 액면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북핵 문제의 진정한 미래상에 접근할 수 있고 효과적 대응도 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가장 현실성 있는 미래상은, 불행히도, ‘핵을 가진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의 대치가 향후 장기간 또는 영원히 지속하는 구도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핵 감축 협상을 통해 북핵이 절반으로 감축된들, 혹은 90% 감축된들, 근본적 상황에서 바뀌는 건 없다.

북한은 지금 ‘핵 보유를 인정하고 새 제안을 갖고 오라’고 남측에 강하게 의사 표시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을 비핵화의 길로 이끄는 현실적인 수단은 “먹고 살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이 아니라 “먹고 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력한 제재 경고다.

◇실질적 대책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를 위해 그나마 남은 마지막 희망의 끈이 있다면 2017년 이래 북한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는 대북 제재다. 하지만 이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당장 북핵 위협을 상쇄하기 위한 실질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은 사드를 포함한 미사일 방어망의 대대적 확충, 그리고 북한군을 압도할 재래식 군사력의 구축이다.

대칭적 핵 억지력 구축 차원에서 거론되는 ‘독자 핵무장론’은 국제사회의 혹독한 제재가 수반될 사안이어서 선택할 수 없다. 미국과 ‘핵 공유 협정’을 맺자는 주장도 있지만, 순수방어용 사드 배치에 무려 6년을 소모한 한국이 미·중 충돌 국면에서 중국의 극렬한 반대를 극복하고 미국 핵무기를 국내에 반입해 공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 외교부 북핵 대사



■세줄요약

북의 ‘핵 국체’론 : 북은 핵을 ‘국체’로 규정하면서까지 비핵화 불가론을 재천명. 국가를 핵과 동일시하면서 ‘핵 신성불가침’을 밝힌 것. 북핵을 둘러싼 남북 입장 사이에는 여전히 공통분모 없는 깊은 이견이 존재.


꼬인 ‘담대한 구상’: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 정권의 거부는 정해진 수순. 북이 경제적 반대급부를 대가로 국체=핵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어. 이런 식으로는 윤 정부의 대북 스텝은 계속 꼬일 것.


실질적 대책 : 김여정 담화는 ‘핵 보유를 인정하고 새 제안을 갖고 오라’는 요구로 해석됨. 비핵화를 위한 현실적 대책은 강력한 대북 제재임. 미사일방어망을 확충하고 북한군을 압도할 재래식 군사력도 구축해야 함.


■용어설명


‘국체’란 원래 주권의 소재를 기준으로 국가를 분류하는 개념. 주권이 군주에게 속하면 군주국, 국민에게 속하면 공화국이라 함. 북의 ‘핵=국체’ 주장은 결국 ‘핵-국가 동일체’론을 말하는 것.

‘핵 공유’란 핵 무장국과 핵 없는 국가 간의 핵무기 공유. 미국이 핵을 동맹국 미군기지에 보관하면서 사용결정권을 행사하고 동맹국은 핵무기 작동 키를 분점해 핵 투발에 참여하는 공유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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