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일본에서 ‘중유보일러 규제법’이 시행되었다. 석탄산업 보호를 위해 공장은 물론 대도시 빌딩이나 목욕탕에 중유보일러 설치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었고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특정 원료탄을 제외한 모든 석탄 수입도 금지되었다. 석유에 높은 수입관세가 부과되었고 석탄가격은 보조금을 지원하며 높게 책정했다. 일본의 석탄산업이 에너지 공급 뿐 아니라 과잉인구의 고용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산업이었고 지역적인 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석유의 시대’에너지 혁명이 시작되었지만 비싼 일본산 석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졌고 시민들은 매연 가득한 도심의 공기를 마셔야만 했다. 1960년대 석탄산업의 적자 구조는 명확해 졌지만 존폐위기에 처한 석탄 기업들은 정치적 힘에 더욱 매달렸다. 정치력을 과신한 석탄 노사도“정부가 석탄을 저버릴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현실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패배가 절멸로 이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중유보일러를 규제하고 석탄을 사용하는 것이‘정의’라고 여겨졌지만 석탄산업은 정치라는 최후의 보루를 잃고 결국 1967년에 중유보일러 규제법은 폐지되었다. 1950년대 도쿄대 졸업생들의 최고 인기직장이었던 석탄기업에 인재가 부족했던 것도 아닐텐데 일본 석탄산업의 몰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나 아렌트는 “악이란 시스템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중요한 것은‘시스템을 상대화’하는 것이다. 시스템의 요구에 적응하면서도 그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시스템에 최적화 되어가면서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의심의 눈길을 잃지 않고 시스템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오류란 없다. 모든 결점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수를 숨기고, 회피하고, 그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더욱 확실한 실패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 공수처 신설, 검경수사권 조정의 후유증이 너무 크다. 공수처는 2년째 아무런 수사실적을 내어 놓지 못한 채 200억 원의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절차만 더 복잡하고 불편하게 만들면서 국가적 범죄 대응역량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비효율적인 형사사법제도가 되고 말았다. 국회의원 위장탈당까지 강행하며 밀어붙인 반헌법적‘검수완박법’시행이 9월로 다가왔지만 여야간 정치적 공방만 난무할 뿐 지난 1년 6개월간 고통을 겪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평준화의 위험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며 종국에는 다수의 횡포와 질적 저하라는 또 하나의 독재형태를 낳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루지에로는 민주주의의 사악함은 다수의 승리가 아니라‘저질적인 것의 승리’라고 말한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 행사하는가에 상관없이 그 한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올바른 해답을 내어놓는 것이 법치주의 확립을 위한 핵심과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강대국이 되기보다 국민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는 성공한 나라가 바람직한 미래다. 성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좋은 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사람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긍정하고 있는지 보다 무엇을 부정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셰익스피어는“오! 거인의 힘을 갖는 것은 훌륭하다. 그러나 거인처럼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포악하다”고 했다.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킨‘검찰개혁법’이 시대착오적인 한국의‘중유보일러 규제법’이 되지 않고, ‘저질적인 것의 승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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