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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에너지 ‘퍼펙트 스톰’ 경고등… 탈원전 올인했던 한국 최악 직면
 
2022-06-09 13:59:38

◆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에너지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손양훈의 Deep Read- 총체적 에너지 위기

우크라戰 장기화로 석유·석탄·천연가스값 폭등 ‘화석연료의 복수’ 시작… 러-유럽 ‘볼모 거래’ 깨져 미증유의 쇼크
세계 각국 ‘탄소 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급선회… 한국,‘탈원전 환상’文정부 거치며 위험한 국면 돌입


에너지 가격 급등이 심상치 않다. 최근 국제 석유 가격은 다시 올라 배럴당 12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석유뿐만 아니다. 발전이나 난방에 주로 사용되는 천연가스와 석탄은 훨씬 큰 폭으로 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불을 질렀다. 고유가 현상은 상당히 지속될 것이며, 비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이제 초미의 경제 문제로 등장했다.

세계 각국의 정책은 지금 ‘탄소 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급선회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등으로 ‘잃어버린 5년’을 겪은 한국은 최악의 상태에서 에너지 위기를 이겨내야 한다.

◇탄소 중립과 우크라戰

불과 얼마 전까지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미래 어떤 시점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경원시했고 조만간 소멸할 대상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사라지기는커녕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확보하기조차 어렵다. 놀라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화석에너지의 복수’라고 할 만하다.

전 세계적으로 몇 년 동안 ‘에너지 투자 부족’ 현상이 계속돼왔다.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탐사, 개발, 생산, 수송을 위한 투자가 선행됐어야 했다. 석유나 가스전을 찾아 생산하는 설비에 대규모 자금을 들여 투자했어야 했다. 수송을 위해서는 파이프라인이나 LNG 수송선, 인수기지와 같은 시설이 더 필요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전설비에 투자해야 공급이 가능해진다.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화석에너지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금융을 해주지 않아 자금이 돌지 않았고, 에너지 기업도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되면서 다시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게 됐고 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고, 시장질서 범위 내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광대역 증폭기’의 역할을 하게 됐다. 먼 곳에서 일어난 국지전 정도로 보일지 몰라도 에너지 측면에서 보면 엄청난 충격을 잉태하는 전쟁이다.

◇에너지 대란의 화근

러시아는 구소련 시절부터 오랫동안 유럽에 석탄과 석유, 그리고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다. 엄혹하던 냉전 시절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적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금을 투자해 국경을 통과하는 장거리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오로지 대규모의 에너지가 필요한 유럽과 생산능력을 가진 소비에트연방과의 거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간절한 필요가 만든 ‘적과의 합의’였다.

이런 거래가 가능해지는 원리는 일종의 ‘볼모 거래(hostage business)’라고 할 수 있다. 일방이 상대방을 배신하면 같이 망할 수밖에 없도록 계약을 만들어 위험을 극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이에 여러 차례의 에너지 위기를 겪기도 했고,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해 여러 나라로 쪼개지기도 했다. 이때에도 상호 ‘볼모의 등가성’을 유지하기 위해 쌍방이 노력하며 거래관계를 유지해 왔다. 거래는 지속됐고 놀라운 규모의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냉전이 끝났고 유럽의 러시아 의존도는 심화해 갔다.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에 목을 매게 됐고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고는 쉽게 무시됐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했지만, 원전은 문 닫아 버렸다. 그래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로 충족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이른바 독일식 에너지 전환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예상과 달리 전쟁은 장기화하고, 서방은 자신이 의존해 왔던 러시아산 석탄과 석유의 거래를 제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놀랍게도 오십 년 넘게 지속된 볼모 거래가 무너진 것이다. 다음 단계의 서방 제재는 천연가스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쌍방의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제재의 수위가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모른다.

◇총체적 위기 국면

유럽의 문제는 즉각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전이됐다. 이미 아시아 시장도 수요 경합이 높아져 에너지 가격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천연가스 현물 시장이 전형적이다. 불과 1년 전에 100만BTU(열량 단위)당 6달러 하던 아시아 LNG 가격이 지금은 24달러를 넘는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제재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정도다. 러시아와 유럽의 파이프라인 천연가스의 거래 규모는 세계 LNG 시장 규모의 절반을 넘는다. 다가오고 있는 충격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국제 에너지 시장은 미증유의 빅 쇼크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에너지 위기보다 더 큰 파고가 불어닥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과거 에너지 위기는 석유시장의 애로였지만 지금은 천연가스와 석탄, 그리고 석유의 총체적인 위기다.

과거에는 석유 가격이 올라도 석탄과 천연가스, 그리고 원전의 확대로 어렵게나마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천연가스와 석탄의 가격 상승이 더 무섭다.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돈이 많이 든다는 약점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가속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급 능력은 부족하고,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의 재고 수준은 매우 낮다. 코로나19에서 회복되면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위기를 예상할 수 있다. 실제 가격 전망에 말을 아끼는 전문가들도 최근 에너지 시장의 ‘퍼펙트 스톰’을 예고한다.

◇최악 상황 직면한 한국

세계 각국은 서둘러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탄소 문제가 에너지 정책의 핵심적 고려사항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적어도 현재는 에너지 확보가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에너지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5년간의 긴 공백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국민의 생활과 산업의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일을 멈춰 버렸다. 심지어는 탈원전을 했고 ‘탄소 중립’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에 젖어 미래를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값싼 전원인 원전을 줄이고 비싼 발전 방식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자 당장 한전은 유례없는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최악의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세줄 요약

탄소 중립과 우크라戰 : 세계적인 ‘탄소 중립’ 운동 속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화석에너지의 복수’가 시작됨. 오랫동안 ‘에너지 투자 부족’ 현상이 계속된 데다 우크라 전쟁이 ‘광대역 증폭기’ 역할을 한 것.

에너지 대란의 화근 : 전쟁이 장기화하자 서방은 자신이 의존해온 러시아산 석탄과 석유 거래에 제재를 가하게 됨. 이에 따라 오십 년 넘게 이뤄졌던 러-유럽 간 ‘볼모 거래’가 무너지고 미증유의 빅 쇼크가 일어남.

총체적 위기 국면 : 에너지 ‘퍼펙트 스톰’의 경고등이 켜지면서 각국은 ‘탄소 중립’에서 ‘에너지 안보’로 급선회. 한국은 탈원전이라는 환상에 젖은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며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최악 상황에 직면.

■용어 설명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다시 흡수함으로써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것. 환경운동에서 시작돼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후 전 세계적 화두가 됨.

‘에너지 안보’란 에너지가 국가 경제는 물론 안보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안정적·합리적인 공급이 중요하다는 개념. 화석연료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한국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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