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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우크라 전쟁은 ‘낀 국가’의 불행… 한·미·일 3각체제 이탈한 한국에 교훈
 
2022-03-08 16:16:28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용준의 Deep Read - ‘러, 우크라 침공’ 시사점

유럽선 ‘러 vs 反러’ 대립 구도… 세계적으론 ‘美·나토 자유민주주의 vs 中·러 공산전체주의’ 신냉전 형성
우크라 전쟁은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 자강과 동맹 없을 땐 ‘낀 국가’ 한국의 안보도 위험해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의 확산으로 평화 무드에 젖어 있던 국제사회에 험악했던 20세기 국제정치의 기억을 되살려 줬다. 이는 냉전체제 종식 후 군사블록에 가담하지 않으면서 평화의 꿈에 안주해 온 중립 성향 국가에 자위적 군사력과 동맹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두 진영 사이에 ‘낀’ 국가가 역사적으로 또는 국제정치적으로 종종 겪어온 ‘지정학적 중추국(pivot state)’의 불행을 보여준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전체주의 진영 간 범세계적 신냉전체제 구축의 기폭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또 우크라이나처럼 낀 국가인 대만과 대한민국의 안보문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

우크라이나 사태는 표면상 미국이 표방하는 21세기적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확장과 러시아가 추구하는 20세기적 현실주의 세력균형 정책 사이의 충돌을 반영하는 것이나, 그 기저에는 유럽에서 적대적 경쟁국의 출현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전통적 정책과 구소련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 민족주의의 오랜 열망이 숨어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충돌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의해 오래전부터 예견됐었다. 그는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우크라이나를 미·러 세력균형을 좌우할 ‘지정학적 중추국’으로 정의했다. 그는 “미국이 유럽에서 러시아에 맞서려면 우크라이나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없이는 유라시아의 제국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구소련의 영광 회복에 집착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저지하고자 군사적 고육지책을 쓴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침략전쟁을 용인하지 않는 현 국제체제에서 러시아가 같은 슬라브족 형제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해 잔혹한 침략전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과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으로 상황은 러시아의 당초 의도와 크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범세계적 신냉전의 기폭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의 노골적 대외 팽창 의도가 확인된 만큼,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직면한 핀란드, 스웨덴, 몰도바, 조지아 등 유럽 중간지대 국가의 나토 합류 움직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간 대체로 중도적 입장을 지켜온 스웨덴, 핀란드, 독일, 스위스까지 금기를 깨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고 있는 현 상황은 유럽에서 ‘러시아와 반(反)러시아’ 진영 간의 구조적 대립체제의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냉전시대를 연상시키는 이 대립체제는 유럽 대륙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에서의 미·중 패권경쟁 구도와 연결돼 ‘전(全)지구적 진영 대립’ 체제를 형성해 가고 있다. 자국에 불리한 기존 국제질서 타파 의지를 공유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공조’는 과거 막연한 추측의 대상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 실체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냉전체제 종식 이래 30년 만에 세계는 미국·나토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공산·전체주의 진영으로 결집해 범세계적 신냉전체제를 형성해 가는 중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각인된 중국의 편협한 자기중심적 비(非)문명성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드러난 러시아의 야만적 비문명성이 결합한 ‘중·러 추축(Axis)’의 형성은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추축 형성을 연상시킨다.

◇대만 사태의 리허설인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게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단지 유럽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유사한 국제정치적 배경과 논리에 따라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반인도적, 반문명적 잔혹 행위와 이에 대응하는 서방 진영의 단합된 제재 조치 및 군사 지원은 멀리 동아시아에서도 좋은 타산지석이다. 러시아와 같은 정치적 이유에서 국제질서의 현상 타파를 추구하는 중국이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는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선제침공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국은 대만이 분리 독립해 서방 진영에 합류하려 할 경우 무력 침공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고무돼 대만을 침공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비교가 안 되는 크고 치명적인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만과 사실상 동맹관계로 볼 수 있는 미국 등의 참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참전 방침을 공언하고 있다. 그 경우 중국이 직면하게 될 제재 조치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 조치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낀’ 국가 한국

이러한 상황 전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이어 또 하나의 ‘낀’ 국가인 한국에도 많은 성찰을 제공한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한·미·일 3각체제에서 이탈했고, 그와 오랜 대척 관계에 있는 북·중·러 3각체제에 접근하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은 김정은에 의해 잔혹성이 입증됐고,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비문명적 민낯을 드러냈으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야만성이 확인된 나라다. 이들 북·중·러와 함께 하기엔 한국은 너무나 민주적이고 너무나 문명적인 나라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직 이들에 대한 이념적 애착과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뒤늦게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인도적 지원액 1000만 달러도 국제사회의 일반적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규모다. 이는 약 70년 전 16개 참전국 병사들의 피와 땀에 의해 기사회생했던 나라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국가 간 관계는 상호적이다. 남이 내게 베풀기를 원하면 나도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 중 유독 한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남중국해 문제에도, 대만 문제에도 무관심하다. 국가이기주의를 고수하면서 국제문명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전 외교부 북핵대사


■ 세줄 요약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 : 우크라 사태는 ‘낀’ 국가가 종종 겪어온 ‘지정학적 중추국’의 불행을 보여줌. 냉전 종식 30년 만에 세계는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전체주의 진영 간 범세계적 신냉전을 형성하는 중.

대만 사태의 리허설인가 : ‘중·러 추축’의 형성은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추축 형성을 연상시킴. 우크라 전쟁은 중국의 선제침공에 의한 전쟁 가능성이 있는 대만해협 사태의 ‘리허설’처럼 보임.

또 하나의 ‘낀’ 국가 한국 : 한국 역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 ‘낀’ 국가이자 지정학적 중추국임. 우크라 사태는 한·미·일 3각체제로부터 이탈해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에 대한 성찰과 교훈을 주고 있음.


■ 용어 설명

‘지정학적 중추국’은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거대한 체스판’에서 쓴 용어. 한국이나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도, 열강이 충돌할 수도 있는 국가를 지칭.

‘신냉전’은 원래 의미의 냉전 종결 후 새롭게 대두한 ‘친서방 국가 대 반서방 국가’의 갈등과 경쟁을 뜻하는 용어. ‘냉전’은 과거 2차대전 후 자유·공산 진영 간에 벌어졌던 정치·군사적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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