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단식을 접었다. 공단 콜센터 노조원들이 지난 10일부터 상담사 1600명을 공단이 직고용하라며 파업했고, 이에 공단 정규직 노조는 불공정을 이유로 반대했다. 두 노조의 충돌이 단식 원인이었다.
이사장은 단식에 앞서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드는 노력에 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건보공단이 파탄으로 빠져드는 일만은 제 몸을 바쳐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의 충정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단식이란 본래 힘없는 자, 절박한 자, 대책 없는 자가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폭거에 대해 죽기를 각오하고 항거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런데 이번 단식은 표면상 두 노조에 대화 참여를 호소하는 형식이었다. 두 노조가 힘 있는 가진 자이며, 자신이 힘없는 약자라는 설정이다.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의 논리로는 생뚱맞다. 그래서 ‘뜬금없는 단식’ ‘해괴한 단식’ 등의 평이 나왔다.
그는 얼마 전 “내가 직고용 여부를 강제하는 건 월권…‘논의의 장’을 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로 미뤄, 대화의 장이 열리고 이를 빌미로 단식을 중단했어도 자신은 그냥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이는 해법이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이다. 고용시장의 갖가지 문제점은 그대로 둔 채 섣부르고 얼토당토않은 정책을 쏟아내니 이런 사태가 생긴 것이다. 결국, 이사장은 비정규직 제로는 불가능하고,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대통령과 정부에 대놓고 시위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 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기업 직원들은 대부분 노량진 등 고시촌에서 몇 년에 걸쳐 온 힘을 다해 취업 공부한 끝에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정규직 직원이 됐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이웃과 파이를 나눠 먹을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도 아니다. 개인적 이익을 희생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고 절차적 공정성 문제다.
용역회사를 통해, 용역회사의 관리 아래 공기업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1600명이 투쟁하면 그 공기업에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신분을 쟁취할 수 있다고 하자. 이것을 두고 대통령이 말하는 “기회가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로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사장은 누구보다도 공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이사장이 되기 전에 공부로써 성공한 의사였고 교육자였다. 우연과 요행이 아닌, 흘린 땀으로 보상받는다는 공단 직원들의 신념과 자신의 신념이 결코 다를 수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이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처지는 개선돼야 한다. 다만, 이는 기관장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꼬일 대로 꼬인 노동법률이 만들어낸 초단기간 반복되는 해고 위협, 정규직에 비해 질 낮은 처우와 추락한 자존감, 열악한 노동 환경, 건강권과 인격 침해 등은 모두 구조적인 문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겪었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 비정규직 제로 같은 구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이 작심하고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근로 환경 자체를 뜯어고쳐야 해결될 문제다. 건보공단 이사장이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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