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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성장동력도 해치는 ‘생계형 업종法’
 
2018-10-16 17:40:11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심부름’으로 세계적 기업 탄생 
시장과 기업이 적합 여부 판단 
중소기업 적합업종 이미 존재

잘못된 法에 시행령은 더 심각 
실효성 없어 소상공인도 반발 
식품韓流 수출 막는 矯角殺牛


지난 6월 국회가 제정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의 시행령안이 나왔다. 이 법률은 연말쯤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률은 ‘영세 소상공인’이 할 수 있는 업종을 정부가 지정하고, 이 업종에는 ‘대기업 등이’ 진출할 수 없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률을 위반한 기업 대표자 또는 임직원에 대해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이 법률은 매우 잘못된 법률이다. 업종을 지정해서 어떤 업종은 ‘소규모 가족만이 영위해야 한다’는 발상이 틀렸다. 도대체 업종 중에 생계형이 아닌 업종도 있던가? 모든 업종은 언제나 무한확장이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과거에 고작 ‘심부름하는 것’이 세계적인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지금은 글로벌 택배업체가 3일 내에 어떤 물건이든 지구 어느 곳에든 배달해 준다. 예컨대 신발수선업이나 바느질업을 기업적으로 하기에는 상식적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그만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이런 일에 진입할 리 없다. 이처럼 생계형 업종인지 아닌지는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 한국에는 이미 상생협력법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나간 것이고, 또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법률은 실효성이 없다. 보호하려는 대상은 ‘가족 구성원이 중심이 돼 생계를 유지’하는 ‘영세 소상공인’이다. ‘소상공인’은 ‘소상공인 보호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연평균 매출액이 평균 50억 원 이하이고, 상시근로자 수가 5∼10인 미만인 소기업을 말한다. 정부가 소상공인 업종을 지정하면 이에 진출할 수 없는 ‘대기업 등’이란 중소기업을 뺀 중견기업 이상의 기업을 말한다. 이처럼 이 법률은 소상공인과 중견·대기업의 대결 구도로 상정하고 있어 번지수가 아주 틀렸다. 소상공인과 경쟁 관계에 있는 업체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이다. 300명 이상 고용하는 한국 중견·대기업 수는 0.05%에 불과한데, 나머지 대다수 중소기업은 그 업종에 접근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 대기업만 닦달한다고 해서 영세 소상공인이 보호되겠는가? 중소기업이 영세 소상공인 업종에 진입해도 그 수가 너무 많아 행정력이 미치지 않을 게 틀림없어 통제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때문에 영세 소상공인이 도태되는 교각살우(矯角殺牛)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왕 만들어진 법이라면 시행령이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을 보면,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 ‘소상공인단체’의 범위가 너무 넓다. 소상공인 비율이 고작 30%인 중소기업자단체까지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렇게 되면 30%의 영세 소상공인이 아닌 70%의 중소기업 보호 법률이 된다. 그래서 이 법률의 수혜자인 소상공인들조차도 이 법률과 시행령안에 반발하는 것이다.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식품산업의 경우 최근 한류(韓流) 열풍에 따른 한식의 세계화 영향으로 김치·두부·장류 등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 등은 해외시장의 개척, 수출 물량의 증대를 위한 연구·개발(R&D), 제조시설 확대, 식품 제조 방법의 표준화 등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혁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식품의 수출은 한식의 세계화를 통한 식품 산업과 이와 연관된 관광 산업, 일반 제조업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을 도외시하고 혁신의 주체인 대기업만 규제한다면 아무런 실익도 없이 세계 시장만 뺏기게 된다.

한편, 최근 중국 등 해외 식품업체들이 국내 농산물 및 식품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들을 방치(放置)하는 것은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 따라서 해당 업종·품목의 수입 비중도 반영돼야 한다. 소상공인과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실질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지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대기업 등의 사업영역, 거래 단계(도매, 소매 등), 유통망, 거래 상대방(B2C/B2B 여부) 등에서 진정한 경쟁 관계에 있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소상공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호하지도 못하면서 국가 경제의 성장동력만 차단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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