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일 교수를 하늘로 보내드리며
알탄하우스
박세일 교수가 위암 투병 중 어제 하늘로 가셨다.
지난 해 국민의당에 들어와 못다 이룬 선진화와 통일의 꿈을 이루시라고 전화를 드렸다. 몸이 좀 안 좋아 좀 기다렸다가 하자시더니 기어이 떠나셨다.
몸이 안 좋다는 게 위암인지 몰았다.
박세일 교수는 1948년 5월생이다. 서울대 법대, 미국 코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수석, 사회복지수석을 지냈다. 로스쿨을 만들려고 애썼는데 고건 총리가 시간을 너무 끌어 끝내 해내지 못하고, 노무현 정부 때 겨우 이뤄졌다. 김영삼 대통령이 선진화 개념을 주창한 주인공이고, 경실련 운동과 뉴라이트를 이끌었다. 정치 성향은 중도 개혁이고, 이 영향을 받은 나 역시 중도개혁 노선에 서 있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동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당시에 유승민, 박재완, 이주호, 나성린 등을 정계에 데뷔시켰다.
하지만 그의 정치 역정은 이듬해인 2005년에 불거진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날벼락을 맞았다. 행정비효율을 이유로 박 교수는 행정수도 이전을 ‘수도 쪼개기’ ‘수도 분할’ 이라는 말로 반대했는데, 당 대표인 박근혜 씨가 소속 의원들을 드잡이하던 중에 결국 사표를 쓰고 물러나버렸다. 이후 간난신고를 겪으며 정치재개를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그때마다 나의 핀잔을 들으셔야 했다.
박 교수가 2004년, 한나라당 요구로 공동선대위원장과 비례공천위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박 교수와 함께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지금은 그의 장지가 된 안성 도피안사 내 서재에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결국 서울대 법대 교수로 인생을 마치기에는 학식과 경륜이 아깝지 않느냐 등등 이유를 들어 내가 대찬성을 하였는데, 어쨌든 박 교수는 정치인이 되고, 정말 좋은 사람들을 정계로 입문시켰다.
그 뒤 한두 달에 한 번 내려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만 세종시 문제가 생겨 겨우 시작한 정치를 중간에 접어버린 것이다. 사표 내고 박근혜와 정치적 결별을 선언할 때 나는 그와 함께 도피안사에 있었다. 당시 나는 박근혜의 패악질을 똑똑히 보았다.
이후 박 교수는 통일을 화두로 잡고 통일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안성 용설저수지 갓길을 걸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분단된 대한민국을 통일시킬 수 있을까 의논했다. 박 교수는 도피안사 내에 있는 서재에서 이 책을 집필했는데, 나는 윤문을 해드렸다. 이 책에 나오는 문화예술 분야는 주로 내 의견을 박 교수가 검증해서 다루었다.
그 뒤 박교수는 정치 재개를 여러번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국민생각이란 정당을 할 때는 내가 제법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아쉬움을 기록한 글이 이 블로그에 비공개로 적혀 있다.
정치에서는 늘 2% 부족하셨다. 다른 건 다 우수한데 딱 그게 모자랐다. 내가 입이 아프도록 건의를 드려도 “아이, 너무 나이브해” 이러면서 行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박 교수에게 ‘붓을 들고 전쟁터에 나간 학자’로 이해하고 ‘전쟁은 칼로 하는 거지 붓으로는 못하며, 정치는 붓으로 하는 거지 칼로 못한다’는 말씀을 끝으로 이 분에 대한 기대를 사려두었다.
이후 나는 박 교수와 함께 뜻을 모은 ‘통일’을 실현할 ‘큰바위얼굴’을 박 쇼누가 아닌, 딴 인물에게서 찾기로 했다. 2015년 초부터 나는 박 교수와 의논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큰바위얼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년 초에는 작은 결실을 이루어 국민의당이 태어났다. 국민생각이나 국민의당이나 국민이 들어간 건 우연이지만, 국민생각은 내 아이디어가 일절 안 들어간 ‘박 교수의 붓’으로 태어난 정당이고, 국민의 당은 내가 2015년 초부터 내 땀을 바친 ‘지혜의 칼’로 만든 당이다. 그래놓고도 나는 당과 거리를 둔 채 따로 큰바위얼굴을 찾는 일을 계속 해왔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팀이 있어 양쪽에서 찾았다.
이제 나는 오는 12월 20일 이후, 내가 찾은 큰바위 얼굴을 내놓을 것이다. 어머니 49재가 21일이니 그 안에는 정치 발언이나 행동을 삼가고 있다.
박 교수가 비록 하늘로 가셨지만 그 분이 나를 통해 길러주신 통일의 꿈을 ‘큰바위 얼굴’에게 맡겨보련다. 그러기 위해 나는 평생 배운 지식과 홀로 깨우친 지혜를 모두 끌어모아 무거운 사명감을 안고 ‘통일’ 전선에 나서겠다.
박 교수는 2020년까지 통일이 안 되면 부끄러워 어떻게 사느냐고 내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나보다 10살이 많으시니 나의 목표는 2030년이 될 수도 있지만, 목표는 박 교수가 정한 2020년으로 그대로 둔다. 2009년에 박 교수가 한반도선진화재단으로 통일 운동을 할 때 나는 2020onekorea라는 카페로 통일 사상을 전파시켰다.
나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박세일 교수를 기리기 위해, 나는 올해 대선에서 반드시 큰바위 얼굴을 당선시켜 통일의 초석을 놓기로 굳게 결심한다.
[블로그 발췌] 원본 URL: http://blog.daum.net/biocode/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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