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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반공만 외치면 보수냐, 약자 눈으로 세상을 보라
 
2020-02-13 10:13:59

[김기철의 시대탐문] [7]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건국·산업화 이끌었으나 약자 배려·인권 문제에 소홀… 따뜻하고 품격있는 보수돼야
표만 노리는 포퓰리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보수 야당, '자유주의 수호' 치열함 없어"

10일 낮, 박재완(65) 성균관대 교수의 연구실 서가는 텅 비어 있었다. 이달 말 정년퇴임이라 방을 비워주는 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2014년부터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17대)과 청와대 수석(정무·국정기획), 장관(노동·기재)을 지내 정·관·학계를 두루 거친 정책 전문가다.

조국 사태로 나라가 두 동강 나고 경제가 어려워도 대통령과 정권은 '마이웨이'를 고집한다. "야당 복은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정권을 견제할 만한 정치 세력이 없어서다. 개혁 보수를 대표하는 싱크탱크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재단은 마침 '대한민국 선진화의 길'이라는 정책 제안집을 냈다.

―정부가 폭정·실정을 해도 야당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

"보수 정치인들은 자기희생이 없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한다. 낡고 때묻은 정치인이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선다. 이들이 진짜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바닥까지 추락했는데도 현실 파악을 못 한다. 지하실까지 내려가야 정신 차릴까."

―정치인에게만 책임이 있나.

"한국의 보수는 건국과 산업화는 물론 민주화, 세계화까지 상당한 공이 있음에도 변화에 둔감했다. 약자를 끌어안거나 인권 문제에 소홀했고 이런 과오에 대한 반성이 미흡했다."

―이번 정책 제안집에선 배려와 포용, 품격을 갖춘 자유주의를 내걸었다.

"자유주의는 자기만 잘살겠다는 게 아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약자를 끌어안는 이념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이기적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보수의 문제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반공(反共)만 앞세우면 보수가 되나. 보수의 가치가 뭔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

―보수의 대안은 왜 인기가 없나.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 대선 공약을 비교해봤다. 북핵 문제를 제외하면 어느 당 공약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최저임금제나 아동 수당 같은 선심성 공약은 여야 모두 차이가 없었다. 표만 얻으면 된다는 포퓰리즘 때문이다. 악착같이 덤비는 전투력이 떨어진다. '웰빙 보수'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한국은 해방 이후 미·일과 동맹·협력을 통해 산업화, 민주화를 달성했다. 좌파는 대한민국 주류 세력은 친미·친일파라고 비난하는데, 이런 선동이 먹힌다.

"우린 문명국과 연대, 협력을 통해 발전했다. 인권, 자유, 평등, 박애 등 문명적 가치를 공유한다. 북한은 모든 문제를 미국과 일본 탓으로 돌린다.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다. 민족을 내세우는 선동에 대중이 너무 쉽게 넘어간다. 한·미 FTA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지만, 한·EU FTA나 한·중 FTA는 거의 갈등이 없었다는 건 뭘 의미할까."

―보수가 약자에게 무관심하고 자기희생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건 타당한가.

"서구 보수에 비해 우린 자기희생이나 솔선수범이 약하다. 약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들이 배려받는다거나 보수가 공동체 전체를 위해 헌신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 건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로 공화(共和)주의를 내걸었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권력이나 다수결, 여론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보장한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입장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진영 갈등 때문에 요원해졌다."

―대법원부터 방송통신위원회까지 국가 중요 기구의 독립성·중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과제다.

"프로페셔널리즘이 필요하다. 전문가를 그 자리에 앉힌 이유는 임명권자의 뜻에 무조건 따르라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이다. 전문가 집단이 반성해야 한다."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 주도로 2006년 출범한 한반도선진화재단 유료 회원은 700여명이고,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받는 수신인은 3만5000명쯤이라고 한다. 박 이사장은 "기업 후원금은 2017년 정권 교체 후 거의 끊겼고 소액 후원금과 회비로 살림을 꾸려나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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