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이사장 이임사 영상>
다시 義兵(의병)을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가족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너무나도 모자라는 제가 이처럼 숭고한 부름에 감히 응답하게 되어 참으로 어깨가 무겁습니다.
저의 무능과 불찰 때문에 ‘공동체 자유주의’를 기치로 한반도 통일과 선진화에 관해 그동안 재단이 쌓아온 명성에 累(누)를 끼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정무직에 있던 사람이 민간 싱크 탱크를 맡으려니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엊그제까지의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처지에, 과연 무엇을 지적하고 어떤 대안을 낼 수 있을지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사정이 어려운데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더 무책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여러분을 믿고 견마지로를 다하기로 했습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은 광복 이후 ‘기적의 역사’를 써내려 왔습니다.
온 세계가 우리를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의 典範(전범: Role Model)으로 손꼽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국지적인 사안에 집착해 시대의 큰 흐름을 놓치곤 했습니다.
단기 현안에 매몰돼 꼭 해결해야 할 중장기 전략과제를 미루어두기도 했습니다.
한선재단은 우리나라의 이런 현미경과 근시안 성향, 그리고 무책임한 낙관론에서 파생된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힘써왔습니다.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던 남북통일 담론의 불씨를 지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치권과 정부 등이 외면하는 근원적인 구조개혁 처방을 꾸준히 환기시켜 왔습니다.
박세일 前이사장님을 비롯한 한선 가족 여러분의 애국심에 힘입어, 재단은 창업의 産苦(산고)를 이겨내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민간 싱크 탱크의 불모지에서 오로지 사명감만으로 헌신해 오신 그 노고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한선재단이 盤石(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아직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더구나 재단이 목표로 삼은 ‘한국의 Brookings나 Heritage’가 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아직은 ‘守城(수성)’을 말할 계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내실을 다지자고 할 단계까지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2의 창업’이나 뼈를 깎는‘更張(경장)’을 해야 할 형국입니다.
이는 창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병력도 보강하고 군자금도 늘려야 합니다. 심지어 어느 회원은 軍旗(군기)마저 바꾸자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선 가족의 중지를 모으겠습니다. 마음 비우고, 가슴으로 듣겠습니다.
사랑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가족 여러분,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의 깔딱 고개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官兵’(관병: 정치권ㆍ정부)의 인기영합주의와 ‘鄕兵’(향병: 지역ㆍ직역ㆍ이념ㆍ계층ㆍ이익집단)의 小(소)집단 이기주의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義兵(의병)’이라도 나서야 하겠습니다.
허약한 ‘官兵(관병)’과 탐욕스런‘鄕兵(향병)’에게만 나라 장래를 맡길 수 없습니다. ‘관병’이 꺼려하는 ‘좀비’와의 격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로 성장잠재력은 눈에 띠게 줄어들고 복지부담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런 추세를 뒤집을 돌파구는 좀처럼 제시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장잠재력부터 복원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북돋워야 합니다.
규제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정책방향은 정말 시의적절합니다.
하지만 민영화가 죄악시되고 개방과 경쟁에는 미운 털이 박혔으니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큰 틀을 뒤엎지 않고 고작 ICT 융합과 확산에 매달린‘창조경제’는 발상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는 難題(난제)입니다.
창조는 곧 파괴입니다.
30년 뒤에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지금의 고등교육시스템은 아예 판 갈이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자원빈국이면서도 인구가 밀집된 숙명이 잉태한 ‘에너지 수급의 역설’도 ‘창조’없이 극복할 수 없습니다.
당장은 아파도 체질을 바꾸는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일자리를 둘러싼 숙제도 쌓여만 갑니다. 통상임금 연착륙,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고용 유연성 제고 등 노사 현안을 풀지 못하면, 잠재성장률 4%나 고용률 70%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외환위기는‘기술적 파산’(Technical Breakdown)에 그쳤지만, 이대로 가다간 ‘원천적 파산’(Fundamental Breakdown)을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백년대계를 놓고 이성에 바탕을 둔 차분하고 성숙한 논의보다 감성을 앞세운 진영논리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두고 ‘네 탓’공방의 지루한 샅바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두 마음을 다 모아도 힘겨울 터인데, 편 가르기에 몰두해 뺄셈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예비후보들이 명함 돌리고 하루가 멀다고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습니다. 무엇이 되겠다, 어떤 자리에 오르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노라는 포부를 펼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입니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결단을 내린 이후 평화로운 질서가 구축된 지 한 세대가 지났습니다. 이 기간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당사국들의 리더십이 한꺼번에 바뀌면서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암묵적ㆍ잠정적이던 불안한 균형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지금까지 그나마 지켜져 왔던 정경분리원칙마저 흔들리는 듯합니다.
지정학적 여건 등에 비추어, 우리는 연대와 협력 없이 自彊(자강)만으로 버티기 어렵습니다.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은 적어도 주축 선수(Key Player)로서 전략적 중재 역할에 나서야 합니다.
동북아의 새 질서 구축을 주도해야 합니다.
특히 장기 후순위과제로 치부하고 일상에선 제쳐두었던 한반도 통일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다행히 정부는 어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는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한선재단도 지금까지의 청사진과 총론을 뛰어넘어, 분야별 통일 각론과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다듬어나가야 하겠습니다.
한선재단 가족과 내외귀빈 여러분!
분에 넘치는 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세일 前(전)이사장님께서도 계속 지도와 편달을 해주시기로 약속하셨기에 든든합니다. 逆水行舟(역수행주: 물길을 거슬러 노를 젓다)의 마음으로 진력하겠습니다.
不偏不黨(불편부당)과 實事求是(실사구시)의 자세로 전문가의 식견을 모으고 널리 알려서 正論(정론)이 衆論(중론)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바른 목소리(Voice)를 크게 내서 국민들 마음이 나라에서 떠나지(Exit)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모한 쏠림 현상이나 대중인기 영합주의(Populism)에는 불퇴전의 각오로 경고음을 내겠습니다. 巧言令色(교언영색)과 朝三暮四(조삼모사)를 꾸짖고, 卓上空論(탁상공론)과 南橘北枳(남귤북지)를 경계할 것입니다.
한선재단의 정책 Marketing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선진국 못지않게 정책公論(공론: Public Deliberation)이 활성화되도록 매진하겠습니다.
부디 힘을 모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4. 2. 26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