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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415호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

< 목 차>
1. 고도로 기획된 김정은 방중
2. 김정은의 방중은 ‘새판 짜기’의 서막
3. 우리는 ‘평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1. 고도로 기획된 김정은의 방중
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한반도와 북한에 집중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김정은을 둘러싼 중병설과 신변 이상설, 나아가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사망설'이 극단적으로 대두되며 대외 정책 판단이 소용돌이치던 바로 그 순간, 김정은은 세간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가는 파격적인 행보를 감행했다.
그가 향한 곳은 외교적 격식을 차리는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이 아니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 북중 국경을 가로지르는 최전선 도시이자 역사적 상징성이 집약된 바로 그곳이었다. 김정은이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기념일(10월 25일)을 불과 하루 앞둔 10월 24일, 단둥의 ‘중국인민지원군 기념관(항미원조기념관)’을 전격 방문한 사건은 단순한 대외 행보 이상의 중대한 정치·지정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방중은 그 시기와 동선은 물론 전달한 선물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계산된 고도의 연출이었다. 무엇보다 완공 후 12년 만에 마침내 정식 개통된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당일치기로 국경을 왕복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는 북중 양국이 물리적으로 언제든 육로를 통해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양국 간의 경제·안보적 유대가 차단될 수 없는 혈연적 관계임을 강력히 천명한 일이다.
러시아와의 군사적 밀착 및 우크라이나전 파병으로 북러 관계가 전례 없는 밀월기를 맞이하면서, 북한으로서는 자칫 중국과의 전통적 관계가 소원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성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김정은이 굳이 참전 기념일 전날 단둥의 기념관을 찾아 헌화하고 사료를 관람한 것은, “오늘의 조선을 있게 한 것은 과거 중국군의 참전과 희생이었다”라는 역사적 부채와 감사를 공식 표명한 셈이다. 실제로 이튿날 노동신문이 ‘피로 맺어진 혈연적 관계’와 ‘불변의 친선’을 재차 강렬한 어조로 성토한 점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2. 김정은의 방중은 ‘새판짜기’의 서막(?)
일각에서는 시진핑 주석과의 정식 정상회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격에 맞지 않는 조용한 방중’이라 저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행보는 베이징에서의 형식적 의전이나 양자 정상회담이라는 격식을 챙기는 자리가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절체절명의 정점에서 북중 간의 단단한 혈맹 구조를 재확인하고 대외적 불확실성을 일시에 제압하기 위한 실리적·상징적 제스처라는 점이다.
특히 이번 방중에서 김정은이 기념관 측에 선물한 ‘기념판’에는 “두 나라의 지경을 한 지맥으로 이어놓은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들의 발자취를 경건히 추억하며 영원한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 문구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과거 김정일 시대 ‘조선 지도’에 각인되었던 “우리 조국은 하나의 지맥(地脈)으로 이어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문구처럼, ‘지맥’이란 단어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자 하나의 뿌리를 뜻한다. 그 철학적·상징적 어휘를 중국과의 역사적 장소에 건넸다는 것은, 양국이 단순한 이념적 동맹을 넘어 영토적·역사적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깊은 경고적 공감대를 내비친 것이다. 결국 김정은은 과거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연출되었던 ‘북·중·러 삼각 연대’의 단단한 틀을 단둥의 현장에서 다시금 재현해 낸 셈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왜 갔느냐를 넘어, ‘이것이 요동치는 한반도에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추가 파병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북중러 3각 축의 안보 밀착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동북아의 안보 구도는 판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다.
이번 김정은의 단둥행은 최근 북한이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대남·대외 전략의 거대한 판짜기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대내외적으로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고, 남북 연결 도로와 철도를 완전히 끊어내며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철조망과 장벽으로 메우는 ‘국경 요새화 작업’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 선명한 대비를 직시해야 한다. 남쪽을 향해서는 차가운 콘크리트 장벽과 지뢰를 묻으며 민족적·영토적 단절을 선언한 반면, 북쪽을 향해서는 신압록강대교를 내달리며 중국과의 ‘지맥’을 강조하는 것이다. 즉, 김정은의 방중은 “남쪽은 단단한 국경으로 철저히 막아 차단하고, 북쪽은 중국·러시아와 전략적으로 연계하여 생존과 공세를 도모하겠다”는 대전환적 국방·외교 노선의 완성형 퍼포먼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우리는 ‘평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북한은 이처럼 철저하게 진형을 정비하고 북중러 삼각동맹을 공고히 하며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는데, 정작 이를 맞아 싸워야 할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북한이 러시아에 추가 파병을 단행하고 중국과의 혈연관계를 다지며 삼각 연대를 강화할 때, 우리 내부에서는 오히려 전통적 한미동맹의 균열을 꾀하는 안이한 태도가 팽배해지고 있다. 동북아 안보의 핵심축이어야 할 ‘한미일 안보 협력’이나 ‘한미일 동맹’이라는 단어는 정책 당국의 입에서조차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동맹은 시들어가고, 적들의 연합은 날로 단단해지는 기형적인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우리 군과 장병들의 피흘림 앞에서도 눈을 감는 정부의 굴종적 태도다. 최근 DMZ 일대에서 북한의 국경 요새화 작업 중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로 우리 장병이 심각한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명백한 안보 위협이자 도발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단정할 수 없다”라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북한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피땀 흘려 나라를 지키던 청년 장병이 피를 흘렸음에도 주적의 책임을 묻지 못하는 정부를 보며, 국민은 “대체 이 정부의 조국은 어디인가”라는 분노 어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여전히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외면한 채, 실체도 없는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이라는 환상 속의 수사만을 반복하고 있다. 적이 칼을 갈며 국경을 요새화하고 삼각 동맹으로 압박해 오는 데, 구호뿐인 평화론 뒤에 숨어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무책임한 방임이자 명백한 직무 유기다.
김정은이 왜 중국으로 향했는가, 그가 단둥에서 건넨 지맥(地脈)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명확해졌다. 북한은 이미 판을 새로 짜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정세는 해방 이후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고 있다. 구호에 불과한 평화 구걸로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즉각 안이한 평화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한미동맹을 압도적인 수준으로 강화하고, 자취를 감춘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 우리 장병의 피와 국토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안보는 안보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급변하는 안보 지형을 냉정히 직시하고, 국가의 생존을 걸고 비상한 안보 태세를 재구축해야 하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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