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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공정거래위원회에 바란다] 통권414호
 
2026-10-20 16:43:09
첨부 : 261020_brief.pdf  

Hansun Brief 통권414호 

 

최창규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 목 차>

 

  1. 1. 서론: 학자의 견해가 아니라 심판의 문제다

2. 시장점유율과 시장지배력은 다르다

3. 정부가 만든 경쟁제한: 관세와 포지티브 규제

4. 슘페터 동태적 경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재벌에 대한 선입견보다 경제적 증거가 우선해야 한다

6. 심판의 중립성: 사전 발언, 기준 없는 조사, 엇갈린 법원 판단 

7. 쿠팡 사태와 통상 리스크

8. 경쟁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9. 맺음말: 경쟁을 보호할 것인가, 경쟁자를 보호할 것인가

 

 

 

1. 서론: 학자의 견해가 아니라 심판의 자리가 문제다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교수 시절 재벌을‘착취적 대한민국’의 주역으로 지목한 데 대해 “표현은 과도했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기업이라는 지적에는 기업이 시장경제의 주인공이고 공정위는 심판이라고 했다.

 

문제는 학자 시절의 견해 자체가 아니라 그 견해를 가진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다. 공정위는 조사하고, 심의하고, 제재하는 권한을 한 기관에 모은 조직이다. 수장이 특정 기업집단을 ‘착취의 주체’로 보는 인식을 유지하는 한, 그 인식이 사건의 선별과 조사 강도에 스며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제도 안에 없다. 신뢰는 ‘심판’이라는 말이 아니라 기준과 절차에서 나온다.

 

물론 부당 내부거래,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경쟁사업자 배제는 엄정하게 규제해야 하고, 공정거래법이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목적에 포함한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이 크다는 사실과 경쟁을 제한했다는 증거는 다르다. 이 글은 시장지배력 판단의 경제학, 정부가 만든 경쟁제한, 집행의 절차적 공정성을 차례로 점검한다.

 

경쟁정책은 기업이 얼마나 큰가 보다 실제로 얼마나 강한 경쟁압력에 직면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하며, 집행기관 스스로가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2. 시장점유율과 시장지배력은 다르다

 

시장점유율은 독점력 판단의 출발점이지만 종착점은 아니다. 시장지배력은 경쟁의 압력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가격을 올리거나 생산량을 줄일 수 있는 능력이다. 점유율이 70~80%여도 소비자가 쉽게 다른 공급자로 옮겨 갈 수 있다면 그 능력은 제한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그 예다. 국내 가격이 5% 오를 때 수입차 수요가 20% 늘면 교차가격탄력성은 4로, 대체성이 크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수입 비중이 아니라 가격이 오를 때 소비자가 얼마나 빨리 옮겨 가는가이다.

 

따라서 가격탄력성, 대체 가능성, 수입경쟁, 신규 진입 가능성을 종합해야 한다.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산업은 국내 점유율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반도체라도 D램, 낸드플래시, 고대역폭메모리(HBM)는 용도가 달라 서로 대신 쓰기 어렵다. 그래서‘반도체 시장’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제품별로 경쟁 상황을 따로 봐야 한다.

미국·일본·EU의 경쟁 당국도 수입 경쟁과 잠재적 진입을 함께 평가하며 한국의 심사기준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문제는 기준이 아니라 집행에서 그 기준이 얼마나 충실히 적용되는가이다.

 

3. 정부가 만든 경쟁제한: 관세와 포지티브 규제

 

독과점을 논할 때 정부의 무역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관세와 비관세장벽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지만, 해외 경쟁을 약화시켜 국내 기업의 가격결정력을 높인다. 국내 기업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원인이 높은 관세에 있다면, 기업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보다 수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불러오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일 수 있다. 물론 관세에는 산업안보와 통상협상이라는 별도의 목적이 있고, 관세가 있다고 담합이 정당화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경쟁제한의 원인이 기업의 행위인지 정부가 세운 장벽인지는 구별해야 한다. 원인은 방치한 채 결과인 시장집중만 문제 삼는다면 정책이 자기모순에 빠진다.

포지티브 규제도 마찬가지다. 법령이 허용한 사업만 가능한 원칙금지·예외허용 방식에서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허용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진입 자체가 막힌다. 이때 기존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은 경쟁력이 아니라 제도적 보호의 결과일 수 있다. 신기술·신산업에서는 원칙허용·예외금지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만 생명·안전, 환경, 금융안정처럼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큰 분야는 위험이 큰 만큼 규제를 계속 유지하면 된다.

공정위가 경쟁촉진을 중시한다면 기업의 지배력을 규제하는 만큼 정부가 만든 경쟁제한적 제도도 점검해야 한다. 이는 규제완화가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를 불러들이는 경쟁정책이다.

 

4. 슘페터의 동태적 경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점유율 중심 판단의 더 근본적인 한계는 기술혁신에 따른 동태적 경쟁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경쟁이 기존 기업 간 가격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기술·사업방식이 기존 시장구조를 무너뜨리는 창조적 파괴에 있다고 보았다.

구글은 오랫동안 검색시장을 지배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이용자들이 대화형AI를 쓰기 시작했다. 검색이 완전히 대체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신기술이 기존 시장의 경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점유율이 90%여도 신기술과 신규 진입으로 지배력이 빠르게 약해질 수 있고, 점유율이 낮아도 핵심 기술이나 필수 유통경로를 쥐고 진입을 봉쇄하면 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언젠가 새 기술이 나올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현재의 경쟁제한 행위를 용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동태적 경쟁을 고려한다는 것은 독점규제를 풀자는 뜻이 아니라 규제를 정확하게 하자는 뜻이다.

 

5. 재벌에 대한 선입견보다 경제적 증거가 우선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은 규모의 경제와 내부자본시장, 대규모 연구개발을 통해 효율성을 만들 수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배터리처럼 막대한 자본과 장기 기술개발이 필요한 산업에서는 집단의 자원조정 능력이 국제경쟁력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내부거래가 사익편취와 경쟁자 배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며, 이는 법에 따라 규제해야 한다.

 

핵심은 구별이다. 거래비용을 줄이고 품질관리를 높이는 계열사 거래와, 부당한 조건으로 지배주주에게 이익을 옮기는 거래는 다르다. 규모와 내부거래의 존재만으로 반경쟁성을 단정할 수 없으므로 기업관은 일반적 가치판단이 아니라 구체적 증거와 법적 기준에 기초해야 한다.

 

비유를 들어 보자. 덩치가 커서 남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특별 감시대상에 올리고, 덩치가 작은 사람은 제외하는 법이 합리적일까? 덩치가 크다고 남을 해치는 것도, 작다고 해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법이 감시할 것은 덩치가 아니라 남을 해친 행위다.

기준의 일관성도 문제다. 규모가 위험의 근거라면 한국전력 같은 대형 공기업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동일인(총수)인 기업집단은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따라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된다. 위험의 기준이 규모가 아니라 소유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국제경쟁도 외면할 수 없다. 국내에서 큰 기업이 세계시장에서는 더 큰 거인과 겨룬다. 국내 자산 규모만으로 사전 규제의 부담을 지우고 세계시장의 거대 경쟁기업에는 같은 규제가 미치지 않는다면, 경쟁을 촉진한다는 법이 오히려 우리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막는 역설이 생긴다.

 

증거를 기준으로 보면 ‘착취’라는 표현은 가격, 품질, 투자, 고용 같은 측정 가능한 지표로 입증되지 않는 한 정치적 수사다. 학계라면 가설로 남겨도 되지만, 제재권을 쥔 기관장이 입증되지 않은 전제를 유지하면 그 자체가 집행의 위험요인이 된다.

공정거래정책의 신뢰는 대기업에 대해 얼마나 강한 표현을 쓰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경쟁제한 행위를 가려내고 일관되게 집행하는가에 달려 있다.

 

6. 심판의 중립성: 사전 발언, 기준 없는 조사, 엇갈린 법원 판단

 

국감에서는 집행의 절차도 쟁점이 됐다. 위원장이 방송에서 의결 전 사건을 언급했다는 지적에 위원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편파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해명과 별개로, 심의 전 사건이 거론되면 심판이 결론을 미리 말한 것처럼 보인다.

 

기준 없는 집행도 문제다. 상표권 사용료 조사에서 적정 수준의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고, 위원장은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기준 없이 조사부터 하면 기업은 위법 여부를 예측할 수 없다. 조사권을 강화하는 만큼 견제 장치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법원의 판단도 엇갈렸다. 쿠팡 현장 조사는 법원 결정으로 한동안 중단됐다가 이후 법원이 쿠팡의 신청을 기각했고, 일부 사건에서는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졌다고 보도됐다. 구체적 사유가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어느 쪽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조사가 재개되더라도 기준과 절차의 정당성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7. 쿠팡 사태와 통상 리스크

 

쿠팡의 현장조사 거부는 정당화될 수 없다. 여야 모두 비판했고, 법 집행에서 국적은 면책사유가 아니다. 문제는 방식과 결과다. 야당은 위원장이 조사 전에 영업정지를 거론해 미국의 반발을 불렀다고 주장하지만, 둘 사이의 직접 연관은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는 것은 미국의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도 한미 무역합의의 비차별 약속을 거론하며 한국의 대응을 우려했다는 점이다. 미국 측은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제재가 지나치다고 본다고 알려졌다. 위원장은 국적과 무관하게 집행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공식 무역 조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이를 차별로 받아들이는 이상, 위원장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전 발언은 통상 마찰의 비용을 키울 수 있다. 또 쿠팡은 재벌이 아니므로 재벌관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재벌이든 외국계 플랫폼이든 문제는 같다. 사건마다 증거와 절차에 따라 판단하는지, 선입견이 앞서는지다.

 

8. 경쟁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경쟁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업의 규모 중심 접근을 넘어 다음 다섯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시장점유율은 출발점으로 쓰되 가격탄력성, 대체 가능성, 수입경쟁, 신규 진입을 함께 분석한다.  둘째, 관세와 인허가 같은 정부 스스로의 경쟁제한을 점검하고, 신산업에서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확대한다. 셋째, 기술혁신과 새 경쟁자의 등장 가능성을 평가하되, 막연한 기대를 이유로 지금의 불법 행위를 봐주어서는 안 된다. 넷째, 대기업집단 규제에서는 경제력 집중, 사익편취, 경쟁제한, 효율성을 구별하고, 자산 규모보다 행위와 경쟁효과를 기준으로 삼는다. 다섯째, 집행의 절차를 바로 세운다. 의결 전 개별 사건은 공개 발언을 자제하고, 상표권 사용료처럼 판단이 갈리는 사안은 기준을 먼저 공개한 뒤 조사한다. 조사권을 키우는 만큼 견제 장치를 두고, 외국 기업 사건에서는 통상 영향까지 고려해 근거와 절차를 투명하게 설명한다.

이는 불공정행위를 방치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는 엄정히 제재하되, 제재가 예측 가능하고 정당하다는 신뢰를 갖추자는 것이다.

 

9. 맺음말: 경쟁을 보호할 것인가, 경쟁자를 보호할 것인가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기업 규모를 일정 수준 이하로 묶어 두는 과정이 아니다. 새로운 기업이 진입하고, 새 기술이 기존 제품을 대체하며, 소비자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다. 정부가 보호할 것은 특정 기업이나 기존 시장구조가 아니라 자유로운 진입과 혁신이 가능한 경쟁의 과정이다. 여기서 경쟁자는 경쟁에서 밀릴 위험에 놓인 특정 사업자, 곧 정부의 보호를 받는 기존 사업자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우대받는 경쟁 상대를 말한다.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선택을 주는 경쟁 대신 이들의 자리를 지켜 주는 정책은 오히려 경쟁을 해친다.

 

국감에서 드러난 공정거래위원장의 기업관 논란도 같은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대기업집단의 부당행위는 규제해야 하지만 규모를 반경쟁적 행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심판은 선수의 크기가 아니라 증거와 절차에 따라 판정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거인 취급을 받지만, 세계시장에서는 더 큰 거인과 싸우는 기업에, 국내 덩치만을 이유로 족쇄를 채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경쟁정책인가? 독점의 본질은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경쟁의 부재에 있다. 경쟁을 제한하는 주체가 기업이든 정부든, 원인을 정확히 찾아 고치는 것이 올바른 경쟁정책의 출발점이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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