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0_brief.pdf
Hansun Brief 통권406호
1. 독일의 나라 곳간은 신성불가침
2. 나라 곳간은 비상시에만 열린다
3. 혈세 낭비, 국민이 깨어야 막을 수 있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대규모 초과 세수가 예상되는 가운데, 사용 방법을 놓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고 정치권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포퓰리즘적인 긴축재정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된다”라며 확장 재정 의사를 밝혔다. 나라 곳간을 헐어 선심성 돈을 뿌리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데, 거꾸로 신중하고 질서 있는 재정정책을 오히려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그 발상이 놀랍다.
한국의 확장 재정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나라가 독일이다. 한국은 나랏돈을 너무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독일은 너무 안 써서 문제가 되는 나라다. 그렇다면 독일은 포퓰리즘에 젖어있는 국가이고, 한국은 정상적인 국가라는 말인가? 독일 재정정책 운용 동향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1. 독일의 나라 곳간은 신성불가침
독일 국민은 빚을 지는 것을 싫어한다. 이들에게 빚은 근심의 근원이다. 빚(민간 채무)은 독일어로 슐트(Schuld)라고 하는데, 죄(罪)라는 뜻과 같이 쓰인다. 나랏빚(국가 채무)은 더 무겁다. 대죄(大罪, Todsuende), 죽을죄에 해당한다. 나라가 빚을 지고 못 갚으면 후세대가 갚아야 한다. 이것은 세대 간 불공정을 일으키는 범죄행위다. 나라 곳간은 그 나라 최후의 보루다. 특히 독일에서 나라 곳간은 신성한 곳이다. 그래서 독일 정치인 어느 누구도 죄를 지지 않기 위해 신성한 곳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이렇게 빚을 무서워하는 국민정신은 재정정책에 그대로 나타난다. 안정 기조하에 보수적으로 예산을 집행한다. 이러한 운영이 독일 경제 침체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비판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도 독일 정치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2000년대 초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실업자가 500만 명을 넘었을 때도 확장 정책을 쓰지 않았다. 선심성 지출은 없었다. 대신 「어젠다 2010」이라는 강력한 구조조정 정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냈다.
독일은 한발 더 나아가 나라 곳간에 아예 자물쇠를 채워 버렸다. 2009년 헌법을 개정하여「채무제동장치(Schuldenbremse, debt brake)」를 도입한 것이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원칙적으로 균형예산을 편성하도록 하고, 연방정부의 신규 기채(起債) 규모는 GDP의 0.35%를 넘을 수 없도록 했다. 이 덕분에 국가 채무가 감소하여 2014년에 균형예산을 이루고 2015년부터는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독일 국민이 정치인의 포퓰리즘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자민당 사건이다. 자민당은 독일 연방의회 내 제3당으로서 제1당과의 연정(聯政)을 통해 집권한 경험이 많은 유서 깊은 정당이다. 그런 자민당이 2010년대 초 독자적으로 중소 자영업자들에 대한 부가가치세 경감을 추진했다가, 2013년 총선에서 대패해 1석도 못 건지고 의회에서 퇴출되었다. 아무리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라 해도, 일방적인 감경에 대해 유권자들은 반(反)시장적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러한 재정 건전성 노력은 나라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현재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의 신용등급을 보면, 독일은 모두 최상위 트리플A (AAA, Aaa)를 유지하고 있다. 강소국을 제외하고 강대국 중에서 트리플A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 유일하다. 미국은 대규모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때문에 한 단계씩 낮은 더블A (AA+, Aa1)에 머물러 있다. 기축통화국도 나랏빚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나라 곳간은 비상시에만 열린다
그러면 독일은 국가 비상사태 때에도 곳간 자물쇠를 채워놓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보수적 재정운영을 하는 독일도, 국가 위기 시에는 나라 곳간을 열고 빚도 얻어 신속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까지 딱 두 번 있었다. 코로나 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2020년 코로나 때 한시적으로 ‘채무제동장치’를 완화하고 기채를 하여 5,260억 유로(약 900조 원)를 기업에 지원했다. 덕분에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감원을 안 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실업자도 늘지 않았다. 평소 아껴둔 세금을 꼭 필요한 곳에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한 결과다. 이렇게 엄청난 재정자금을 기업에 투입하면서도, 재난 지원금 명목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뿌린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다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다. 러/우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에너지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가격이 폭등하는 등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군사적으로도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동안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사이버 해킹, 테러, 방해 공작 등 사이버 범죄에 노출돼 있었는데, 아예 실질적 위협으로까지 가시화된 것이다.
사실 독일은 지난 세기에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킨 전범국으로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질 수 없었다. 당연히 핵무장도 할 수 없었다. 독일 스스로도 국제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유럽에서 힘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그러나 러/우 전쟁으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서 벗어나 자력으로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재무장에 착수했다. 향후 10년간 1조 유로(약 1,700조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경제를 살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해 국방비 기채 한도(,GDP의 1% 이내)를 없앴다. 이렇게 독일은 국가가 존명의 위기에 처할 때만 나라 곳간을 열고 빚을 얻어 필요한 곳에 돈을 쓰고 있다.
3. 혈세 낭비, 국민이 깨어야 막을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재정 상황은 비교적 건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4년 말 정부 부채는 GDP의 49.7%로, 독일의 62.2%보다도 양호하다. 그러나 이것은 공기업 부채 18.3%가 빠진 숫자임을 감안해야 한다. 공기업을 포함하면 68.0%에 이른다. 독일은 공기업 부채가 없다. 한국은 이미 저출산·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데다 저소득 취약계층도 늘면서 대규모 재정 지출 요인이 사방에 널려 있다. 한가하게 반도체 초과 세수를 나눠 먹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또 반도체 호황이 영원할 수도 없다. 정부 부채를 엄중히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먼저, 초과 세수는 국가 채무 상환과 미래를 위한 재투자에 써야 한다. 즉흥적 무분별한 나눠먹기식 돈 풀기는 재정 건전성을 훼손한다. 민생 쿠폰, 유가 지원금, 기본 소득, 국민 배당 등 나눠먹기식 일회성 지출은 단기 반짝 효과만 있을 뿐 장기 효과는 없다. KDI 분석에 의하면, 2020년 코로나 때 재난 지원금 26조 원의 매출 증가는 겨우 26∼36%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러한 소비지출을 마치 미래 투자인 것처럼 포장하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둘째, 재정 건전성 장치를 제도화해야 한다. 나랏빚이 많으면 신용이 떨어지고 국격이 흔들린다. 따라서 무분별한 재정 확장을 막기 위해 독일의 ‘채무제동장치’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동안 준칙 수준으로 운영되다가 그나마 유명무실화됐다. 곳간 자물쇠를 확실하게 채우려면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선 법률로라도 입법화해야 한다. 헌법도 안 지키는 정치인에게, 준칙은 아무 의미가 없다.
셋째,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선심성 돈 풀기는 매표 행위이며, 국가 붕괴의 단초가 되는 마약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후세대에 풍요로운 자산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빚까지 남겨서는 안 된다. ‘부채도 자산’, ‘승수효과론’, ‘착한 부채론’ 등 정치인들의 얄팍한 속임수에 더 이상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주권자인 국민이 깨어 감시해야 경박한 정치 행태를 막을 수 있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자료가 도움이 되셨다면 068801-04-137381(국민은행)로 후원해 주세요☆
한반도선진화재단은 비상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조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