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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401호
1. 민법 제781조 제1항의 변화와 개정안의 당위성
2.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이 우려되는 현실적 구조와 역학 관계
3. 외국의 지혜: 갈등을 완충하는 실리적·문화적 해결책
1) 미국과 영미권: '미들네임(Middle Name)'을 활용한 양가 성씨의 공존
2) 프랑스: '하이픈 복합성(Double-barrelled Name)'을 통한 대등한 결합
3) 일본: '이에(家)' 제도와 데릴사위제의 실리적 맞교환
4. 대한민국의 제도적 결함과 안착을 위한 전제 조건
인간의 성명(姓名)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뿌리와 문화적 정체성을 대변하는 법적·정서적 징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자녀가 아버지의 성씨를 이어받는 방식은 수천 년간 공고히 유지되어 온 근간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가족의 개념이 급격히 재구성되고 양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이 부계 중심의 성씨 승계 원칙 역시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 민법의 오래된 기둥이었던 '부성우선주의'의 폐지가 본격적인 입법 궤도에 오른 것이다.
성평등과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명분 아래 추진되는 이번 민법 개정 계획은 양성평등의 실현과 새로운 가족 형태를 포용한다는 측면에서 분명한 합리성과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가 지닌 정의로움이 현실에서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격렬한 젠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으며, 청년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두고 이익과 손해의 저울질을 치열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갈등을 흡수할 구조적 완충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던져진 급격한 제도 변화는 자칫 가뜩이나 취약한 결혼 시장을 위협하고, 또 하나의 거대한 갈등의 불씨가 될 우려를 안고 있다.
1. 민법 제781조 제1항의 변화와 개정안의 당위성
최근 성평등가족부는 민법 제781조 제1항에 규정된 부성우선주의를 사실상 폐기하는 내용이 담긴 '제5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6~2030)'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했다. 행정부 차원의 최종 관문을 통과한 이 계획은, 향후 국회의 민법 개정 절차를 거쳐 발효되면 자녀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합의하여 아버지의 성이나 어머니의 성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해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민법 제781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볼 때, 출생의 순간부터 아버지를 최우선 순위로 고정해 둔 현행법은 부모가 동등한 권리와 책임으로 가정을 구성한다는 현대적 헌법 가치와 배치되는 면이 있다. 출생신고 시점에 부과되는 성씨 선택의 자율성은 가부장제의 관습적 잔재를 청산하고 부모 대등의 시대를 연다는 측면에서 매우 합리적인 조치다.
특히 미혼모 가정, 한부모 가정, 혹은 이혼 후 재혼 가정을 생각할 때 이 법의 개정은 사회적 인권과 복지의 차원에서 절실한 과제다. 사회가 포용하고 보호해야 할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도 내부로 따뜻하게 끌어안기 위해서라도, 부성 원칙의 폐지와 선택권 확대는 인권적 측면에서 분명히 진일보한 변화임이 틀림없다.
2.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갈등이 우려되는 현실적 구조와 역학 관계
이처럼 제도의 취지가 숭고하고 가치론적 당위성이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2030 청년 세대가 마주한 결혼 문화와 정서 속에서는 심각한 젠더 갈등의 폭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가 이 거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부드럽게 수용할 정서적·제도적 완충 장치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갈등의 배경은 "결혼 시장에서의 물질적 책임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식으로 요구하면서, 가족 내부의 권리와 상징성은 철저한 서구식 평등주의를 요구한다"는 현실적 비대칭성에 있다. 오늘날 한국의 결혼 시장에서 남성은 여전히 주거 마련을 비롯한 경제적 부양의 주된 책임자로 기대되는 정서가 강하다. 청년 남성들은 군 복무라는 국가적 독박 의무와 무거운 결혼 비용을 감내하는 심리적 기저에, 내 가정을 꾸리고 나의 성씨를 통해 자녀에게 가문의 정체성을 물려준다는 전통적인 보상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분담이나 부양의 무거운 책임은 전통적인 가장처럼 남성에게 남겨둔 채, 가부장제의 상징적 권리였던 부성주의만 단칼에 평등이라는 명분으로 잘라내 버린다면 청년 남성들은 심각한 감정적 거부감과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비용과 권리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이 반발심은 청년 세대로 하여금 결혼 자체를 거대한 손해이자 리스크로 인식하게 만들어, 결혼 시장 진입 자체를 원천 차단(비혼주의)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학력, 자산, 소득이 비슷한 이른바 동질혼 관계일수록 이 갈등은 출산 시점에 부부 관계의 파국을 부르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기 쉽다.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는 바로 그 출생 직후는 가정 내에서 여성의 정서적 권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때다. 열 달 동안 아이를 배고 목숨을 걸어 출산한 아내를 보며, 남편은 극도의 고마움과 미안함, 부채 의식을 가지며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
만약 이 시점에 보상 심리를 강하게 가진 여성이 "내가 고생해서 낳았으니 내 성을 주는 것이 양성평등"이라며 사상적 명분만을 앞세워 엄마 성을 강력히 요구한다면, 남편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한 거대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마주하게 된다. 남편 입장에서는 집값과 경제적 책임을 동등하게 혹은 더 많이 졌음에도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다는 상처를 입지만, 이미 아이가 태어난 뒤이기에 이혼의 기회비용이 너무나 가혹해 이혼 소송을 제기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는 향후 육아 갈등이나 경제적 위기가 올 때마다 가정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잠재적 이혼 사유로 작동하여, 제도의 선한 취지가 도리어 가정 해체를 가속화하는 최악의 역설을 낳을 우려가 있다.
3. 외국의 지혜: 갈등을 완충하는 실리적·문화적 해결책
1) 미국과 영미권: '미들네임(Middle Name)'을 활용한 양가 성씨의 공존
미국을 비롯한 영미권 국가들은 부부동성제 전통이 강해서 약 80%의 여성들이 결혼 후 자신의 성씨를 남편의 성씨로 바꾸지만 일부 여성은 자신의 성씨를 유지한다. 이들이 자녀에게 엄마와 아빠의 정체성을 모두 물려주고 싶을 때 사용하는 가장 영리한 방식은 엄마의 원래 성(Maiden Name)을 자녀의 중간 이름(미들네임)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예컨대 첼시 클린턴의 법적 풀네임은 '첼시 로댐 클린턴(Chelsea Rodham Clinton)'이다. 법적인 성씨(Last Name)는 아빠의 성인 '클린턴' 하나로 유지하여 행정 전산망의 규격을 해치지 않고 관습을 존중하되, 이름의 한가운데에 엄마의 성인 '로댐'을 공식적으로 보존한다. 이 완충 장치 덕분에 영미권 가정에서는 아빠 성을 지우거나 엄마 성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치킨게임 대신, 양가의 자존심과 뿌리를 모두 살리는 평화로운 타협과 상생이 가능해진다.
2) 프랑스: '하이픈 복합성(Double-barrelled Name)'을 통한 대등한 결합
프랑스는 2005년 부성 원칙을 전면 폐지하면서 자녀에게 아빠 성, 엄마 성뿐만 아니라 부모의 성을 나란히 붙여 쓰는 하이픈 복합성씨 방식을 허용했다. 부부가 자녀 성씨를 두고 평행선을 달릴 때, 한쪽이 완패하는 굴욕을 주는 대신 두 성씨의 대등한 연대라는 절충안을 법이 직접 제공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완벽한 법적 자유 속에서도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 기준 여전히 약 80%의 가정이 관습에 따라 아빠 성을 단독 승계하고, 약 14%가 부모 성을 합쳐 쓴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혼외자 출산율이 60%를 넘을 정도로 동거(Pacs) 제도가 정착되어 부부간 성이 다른 것이 자연스럽고 젠더 갈등의 수위가 낮아, 여성이 자기 성을 요구할 때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사상적 무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성숙한 문화적 기저가 존재한다.
3) 일본: '이에(家)' 제도와 데릴사위제의 실리적 맞교환
일본은 법적으로 부부가 같은 성을 써야 하는 부부동성제를 고수하지만, 처가의 성을 따르는 예외적인 경우(약 4~5%)가 자연스럽게 용인된다. 이는 철저하게 데릴사위제라는 실리적 메커니즘 덕분이다. 처가의 가문이 막대한 자산가이거나, 전통 가업(전통 장인 가문, 중견 기업 등)의 대를 이어야 할 때, 남성은 자신의 성을 버리고 처가의 성을 따르는 선택을 받아들인다. 가문의 정체성과 막대한 경제적 자산·지위라는 확실한 실리적 맞교환이 성립하기 때문에 감정적 소모전이나 가정이 깨지는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4. 대한민국의 제도적 결함과 안착을 위한 전제 조건
선진국들의 사례가 보여주는 핵심은 명확하다. 제도가 자율성을 정착시키고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려면, 그것을 완충해 줄 문화적 관습이나 사법적 장치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이러한 완충 지대가 전무한 상태에서 법 개정의 페달만을 밟고 있다. 부성우선주의 폐지가 숭고한 양성평등의 가치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제도 시행에 앞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사법적·행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첫째, '미들네임'에 준하는 법적 완충 칸의 행정적 도입
현재 대한민국은 엄격한 단일 성씨 체계다. 중간 지대가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엄마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넣어주려면 아빠 성을 완전히 지워버려야 하고, 반대로 아빠 성을 지키려면 엄마 성을 완전히 없애야 하는 극단적인 싸움이 강제된다.
행정 전산망의 규격을 깨뜨려 대란을 유발하는 '하이픈 복합성' 대신, 자녀의 가족관계등록부와 주민등록 서식에 어머니의 성씨를 공식적인 미들네임(중간 이름) 형태로 병기할 수 있는 행정적 완충 칸을 신설해야 한다. 법적 성씨 규격은 아빠 성 하나로 유지해 행정적 안정성과 전통을 존중하되, 이름 한가운데에 엄마의 성씨를 공식적으로 얹을 수 있는 선택지를 준다면, 평범한 부부들이 출생신고 현장에서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도 상생할 수 있는 훌륭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둘째, 혼전계약서(Prenup)의 명확한 법적 효력 인정
감정이 가장 격앙되고 부부간 역학 관계가 극도로 비대칭적인 출산 직후에 자녀의 성씨라는 중대한 가치관의 문제를 결정하게 유도하는 것은 대단히 잔인하며 위험한 발상이다. 서구권처럼 결혼 전 이성적이고 냉정한 상태에서 부부가 재산 분할, 가사 분담과 함께 장래 태어날 자녀의 성씨 결정 방식을 미리 합의하고, 이를 문서화했을 때 법적 효력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혼전계약 제도의 정착이 선행되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책임 분담과 젠더 의식의 정서적 균형
제도가 부작용 없이 굴러가려면 청년 세대의 정서적 수용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책임은 전통적으로, 권리는 평등하게"라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남성에게만 과도하게 지워진 경제적 부양 부담과 주거 마련의 독박 관행, 군 복무에 대한 사회적 보상 등의 영역에서 남녀 간의 실질적인 권리·의무 균형이 함께 침착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아울러 여성계와 사상적 주도권을 쥔 진영 역시 이 제도의 승인을 가부장제에 대한 정치적 승리의 전리품이나 남성을 굴복시키는 사상적 무기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진정한 평등은 상대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가치 전쟁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기여를 인정하는 상호 존중 속에서만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781조 제1항의 부성우선주의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양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 미혼모 가정 등 소외받던 다양한 형태의 다정한 가족들을 사법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이정표다. 제도가 지닌 인권적 합리성과 당위성에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숭고하고 아름다운 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담아낼 사회적 완충 장치와 구성원들의 정서적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면 현실의 가정 내부에서는 날 선 흉기가 되어 부부의 결속을 도리어 와해시킬 수 있다. 일본의 실리적 타협이나 영미권의 미들네임 같은 완충 장치 없이, 정치적 타이밍만을 노려, 법 조문 수정을 서두르는 것은 평온하던 부부들을 극단적인 가치관 치킨게임의 외통수로 내모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정부와 입법부는 단순히 조문을 고쳐 성과를 자랑하려는 행정 편의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제도가 부르는 미묘한 가정 내 권력 균열과 청년 남성들의 박탈감을 달래줄 제도적 그물망을 촘촘히 짜는 사법적 보완책 마련에 먼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방향의 합리성에 깊이 공감하는 만큼, 그 이행 과정 역시 갈등과 해체의 상처가 아닌 상생과 통합의 따뜻한 여정이 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사법 체계의 성숙한 준비가 전제되어야 할 때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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