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Brief 통권330호
최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해리스를 지지했던 미국 여성들을 중심으로 4B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4B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2015년을 기점으로 일어났던 영 페미니스트의 급진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비결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등을 말한다. 미국 언론들은 4B 운동을 한국말 발음 그대로 표기하면서 no marriage, no child birth, no dating men, no sex with men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K 페미니즘의 4B 운동이 K팝, K드라마에 이어 미국에 수출된 것이다. 1980년을 전후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던 미국의 급진 페미니즘이 이제는 K 페미니즘이란 이름으로 미국에 역 상륙한 것이다.
1. 생식권 후퇴에 대한 미국 여성의 반발
미국 일부 여성들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생식권(여성의 임신, 출산, 낙태 등 생식과 관련된 자기 결정권)이 후퇴할 것을 염려한다. 그들은 선거유세 중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의원에게 여성 혐오적인 막말을 쏟아내고, 여러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4B 운동으로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세상은 망가졌다. 4B 운동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아이를 갖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한다. ‘South Korea처럼 4B 운동을 전개하여 미국의 출생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하자’라고 말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대선 후보 시절 여성 표를 의식하여 ‘연방 정부 차원의 낙태 금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낙태는 유권자 뜻에 따라 각 주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당선에 대해서 일부 여성들이 좌절한 이유는 트럼프 재임 기간이었던 2020년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미국 대법원이 보수우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낙태를 허용했던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50년 만에 뒤집었다(2022년). 이 건으로 미국의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낙태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2. 미국의 급진 페미니즘 대신 한국의 K 페미니즘
트럼프의 당선에 실망한 여성들이 미국의 오래된 2세대 페미니즘인 급진 페미니즘 대신 한국의 K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것은 의아한 일이다. 미국의 급진 페미니즘은 1968년 당시 전개되었던 68혁명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종의 반문화운동으로, 성이 가장 기본적인 억압의 토대라고 보았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남성의 틀에 의해 억압받는 존재라고 보았으며, 여성은 남성 억압으로부터 여성해방을 부르짖었다.
당시 서구 급진 페미니즘의 대표 주자 격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생식기능의 차이가 크다고 보았다. 그는 복제나 인공 자궁 같은 인공적인 재생산이 자연적인 출산을 대체하면 여성은 생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성관계를 즐길 수 있다고 보았다. 서구의 급진 페미니즘은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중요하게 보았지만, 섹스나 데이트는 거부하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의 영 페미니스트에 의한 급진 페미니즘은 출산뿐 아니라 연애와 섹스까지도 거부함으로써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의 순결 콤플렉스를 드러낸 것이 특징이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이 추구되었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한국보다 약한 미국에서 진보적인 여성들이 자신의 원조 격인 급진 페미니즘 대신 훨씬 더 극단적인 한국의 K 페미니즘 운동을 받아드렸다는 것이 아이러니컬 하다.
4B 운동을 추진하는 미국 여성들도 비출산에 대해서는 확고하지만, 비결혼이나 비섹스에 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이미 기혼 여성이거나 남자 친구가 있을 경우에는 남성이 운영하는 기업을 보이컷 하는 형식으로 4B 운동을 대체하는 것으로 슬며시 길을 열어 놓았다.
3. 미국의 4B 운동이 출산율 저하를 가져올까?
미국으로 건너간 K 페미니즘의 4B 운동이 미국의 출산율을 떨어뜨릴 만큼 강하게 전개될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X(옛 트위터)나 다른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컨텐츠에 의해 일시적으로 자극받았을 수도 있다. 또 지금 일고 있는 미국의 4B 운동은 사회 저변으로부터 동력을 가지고 분출하는 다수에 의한 운동이 아니라 일부에 의해서 나타나는 선거 후유증일 수도 있다. 미국의 주류사회를 이루는 백인 여성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 왔다. 이번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는 ‘남편 모르게 나에게 투표해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
자유연애가 왕성한 미국에서 데이트와 섹스까지도 금지할 때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이에 호응할지도 의문이다. 또 여성들의 4B 운동을 생식권에 저항하는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젠더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으로 보여 또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급진 페미니즘이 2015년부터 코로나19 발생 전인 2020년까지 절정을 이루었다. 2015년 1.24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이 2020년 0.84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의 관련성을 유추해 볼 뿐 급진 페미니즘의 4B 운동이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미국의 4B 운동이 미국의 출산율 저하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현재로서는 알기 어렵다. 한 국가의 출산율에는 너무나도 복합적인 요소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절정을 이루었던 우리나라의 급진 페미니즘이 코로나19 이후로 소강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7월 인구동향’을 보면, 7월 출생아 수는 1년 전보다 7.9% 늘고 혼인도 32.9% 증가했다고 한다. 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조사에 의하면(9월) 만30~39세 여성의 결혼 의향이 지난 3월보다 11.6% 늘어 인식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났으며,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7.1% 늘었다.
모처럼 우리나라에 결혼 건수와 출산 건수가 증가하고 결혼 의향이 늘어나는 등의 고무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4B 운동이 한국에 역으로 영향을 미칠까 염려된다. 다행히 당분간 선거가 없어 페미니즘을 득표를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