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Hansun Brief [TV 수신료 분리 징수와 공영방송 생존법] 통권265호
 
2023-07-10 15:48:42
첨부 : 230710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65호 

황근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1. TV 수신료 분리 징수의 의미

 

지난 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한국전력의 전기요금과 통합해왔던 TV 수신료 징수를 금지하는 방송법 시행령을 의결하였다. 3월 대통령실은 TV 수신료 징수 방법 개선을 위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지난달 통합 징수에 반대하는 의견이 90%를 훨씬 넘는다는 결과를 발표하였고, 이후 한 달여 만에 분리 징수를 위한 법 개정을 마무리했다.

 

이처럼 신속한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을 두고 상반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당연히 야당은 KBS 재원을 압박해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 강제 징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의식해서인지 공식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당론을 정했다. 아마 KBS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수신료 분리 징수가 공영방송 정상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KBS를 비롯한 우리 공영방송들은 집권 정치세력과 유착된 정치적 후견 체제를 기반으로 생존해왔다. 정권 홍보에 앞장선 대가로 국가로부터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받아 공생해 온 것이다. 그 매개체 중 하나가 바로 KBS 수신료이다.

 

2000년 이후 집권했던 모든 정권이 집권 직후 공영방송 경영권을 장악하고, 이어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 물론 국민들의 반대 여론에 부딪쳐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그러면서 정권이 교체되면 정파 간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는 촌극을 벌여온 것이다. 집권하면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고, 야당이 되면 이를 반대하고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그러므로 집권 여당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공영방송과 패권적 후견 체제를 끝내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역대 정권들이 말로만 내세웠던 공영방송 정상화를 실현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공영방송은 온라인 매체들이 급성장하면서 급속한 영향력 하락과 경영압박으로 생존 위기를 맞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 상실이다.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지지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질적인 정치 편향성으로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하고 있다. 어쩌면 언론노조를 앞세워 공영방송을 정권 호위무사로 만든 지난 정권이 수신료 분리 징수의 일등 공신일 수도 있다.

 

분명 수신료 징수제도 개선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경영합리화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수신료 징수제도 개편만으로 공영방송을 완전히 정상화할 수는 없다. 자칫 경영을 더 악화시켜 상업방송과 차별화된 공익적 책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재원 감소로 인한 질적 하락이 다시 경영악화로 이어지는 침체의 소용돌이(spiral of downward)현상을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보완정책이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다.

 

2. 외면받는 공영방송 KBS

 

다음 달부터 KBS 수신료가 분리 징수되면 수신료 수입이 급감할 것이다. 아마 1994년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 전에 절반 수준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방송환경 변화로 KBS의 시장지배력이나 영향력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 원인이다. 시청률 30~40%를 쉽게 넘었던 199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10년 전과 비교해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외부 환경요인보다 내부 요인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여러 차례의 KBS 수신료 인상 시도가 실패했던 이유는 크게 보도공정성과 방만한 경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과 유착된 편파보도는 KBS에 대한 국민 신뢰를 꾸준히 하락시켜 왔다. 특히 언론개혁이란 이름으로 공영방송을 통치 기구화시킨 문재인 정권에서 그 절정을 이뤘다. 즉 언론노조를 앞세워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정권 비호에 앞장서고, 온갖 가짜뉴스로 민주주의 근간을 붕괴시켰다.

 

정치적 편향 보도는 보편적 다수를 목표로 하는 공영방송 이념과 완전히 배치된다.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 보도는 중간에 위치한 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KBS가 정파성 보도에 열광하는 극렬 지지집단의 환호에 취해있는 동안, KBS는 다수 국민들로부터 스스로 이탈해 온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온라인 조사라고 하지만 무려 97% 넘는 응답자가 수신료 분리 징수에 찬성한 것은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를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공영방송의 원조라 할 수 있는 BBC까지도 수신료 폐지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요구는 다수의 국민을 외면하고 특정 정치집단이나 지지자들에게 매몰된 반()공영적 행태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실패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상황적 귀인(situational attribution)에 경도된 개인이나 집단은 개선이나 발전 가능성이 없다. 반대로 실패 원인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에서 찾는 자기 귀인(self-attribution)은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 KBS 경영진과 구성원들은 이 같은 국민 여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진정성 있는 자기반성과 자구노력을 통해 개혁의 계기로 삼는 자기 귀인의 태도가 필요하다.

 

3. 수신료의 가치

 

공영방송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BBC도 처음부터 공영방송은 아니었다. BBC 전신인 BRC(British Radio Company)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군용 통신장비를 공급했던 기업들이 전후 민간에게 수신기를 팔기 위해 설립한 방송이다. 무선수신기를 팔기 위한 매개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1920년대 초 처음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는 공익성 같은 개념조차 없었다,

 

BRC를 공영방송 BBC로 전환한 사람이 존 리스 경(John C. W. Reith)이다. 초대 BBC 총국장이었던 그는 BBC 시청자들에게 품격있는 정보, 교육, 오락 프로그램을 제공해,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민주주의 기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문화와 학습 증진을 목표로 하는 공영방송으로 성격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공영방송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정치적·상업적으로 독립된 공적 재원이 필요하였다. 공영방송 이용 대가를 전 국민에게 부과하는 조세 형식의 수신료 제도가 시작된 배경이다. 지금도 BBC를 비롯해 유럽의 주요 공영방송들은 수신료를 주 재원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재정지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공영방송에게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규제·감독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수신료의 가치(value for money)라는 이름으로 BBC의 경영·편성을 평가하고, 채널별 편성계획을 승인해 계약 형태로 수신료를 지급하는 책임입증(accountability)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결국 수신료는 공영방송에게 공적 책무를 부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이자 수단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조건을 전제로 한다. 첫째 조건은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축 또는 침해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수신료가 공익적 목표에 부합하게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엄격한 사후 평가와 감독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처럼 공영방송이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아무런 감독도 받지 않는 공영방송과 구성원들을 위한 안락한 지원금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KBS 수신료는 정권에 충성한 대가로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국가지원금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던 배경에는 이런 인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KBS가 수신료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한 실효적 감독 장치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국회 결산 심의 절차가 있지만, 수신료 사용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여·야간 또 하나의 정쟁의 장이 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KBS 수신료는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와 무관한 일종의 정부 후원금인 셈이다. 그러므로 수신료 분리 징수는 이처럼 부실한 감독·규제 제도를 대신해 비용 부담 주체인 국민들이 직접 공영방송을 평가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왜곡된 공영방송 체제를 정상화하고, 합리적 재원 구조 확보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필수재가 아닌 공영방송의 생존법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사상 처음으로 MBC가 파업에 돌입한 적이 있다. 방송이라고는 KBS 2개 채널과 MBC만 있던 시절이어서, 파업 기간 동안 국민들은 마치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대다수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여가 활동이었던 TV 시청이 제한되면서 그 불편함은 대단했다. 특히 두 개뿐인 저녁 종합뉴스 중에 하나가 중단되면서 많은 국민들이 정보 빈곤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처럼 KBSMBC는 아주 중요한 필수재였다. 1994KBS가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병과할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할 수 있다. 실제 국민들의 저항도 거의 없었다. 도리어 KBS 1TV 광고가 없어지면서, 9시 종합뉴스 시청률이 철옹성 같던 MBC 뉴스데스크를 추월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뉴스는 인터넷 포털과 온라인 언론들 때문에 존재감이 크게 약화되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게 드라마 주도권을 내주었고, 예능도 유튜브에 밀려 위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제 KBS가 더 이상 필수재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강력한 대체재들이 등장하면서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 자체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가정책에 비교적 순종적이라 평가받는 일본에서도 NHK 수신료 징수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영국 BBC 역시 대체 재원이 모색되고 있다. 다수의 국민들에게 보편적 방송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재원으로 인식되었던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가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분위기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KBS 역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결국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분리 징수하더라도 KBS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대선에서 승리한 정파의 전리품이 되고, 정권과 공영방송을 연계하는 매개체로서 수신료 제도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분명 KBS 수신료 징수 방법 개선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 행태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마치 처음으로 집권 여당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 집권 여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저의가 숨어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정책인 것이다. 30년 전 처음으로 공영방송 위기론이 등장한 이후에도 우리 공영방송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도리어 정치권과 더 견고히 결탁하면서 굳건히 버텨왔다. 심지어 좌파 정권에서는 더 많은 공영매체들이 공익을 명분으로 기생·창궐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정치권력에 기생하지 않고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필수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목록  
댓글  총0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250 bytes
번호
제목
날짜
298 Hansun Brief [중국 ‘양회’의 결과와 한국의 과제] 통권295호 24-03-20
297 Hansun Brief [복지패러다임의 전환] 통권294호 24-03-14
296 Hansun Brief [주역과 치국(治國)론] 통권293호 24-03-04
295 Hansun Brief [2030 여성의 연애 권력과 상향혼 욕구] 통권292호 24-02-29
294 Hansun Brief [이재명 민주당의 ‘공천 파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통권291호 24-02-27
293 Hansun Brief [늘봄학교 확대, 철저한 준비 필요] 통권290호 24-02-26
292 Hansun Brief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과 신규 건설의 중요성] 통권289호 24-02-22
291 Hansun Brief [한국-쿠바 수교의 의미와 우리의 과제] 통권288호 24-02-21
290 Hansun Brief [다시 되돌아보는 이승만 대통령의 위업] 통권287호 24-02-20
289 Hansun Brief [검찰의 '무오류'독선이 부른 '기업의 사법리스크'] 통권286호 24-02-14
288 Hansun Brief [중대재해처벌을 바라보는 중소기업인의 소견] 통권285호 24-02-07
287 Hansun Brief ['여의도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통권284호 24-02-05
286 Hansun Brief [의대 쏠림과 과학기술계 위기, 대안은?] 통권283호 24-02-02
285 Hansun Brief [북한의 핵 도발과 한국의 전략] 통권282호 24-01-31
284 Hansun Brief [대만선거 독법과 한국의 함의] 통권281호 24-01-22
283 Hansun Brief [홍콩 ELS 사태로 본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 통권280호 24-01-16
282 Hansun Brief [북한의 서해 포격과 한국군의 대응] 통권279호 24-01-11
281 Hansun Brief [전직 남성 국회의원의 '설치는 암컷' 발언 유감] 통권278호 23-11-28
280 Hansun Brief [신의주반공학생의거를 기억하는 이유] 통권277호 23-11-21
279 Hansun Brief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한국의 안보] 통권276호 23-10-23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