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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노동개혁과 노동의 사법화를 우려하며] 통권262호
 
2023-06-22 17:30:58
첨부 : 230622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62호 


이승길 한반도선진화재단 고용노동정책연구회장

 

1. 불법파업과 손해배상 제한에 대한 노조법개정안(노란봉투법) 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란봉투법, 노조법 제2·3) 개정안은 지난 2023524일 여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당(민주당+정의당) 주도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를 의결해 회부된 상태이다. 국회법에 따라 개정안은 최장 30일간 여야 합의 기간을 거치도록 되어 있어서 금년 6월 말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절대 다수당인 야당 등이 공조하여 본회의에서 의결할 수 있다.

노조법의 주요 개정안은 모두 산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내용이다. () 노조법상 사용자의 범위 확대, () 노동쟁의 대상의 확대, () 파업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의 3가지 쟁점이 있다. 그리고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관련해,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산정시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3). 조합원 개인이 노조활동 과정에서 회사에 손해를 입히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겠다는 취지이다.

 

최근 2023615일에 대법원 제3(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자동차 및 쌍용자동차 관련 3개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원심을 모두 파기환송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사실상 여당으로부터 파업조장법으로 비판받는 야당의 노조법 개정 일부가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개정안에 대하여 야당과 노동계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반면에 여당 및 경제계는 법개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에게 국회에 재의결권(거부권)을 요청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처럼 논란이 많은 법안이 제대로 된 조정과 타협도 없이 강행 통과와 거부권 행사가 거론되는 상황에 있다. 이에 따라 먼저 최근 대법원의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사건을 분석·평가해 본다. 또한 이번 대법원 판결과 국회의 노조법 개정안과의 상관관계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2. 불법파업 손해배상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례 동향

 

(1) 최근 2023615일 대법원 제3(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자동차가 사내하청 노조(비정규직 지회) 조합원 4(소취하 조합원 제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인들이 20억 원을 공동으로 연대배상 지급하라는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는 2010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101115-129(25일간) 동안 울산3공장 1, 2라인을 점거해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시키며 농성을 벌었다. 한편 금속노조는 비정규직 파업은 불법파견 범죄를 저지른 자본에 책임이 있음에도 파업을 나선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개별로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따져 묻는 것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회사측은 사내하도급노조 조합원 4명을 상대로 공정이 278시간 동안 중단됨으로써 큰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20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사건의 쟁점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개별 조합원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지, 민법상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법원의 제1, 2(원심)은 모두 불법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1374억원, 2271억원). 특히 제2심은 단체교섭 요청을 거부한 회사측 책임을 고려해 조합원 책임을 50%로 제한해 전체 배상금을 1357000만원으로 산정했다. 하지만 법원이 판결하는 배상금이 원고 측 청구액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총 20억원의 배상금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에서도 파업의 불법성은 인정했다. 회사가 구하는 손해배상금이 크다는 사정으로 회사측이 오로지 근로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가하려는 목적에서 소를 제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원심을 유지했다. 또한 불법파업을 결정·주도한 주체인 노조와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손해배상 책임 범위에 대해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불법파업에 참가한 근로자 개인에게 회사가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때 근로자의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하는 것을 원심에서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헌법상 단결권을 약화시킬 우려까지 언급하며 노동쟁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조합원으로서는 쟁의행위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어 방침이 정해진 이상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의심이 간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지시에 불응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일일이 판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2) 한편, 같은 날 대법원 제3(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현대자동차가 20137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울산3공장 점거로 조업이 63분간 중단됨으로써 발생한 손해에 대해 조합원 63을 대상으로 4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법원에서는 회사측이 패소했다. 반면에 2심법원은 조합원 5에 대해 2300만원의 연대배상을 인정했으나, 공정 중단으로 인한 고정비 손해액을 다시 산정하라며 원심을 파기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원심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제조업체가 위법한 쟁의행위로 조업을 하지 못함으로써 입은 고정비용 상당 손해배상을 구하는 경우 생산이 감소하면 매출 감소 및 고정비용 상당 손해의 발생을 추정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을 깨고, 쟁의 종료 후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 생산량의 전부 또는 일부가 만회됐다면 손해의 발생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파업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배상 산정방식에 매출 감소를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했다. 파업 이후 근로자들이 생산량을 만회해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파업 기간의 고정비 등을 기업의 손해로 포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3) 그리고 대법원은 전국금속노동조합이 불법파업으로 입은 손해를 입은 쌍용자동차(현재 KG모빌리티)에 손해배상금 약 100억원 중 약 19억원을 감액하라며 원심으로 파기환송했다. 사안은 쌍용자동차 소송은 회사측의 구조조정에 반발해 금속노조 근로자들이 2009521~822(77일간)동안 파업을 벌인 사건이다.

 

노동조합이 쇠파이프, 새총, 지게차 등을 동원해 공장을 점거·봉쇄하면서 죽음을 각오했다는 의미의 옥쇄(玉碎) 파업을 감행했다. 당시 회사는 노조가 점거한 평택공장 생산시설을 모두 폐쇄해야 했다.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던 회사는 총 인원의 36%에 이르는 2646명에 대한 인력 감축안을 발표했다.

 

회사는 상급단체 금속노조에 생산차질 등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었다. 1, 2심은 파업기간 쌍용자동차 총손해액 551900만원 중 금속노조 책임을 60%로 인정해 33억원 1140만원을 최종배상금으로 산정했다.

대법원은 옥쇄파업이 불법파업은 맞다면서도 파업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됨으로서 생산하지 못한 자동차 대수 가액뿐만 아니라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등)도 노조 배상액에 포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파업이 없었더라면 생산될 수 있었던 전체 자동차 대수를 회사의 손실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파업 복귀자들에게 지급한 금액까지 노조 손해배상액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회사가 200912월 파업복귀자들에게 지급했다가 돌려받기로 판결 난 188200만원에 대해서 파업과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손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제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31140억원-188200만원=142940억원 인정).
















3. 대법원 판례에 대한 일반평가 및 이해관계자의 평가

 

(1) 대법원 판례에 대한 일반 평가

 

앞의 현대자동차와 관련된 2건의 대법원 판결 의미는 불법파업시 조합원 책임 개별 평가의 첫판결이라는 점이다. 향후 파업시 개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나 고정비용 손해배상 청구가 일정하게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쌍용자동차 대법원 판결은 파업으로 인한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과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엄격히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근로자들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보고 근로자 개인에게도 파업의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조합원별로 책임 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밝힌 사례이다. 즉 노조의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에 대해 조합원 개인 책임을 제한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개별 조합원에 대한 회사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에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파업을 결정한 노조와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의 책임을 달리 보아야 하고, 회사가 근로자 개인에게 파업에 대한 책임을 포괄적으로 부과하던 기존 판례의 태도는 문제가 있으며 손해배상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는 회사가 개별 조합원에게 막대한 액수를 손해배상 폭탄으로 안기는 종전 대법원 판례에 일정한 제동을 건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기업이 청구한 손해액을 따질 때 파업 이후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최초로 판단했다. 기존 판례는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지출된 고정비를 기업의 손해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파업에 따라 생산량이 일시 감소해도 자동차는 예약판매 방식으로 판매되고, 파업 후 생산량이 만회될 가능성을 고려하면 매출 감소로 직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손해배상액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편, 3번째 대법원의 쌍용자동차 판결의 의미는 불법행위로 발생한 배상액의 범위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로 한정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현대자동차의 대법원 판례에 대하여 여당과 경제계는 당장 사법부가 야당과 노동계가 추진 중인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앞장섰다고 지적하고,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면죄부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평가해 보면, 이번 대법원 판례는 일반적인 손해배상소송과 노동조합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과는 상이하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나아가 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노란봉투법 쟁점 조항의 입법 목적과 상당한 부분 일치해 논란이 예상된다. 왜냐하면 애초 해당 법안의 취지가 근로자 개인이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회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에 휘말리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해 노조법 개정안의 입법 여부와 관계없이 사실상 효력을 갖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대법원이 정한 법리는 하급심 판단 이외에도 각종 법률 사무에 영향을 미친다.

(2) 노사단체, 정부, 국회 등 이해관계자 등의 반응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마자 신문 및 방송 등과 같이 다양한 언론 매체는 일제히 관련 기사 및 논평, 논설, 기고를 쏟아내었다. 노사단체, 국회 등과 같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적이었다. 그 만큼 정치·사회·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다.

 

노동계의 총평 기조는 노조법 개정안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확인해 준 것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판결의 의미를 존중해 국회는 상정된 노조법 제2, 3조 개정에 속도를 내라 대법원이 노란봉투법의 취지와 같이 쟁의행위에 있어 노조원의 책임을 제한하는 판결을 선고했다고 평가했다(민주노총). 또한 파업으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노조 및 근로자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폭탄에 경종을 울리거나 제동 건 대법 판결을 환영한다. 대통령은 거부권 남용 중단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여 노조법 제2, 3조 개정하라 여당은 노란봉투법 본회의 통과에 적극 협조하라고 주장했다(한국노총).

경제계의 총평 기조는 산업계는 패닉에 빠졌다고 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조합원의 불법행위 손해배상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경영계 입장에서 불법파업에 가담한 조합원별 책임 범위 입증이 힘들어 파업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사용자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사업장 점거와 같은 산업현장의 불법행위가 확산되고, 불법행위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와 다른 새로운 법리로 산업현장의 혼란과 노사관계 불안이 초래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발표했다(한국경총 등).

고용노동부의 입장 현대차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 제2, 3조 개정안이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두 차례나 발표했다(6.15 6.16 보도자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 개정안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시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회 야당 및 여당의 입장은 상이하다. 야당은 상식적인 판결로 노조법 개정안의 법적 근거가 명확해졌다. 이에 입법을 통해 정치 복원의 계기로 삼기를 당부했다. 반면에 여당은 입법부 차원에서 심각한 유감을 표하며 대법원이 정치적 판결, 알박기 판결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이번 판결은 입법과 사법의 분리라는 헌법원리에 대한 도전이며 노사관계를 파탄 낼 최악의 불법조장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대법원은 사실상 노조법 개정안에 담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나서서 인정했다며 사법부가 본연의 기능을 망각하고 입법부 기능까지 자처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논설 등의 논조 대법원 손해배상책임 개별 산정, 힘받는 노란봉투법등의 기사를 헤드로 내세웠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 3조 개정안) 입법안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도 있다. 반면에, 노조원 불법행위, 개인별로 입증하라는 것은 대법원의 책상머리 판결이라고 혹평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불법파업을 조장할 편향적인 친노조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무산에 대비해 정치적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니냐며 불법파업에 대한 회사의 유일한 대응수단마저 막았기에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4.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

 

첫째, 공동불법행위에 대해 모든 참가자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민법의 대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불법파업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지만 개별 조합원이 손해배상 범위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게 취지이다. 비정상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이례적인 판결로서 대법원의 설명대로 예외적이다. 그러나 노동쟁의 현장에서는 조합원 책임을 개인별로 일일이 산정해 입증하는게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 되어버렸다. 이번 판결은 산업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것으로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편향된 판결로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현행 민법 제760조와도 상충한다. 현행 민법 제760조는 개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집단적 불법행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부진정(不眞正) 연대책임으로 공동불법행위자 중 한 사람이 손해를 전부 배상할 경우에는 모든 채무가 소멸된다. 때문에 공동불법행위자들이 부담한 손해에 대해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조와 조합원들의 공동 의사에 따른 공동 불법행위에 가담한 각 조합원은 그로 발생한 모든 손해에 대해 공동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민법상 대원칙에도 배치된다.

 

산업현장의 불법파업에 대해 개별 조합원의 귀책사유나 손해에 대한 기여도를 개별적으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이것은 불법파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불법 공장 점거시 참가 조합원이 모두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면 신원 확인이 어렵고, 체증된 자료가 있어도 개별적으로 신원 확인이 어려울 것이 명약관화하다.

 

둘째, 불법파업의 손해배상 산정시 공장 중단에 따른 고정비 손해액을 제외한 것은 불법파업 사업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부당하며 포함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고정비 손해액 제외는 조합원들의 사업장 점거로 인해 조업이 중단된 이후 특근, 야근 등으로 추가적으로 생산해 물량을 만회하면 조업중단 기간동안 발생한 고정비 상당의 손해가 회복된다는 의미이다. 즉 불법 파업이라도 추후에 생산 물량이 회복된다면 조업중단 기간동안 발생한 고정비 상당에 대해서는 손해 발생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우 단기간의 불법 파업에 대해 회사는 생산 중단으로 분명하게 피해를 받았음에도 손해를 부과하기가 어렵게 된다. 물론 노동쟁의 사안은 특수성을 고려할 수도 있으나 최근 고용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사건 중 거의 대부분(88%)이 위력으로 사업장을 점거한 경우이며, 손해액은 대부분 고정비를 통해 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업참가자가 많은 대형 불법파업일수록 개별 불법행위를 일일이 입증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셋째,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내용이 달라서 판례에 따른 입법화는 노동의 사법화를 초래해 부당하다.

이번 대법원 판례에서는 불법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에는 조합원 개인별로 책임을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이 불법파업을 감행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판례의 입장에서 사실상 파업조장법의 도입 효과가 우려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의 내용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노조법 개정안에서는 노조활동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각의 손해배상 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3). 반면에 대법원 판결은 불법행위자들의 책임 비율을 제한할 경우 단체인 노조와 개별 조합원을 구분해 노조보다 개별 종업원들의 책임 비율을 낮게 정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노조법 개정안의 연대책임을 부인하는 내용과 명백히 다르다.

또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는 관계없는 부문으로 ()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기업근로자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 폭력·파괴 행위가 벌어지지 않는 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등 여러 쟁점이 있다. 대법원 판결이 노조법 개정안 전체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관계자 각각의 관점에서 아전인수로 해석하면 혼란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임 제한 비율의 개별화 법리를 적용해 법원이 제반 사정들을 감안해 형평에 맞게 재량으로 판단하는 매우 자의적인 여지를 주게 된다.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의 책임 제한은 법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전체적인 법질서와의 조화

가 중요하고 헌법에 의해 매개된 관련자들의 법의식도 고려해 법률을 해석하거나 찾아가는 법 발견이 아니라, 법정책이나 법을 형성하는 판결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례에 따른 입법화라는 논리 제공은 노동의 사법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부당함으로 경계해야 한다.

 

넷째, 대법원의 불법파업 손해배상 책임 제한은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원은 합리적이고 합당한 해결책을 위해 충분히 고민하고 법률을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산업 현장의 불법 파업에 따른 개별적 행위자의 책임을 분리해 부과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조합원의 책임 제한의 개별화라는 판례로 정립되어 유사한 많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번 대법원 판결이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을 공동불법 행위자별 책임 제한의 비율을 다르게 판단한 기존 사안 유형에 추가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법리에 비추어 대법원의 입장을 바꾼 것으로 원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소부에서 내려 한 것은 졸속 판단한 것이라고 지적받을만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불법 파업에 판을 깔아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결국 불법은 있는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처벌(기소유예 등)이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길마저 막혔다는 의미를 가진다. 정말 명백한 노조의 불법파업이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더 까다로워졌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번 판결은 파업 천국임을 외면한 탁상 판결로 앞으로 파업의 과격화로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불법 파업이 확산되면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국내에 투자하려는 해외 기업들도 줄어들게 뻔하다. 그 결과로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켜 국가 전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정말 이번처럼 국회가 입법화할 내용을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산업현장에 결정해 버린다면 노사 법치주의의 실현은 정말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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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Hansun Brief [교육개혁의 핵심은 “교육 시장의 개방”이다] 통권268호 23-08-18
270 Hansun Brief [중국의 정치전과 한국 정치개입] 통권267호 23-07-27
269 Hansun Brief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의 방류와 영향] 통권266호 23-07-11
268 Hansun Brief [TV 수신료 분리 징수와 공영방송 생존법] 통권265호 23-07-10
267 Hansun Brief [국가연구개발 혁신,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통권264호 23-07-06
266 Hansun Brief [괴담 사회의 실체] 통권263호 23-06-27
265 Hansun Brief [노동개혁과 노동의 사법화를 우려하며] 통권262호 23-06-22
264 Hansun Brief [BTS 이후 한국문화의 콘텐츠 전략·정책] 통권261호 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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