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22 10:14:09
남북총리합의서는 '연방제 기획표'
강경근(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숭실대 법학과 교수)
남과 북을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6월 15일을 민족공동의 기념일로 하는 것을 재차 확인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가 16일 발표됐지만 국민의 관심은 많지 않았다. 경험으로 체득한 ‘암묵적 지식’으로 그 허구성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김정일의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및 2000년 김대중-김정일의 ‘6·15 공동선언’을 승계하면서, 위헌으로 판단되는 ‘연방제 통일’의 전제가 되는 ‘우리민족끼리 정신’을 공통분모로 삼은 것이 바로 이번의 남북총리 간 합의서이다.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남북 간 경제협력과 교류가 이 합의서에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남한만의 일방적 부담과 차기 정부로의 교체기를 틈탄 연방제로 가는 과정과 절차의 기획표에 그치고 있다.
이에 의거하여, 남과 북은 내년 6·15 공동선언 발표 8주년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서울에서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다. 연방제 통일의 전야제를 갖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법률·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는 문제 등도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다. 국가보안법 개폐를 북의 김정일과 협의하겠다는 합의다. 총리는 통일에 관련한 이런 일들을 결정할 권한을 누구에게서 부여받았는가. 국민만이 결정할 수 있음을 규정한 헌법 제72조에 반하는 일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고 하지 ‘민족’의 통일이라고는 하지 않는 것에도 반한다. 이런 식의 연방제 논의는 대한민국이 주체가 되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4조에도 반한다. 자유로운 공기로 숨을 쉬는 공동체를 포기할 수도 있게 하는 그런 길을 우리들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국회회담도 후원하겠다고 하는데, 이 역시 행정부의 일원인 총리급이 국회가 정할 일을 한 것으로서, 권력의 구성과 조직과 행사를 정한 대한민국헌법에 정면으로 반한다.
합의서 제2조는 ‘남과 북’이 서해상의 일정한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해 나가기로 하였다 하면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호혜의 정신 내지 민족공동의 이익을 내세워 대한민국의 영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에 대한 전속적 관할권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 합의서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 내지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라는 소위 평화지향의 추진 기구도 두었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북에 무제한의 퍼주기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도로 및 철도 분야, 철길 보수, 조선협력단지 건설, 개성공단 건설의 적극 추진, 구성·운영 등이 그것이다. 북은 서울을 코앞에 둔 ‘한강하구’에서 조사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한 공동노력을 전혀 논의하지 못한 채 나온 이번 합의서는 제8조에서 남북 쌍방의 합의에 의해서만 수정·보충할 수 있다 하여 다음 정부에서 이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봉쇄하였다. 남북정상선언 이행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방제 통일의 전주곡을 울리는 기획표이며, 이를 차기 정부가 되돌릴 수 없도록 대못질을 한 위헌의 문서가 된 것이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영일 내각총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0·4 정상선언이 빈 종잇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한다. 협박에 다름 아니다.
차기 정부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이번 합의서를 기점으로 10·4 및 6·15 선언 등으로 구현된 ‘햇볕정책’ 전체에 대한 국민적 승인을 정식으로 다시 밟고,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자를 벌하는 형법 제99조 일반 이적(利敵)죄 해당 여부를 예의 조사하여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1월 19일자 세계일보 [시론]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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