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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현행 `대통령 무책임제` 개선해야
 
2007-11-22 09:56:10

현행 `대통령 무책임제` 개선해야


이홍구(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정치의 주역은 인간이다. 특히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주역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든 특정 정치제도를 오래 운영하다 보면 주역인 인간 스스로가 그 제도와 체제에 얽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가장 완벽한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만든 유일지도자일수록 체제의 확실한 포로가 되어 사실상 자유로운 선택의 공간을 잃어 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자주 보아 왔다. 민주정치의 경우에도 부실한 제도의 모순과 불안정이 지도자들의 인간적 한계와 맞물려 극심한 혼돈과 혼란을 자아낼 수 있다. 대통령선거를 꼭 한 달 앞둔 우리의 정치가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한국 정치는 대표성·책임성·효율성이란 세 분야를 기준으로 평가할 때 그 제도적 모순과 한계가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지 오래다. 안정된 근대의 민주정치는 매사를 국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정치가 아닌 원활한 대의정치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지가 전혀 체계화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대의정치의 안정된 운영을 담보하는 정당·의회·선거란 세 축은 하나같이 부실덩어리일 뿐이다.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국회의 다수당이 된 여당이 5년 동안 네 번이나 이합집산과 당명 바꾸기를 거듭한 사실이 이러한 제도적 결함을 결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대표성의 문제를 정치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여론조사로 국가적 큰 선택을 결정하자는 위험한 풍조가 점차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정몽준 후보나, 2007년 대선에서의 이인제·정동영 후보가 여론조사에 의해 후보단일화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건전한 대의제도보다는 바람이 좌우하는 여론정치에 의존하겠다는 위험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무리 신뢰도가 높은 여론조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제도화된 대의정치의 절차를 대치할 수 없으며, 또 대치해서도 안 된다.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우리의 현행 권력구조는 권력만 있고 책임은 질 수 없는 ‘대통령무책임제’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실정을 거듭해도, 아무리 국민의 지지율이 하락해도 대통령은 사임이란 극약처방 외에는 국민에게 책임질 방법이 없다. 이러한 대통령중심제가 부실한 의회, 정당 및 선거제도와 겹쳐져 한국 정치는 책임성의 차원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국정운영의 효율성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민주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로 연계되고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지금 우리 국민은 이처럼 정치제도가 모순과 불안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제도개혁에는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출마한 후보들에게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5년마다 찾아오는 대선의 계절마다 인품·학식·도덕성·정치력을 고루 갖춘 큰 지도자가 혹시 나타나지나 않을까 요행을 기다리는 국민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의 결단에 의해 제도개혁은 단시일에 추진할 수 있지만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 지도자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실한 제도와 부실한 지도자를 함께 갖게 되는 정치는 국가적 재앙을 부를 수밖에 없음을 모두 명심해야 할 때다.
 
우리는 더 이상 제도의 결함은 외면하고 정치인들의 경쟁에만 몰입하는 악습에 묻혀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대선 후보들에게 차기 정부에서는 정치제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확실한 공약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컨대 취임 즉시 대다수 국민이 납득할 만한 헌정(憲政)개혁위원회를 한시적으로 발족시켜 임기 초반부터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해 보자는 것이다. 내년 4월 총선으로 시작되는 18대 국회도 헌정개혁특위를 구성해 국민의 뜻을 모아야만 할 것이다. 새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출범하는 내년 2008년은 마침 대한민국 건국 및 대한민국헌법제정 60주년이 되는 해로, 우리의 정치제도와 체제를 정비하고 혁신하는 데 매우 적절한 시점이라 하겠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함께 분발해야 한다.
 
♤ 이 글은 2007년 11월 18일자 중앙일보 [이홍구칼럼] 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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