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3 09:18:12
합의 못 이룬 고액권 인물
강경근(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숭실대 법학과 교수)
화폐인물은 시장 상징
국가 상징은 국가 정체성을 표시하는 징표다. 대개 이는 헌법 자체나 법률 또는 대통령령 등과 같은 규범에서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국기나 국가를 헌법을 통해 국가 상징으로 정하고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어떠할까. 한국은 국가 상징으로 나라문장(紋章), 태극기, 애국가, 국새(國璽) 등을 들고 있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 가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수도가 관습헌법적인 국가 상징으로 인정되었다. `서울`이라는 수도의 설정ㆍ이전은 국가 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임과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핵심적 헌법사항이라는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수도와 같은 헌법적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적 조직 구성에 관한 중요하고 기본적인 헌법사항으로서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므로 대통령이나 정부 혹은 그 하위기관의 결정에 맡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화폐는 어떠할까. 물론 화폐를 이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화폐는 시장에서 교환수단이자, 부패하지 않는 유형의 재산, 즉 자본으로서 기능한다. 그렇게 본다면 재산 내지 자본으로서 화폐를 매개로 성립한 근대 시민 계층, 즉 교양과 재산을 지닌 부르주아지에 의해 개시된 시민사회에서 화폐는 시장의 상징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화폐 인물을 정하는 것도 시장적 기능의 상징으로서 관심사가 되는 국가적 과제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헌법 사항이거나 국가 상징 정도로까지 볼 수는 없더라도 사회의 연면(連綿)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화폐에 관하여 헌법은 이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은행법 제47조가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고 한다. 발권 주체가 누구냐 하는 규정이 있을 뿐 `화폐에 누구를 올릴 것인가` 하는 초상 인물에 대한 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초상인물을 정하는 권한도 화폐발행권을 가진 한국은행의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국가 사회적 합의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사회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들이 매일 접하는 돈에 새겨진 인물을 정하는 것은 당연히 시장의 관심 사항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국민경제에 대한 법제도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처지에서도 역시 중요한 문제다. 이렇게 화폐는 국가 사회적 과제이자 관심사다. 비록 법적 문제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화폐 인물에 대한 선호도는 다양하다. 어떤 이는 `화폐는 비록 국가 상징은 아니라도 `대한민국`의 관심사이기에 그 인물은 `대한민국 인물이어야 할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이에 1948년 7월 12일에 의결하고 7월 17일에 공포되면서 당일로 효력이 발생한 우리의 최고 규범인 헌법에 따라 세워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거기에 올라갈 1번 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해 준 독립 활동의 주역인 `김구` 선생을 가장 훌륭한 후보자라는 의견도 있다. 이에 10만원권에 `김구` 선생이 들어간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또한 신생 대한민국을 산업화의 세계사 물결에 띄워 준 `박정희` 대통령 역시 경제의 상징물인 화폐의 최고액권 인물로 등재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석연찮은 과정을 통해 고액권 도안 인물이 결정됐다. 한국은행의 화폐 초상인물 선정에 과연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거쳤는가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들리는 바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선정된 인물에 대해서 상당한 이의가 계속하여 제기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여론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고, 건국의 상징인 이승만 전 대통령도 초상 인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지만 사회적으로 찬반 격론이 벌어질 게 예상돼 아예 추천 후보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흠은 크다고 본다. 공청회 등 공개적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도 그렇다.
어쨌든 결정되었다. 그 선정에 거창한 이념을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한은 관계자의 말은 적절치 않다. 이런 상태로 봉합했을 경우 상처가 덧나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통합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길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산고는 언제나 뒤따르기 마련이고 산고 끝에 세상에 나온 생명은 그만큼 더 귀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 이 글은 2007년 11월 11일자 매일경제 [테마진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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