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3 09:05:04
한미 FTA, 현 정부 임기 내 비준돼야
안세영(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경쟁력팀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달 스위스 세계경제포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세계 23위에서 11위로 1년 만에 무려 12단계나 올라갔다. 점점 어려워지는 생활과 조세부담 속에서 짜증내던 국민들로서 믿기지 않는 쾌거이다.
그런데 그 내막을 보니 지난 봄에 타결된 한미 FTA가 ‘국제 사회가 우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이 일조한 덕이라고 한다. 당시 설문에 참여한 기업인들이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외국인 투자환경 등의 면에서 한국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간 FTA가 가져올 국내 산업 피해 시비에만 몰두하던 우리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은 셈이다.
한미 FTA가 몰고 오는 이같이 좋은 상승 모멘텀을 놓치지 않고 EU, 중국, 일본과의 협상까지 성사시키면 한국은 명실상부한 동아시아의 FTA 허브(중심) 국가로 부상해 선진화를 10년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들뜨기엔 아직 이르다. 한미 FTA는 아직 반쪽의 미완성 작품이다. 한미 두 나라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물론 미국 쪽을 쳐다보아도 분위기가 좋지는 않다. 보호주의적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으며, 유력 민주당 대선 후보도 한미 FTA에 대해 회의적 발언을 하고 있다.
우리도 정부가 제출한 비준안이 국회에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 지난주 정동영 대선 후보도 금년 정기국회에서의 비준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정 후보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선 후보가 한미 FTA에 대해선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부시 대통령은 FTA를 임기 중에 비준시키기 위해 열심히 대(對)의회 로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 대통령은 그간 평양 다녀오느라 바빠서 그런지 아직 별다른 열의를 안 보이고 있다.
국회 비준에 대해선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정기국회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대선 정국의 열기를 볼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다음 정부가 들어선 내년 가을 국회로 미룰 수도 있다. 현직 대통령과 의원들로선 후임자들에게 ‘뜨거운 감자’를 넘기는 것이기에 구미가 당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정치 지도자라면 이런 무책임한 행보는 절대 피해야 한다. 국민을 단합의 길로 이끌어야 할 새 정부 집권 초에 한미 FTA 비준을 놓고 이 나라가 다시 둘로 갈라지게 만들어선 안 된다.
국내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내년 초 임시국회 비준이다.
대선 당선자가 확정된 상태에서 아직 내년 4월 총선의 열기가 불붙지 않은 시기이기에 의원들이 비교적 지역구나 이익단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더욱이 노 대통령이 ‘내가 벌인 일은 임기 중에 깨끗이 마무리 짓겠다’는 멋진 정치적 의지를 보여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어제(11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반(反)FTA시위가 벌어졌지만, 역설적으로 한미 FTA를 반대하는 쪽에게도 임시국회 비준 시나리오가 유리하다. 만약 내년 가을로 미루면 지금 협상 중인 캐나다, 인도, EU와 함께 내년 초에 시작될 중국과의 FTA 등 무려 다섯 개의 비준안이 정기 국회에 상정된다. 다섯 개 비준안에 대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내년 가을 국회에서 한미 FTA가 ‘여럿 중의 하나’로 다루어지는 것보다는 임기 말에 느슨해진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단독 플레이하는 것이 피해산업 보상 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으면 미국도 따라 움직일 것이다.
한미 FTA를 노 대통령의 가장 큰 역사적 공적으로 각인시키고 싶다면 현 정부에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정부는 임기 내 비준을 목표로 국회와는 물론 대선 진영과도 긴밀한 협조를 해 가며 피해산업 보상을 위한 관계 법령 개정 등 실무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야 하겠다.
♤ 이 글은 2007년 11월 12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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