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29 14:49:00
공적자금 상환 후세에 떠넘기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
역대 국정감사가 국민에게서 충실하고 알찼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특히 대선 등 굵직한 대형 선거를 앞둔 시점의 국감은 기대를 안 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17일부터 17일 일정으로 시작한 2007년 국정감사도 정책감사는 뒷전이고 첫날부터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가 충돌하고 몸싸움까지 벌이는 추행을 보였다. 정확히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해에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치열한 정치 공방만 계속하다 부실국감으로 끝났다.
그해에 잊지 못할 사건이 또 있다. 공적자금 국정조사다. 그 당시 공적자금 관련 비리는 양파껍질 까듯 계속 나오고 또 문제가 터지면 국회의원들은 서로가 애국자인 양 난리를 쳤다.
그런데 정작 2002년 10월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시작되니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싸우다 결국 10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아무것도 조사하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조사는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올해는 금융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고 정부가 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상환대책을 마련해 상환하기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공적자금 문제를 지켜본 학자로서 올해 국감이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그 다음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공청회와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공적자금 상환대책이 2002년 9월 5일 확정 발표되었고 이 대책에 의거해 법 개정을 통해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상환대상 채무를 2002년 12월 말 기준으로 97조원으로 평가하고 이 중 28조원(28.9%)은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자체 상환 가능한 것으로 추산하고, 나머지 69조원 중 49조원(50.5%)은 재정에서, 20조원(20.6%)은 금융기관 특별기여금(예금평잔 대비 0.1%)으로 징수하여 25년간 상환토록 했다.
49조원을 우발적 채무로 놓아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를 명시적인 직접채무로 전환해 재정에서 부담하도록 한 것은 나라 빚으로 확정지어서 원인을 제공한 현 세대에서 예산을 삭감해서라도 빚을 갚고 급격한 고령화로 재정부담이 가중될 후대에 빚을 줄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25년간에 걸친 공적자금상환계획 실행이 관련법 발효 첫해부터 국회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생도 일단 계획표를 세우면 그래도 첫날은 지키거늘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25년간에 걸친 공적자금상환계획 실행이 관련법 발효 첫해부터 실현이 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공적자금상환기금법 제6조에서는 기금의 부채상환에 필요한 재원을 예산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적자금상환기금법이 발효된 이후 동법에 따라 2003년 처음 편성한 2004년 예산에서는 균형재정을 한다는 핑계로 일반회계 전입금이 당초 예정된 2조1000억원이 아니라 본예산에서 2000억원, 추경에서 500억원 등 총 2500억원만 출연되었다. 이때는 기획예산처와 여당이 나서서 일반회계에서 재정출연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2007년에도 당초 계획된 3조2000억원 중 3조원은 부실채권정리기금 출연금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2200억원은 일반회계에서 전입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일반회계 전입금은 2000억원 감액되어 200억원만 계상되었다. 여당과 야당, 나라살림을 맡은 기획예산처까지 교대로 나서서 계획을 제대로 시행도 안 해보고 상황에 따라 바꾼 것이다.
국회는 입법부로서 국민의 대표인 의원 스스로 또는 정부 발의에 의한 법안을 심의ㆍ결정함으로써 법을 제정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데 스스로 만든 법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입법부로서 권위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공적자금상환기금법의 기본 정신은 미래 세대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현 상환계획에 의하면 공적자금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20세 이하 세대가 전체 부담 중 반이 조금 안 되는 정도를 책임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현 세대에서 국민의 대표가 이런저런 핑계로 부담을 미래로 미룬다면 어떻게 체면이 서겠는지 이번 국감을 임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 이 글은 2007년 10월 22일자 매일경제 [테마진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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