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7 11:40:01
'작은정부 큰시장'을 향하여
안종범(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위원,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는 커야 하나 작아야 하나. 시장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또 커지는 것이 좋은가. 이런 질문들에 쉽게 답하려면 적어도 지금의 정부와 시장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즉, 현 정권이 정부와 시장의 역할 중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현 정권은 정부를 키우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정부를 키워 복지를 늘리고 교육을 늘려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공무원을 늘리는 등 정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탓이기도 하다. 반면, 시장에 대해서는 늘 규제를 통한 축소심리가 작용해왔다.
‘파킨슨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50여년 전 영국에서 관찰된 바에 따르면, 업무량이 줄어도 공무원 수는 늘어나기 마련이고, 세금을 많이 거둘수록 정부 씀씀이도 커진다는 것이다. 가까운 예를 들며 최근처럼 세금이 예상보다 10조원 이상 많이 징수되어도 결국은 다 쓰인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늘 주장하던 대로 현 정부는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안 되니 앞으로 더 키워야 한다는 데 대해 과연 그런지를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의 크기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측정해 보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를 보는 가장 넓은 의미는 민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공공부문이다. 하지만 나라살림을 올바르게 점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내세우는 재정범위 외에도 광범위한 공공부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정부가 말하는 협의의 재정범위보다 더욱 관심을 갖고 낭비 요인을 점검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예를 들어보자. 도로공사는 정부 투자기관이지만 공식 발표하는 정부 규모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도로공사의 경우 고속도로 건설비의 반을 자체 조달하는데, 통행료 징수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채권을 발행해서 적자를 메우고 있고, 이것이 결국 도로공사의 막대한 부채로 축적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통행료를 인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낮은 통행료 부과를 통한 물가관리와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도로공사를 정부 범위에서 제외시킬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즉, 정부란 민간부문과 대비되는 광범위한 공공부문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국가일지라도 민간부문에서의 낭비로는 큰 피해가 없으나 공공부문에서의 낭비로는 그 국가가 가난해지거나 망할 수 있다.” “운하의 통행료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정부의 관리 아래 두게 된다면 그들은 민간보다도 유지 관리에 주의를 덜 기울일 것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한 말이다. 이처럼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분석에 따르면, 공공부문이 민간부문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아무리 작은 정부를 유지하고 있더라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즉, 공공부문은 태생적으로 민간에 비하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생산성 격차는 정부 규모가 커질수록, 그리고 관료주의가 팽배할수록 더욱 더 커진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은 발상의 전환을 하여 공공부문이 맡고 있던 상당부분을 민간에 맡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공공부문이 제공하는 것과 시장에서 민간이 제공하는 것의 효율성을 비교해 즉, 시장성 조사(market test)를 통해 공공부문의 효율성이 민간보다 높지 않으면 과감하게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한 바 있다. 1979년 이후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재정 건전화를 추구한 결과 1979~83년간 12개 공기업의 매각을 통해 16억파운드의 재정 수입을 확보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공기업의 방만함에 대해 끊임없이 언론이 기사를 쓰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다음 정부는 스스로의 크기를 줄이고 대신 시장은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없이 추락한 대한민국의 경쟁력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10월 16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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