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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상대방이 펄쩍 뛸 조건 요구하다
 
2007-10-16 09:50:23

상대방이 펄쩍 뛸 조건 요구하다

 

안세영(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경쟁력팀장,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배울 만한 몇 가지 협상전략이 있다. 대표적인 게 ‘미끼’ 트릭이다. 지난해 말 5차 협상 때 김종훈 한국 측 수석대표가 ‘무역구제비 합산’ 조치를 요구하자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는 “절대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바로 이게 미국의 약점이구나’라고 간파한 김 대표는 이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물론 커틀러는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나중에 한국은 무역구제비 합산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끈질기게 요구해온 ‘신약 최저가 보장’에서 기대 이상의 양보를 얻어냈다.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가 ‘이것만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나오면 오히려 기회다. 이를 집요하게 공격해 미끼의 값어치를 키운 뒤 적절한 시점에 던져버리고 그 대가로 상대에게서 큰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선박 발주 협상을 사례로 보자. 선가를 10% 깎고 싶다면 처음 협상할 때 ▶선박 인도시기를 앞당기고 ▶선수금은 최소액만 주며 ▶값비싼 해상 오염 방지 장치를 부착하라는 등 말도 안 되는 미끼 세 개를 던져라. 물론 상대는 펄쩍 뛰고 상담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다. 협상 결렬 일보 직전에서 미끼들을 하나씩 거둬들이면서 “이렇게 세 가지나 양보했으니 당신도 선가를 좀 깎아 줘야 할 것 아니냐”고 요구하라. 대부분은 ‘상대가 이렇게 많이 양보했으니 나도 하나쯤은…’ 하는 생각에 미끼 트릭에 감쪽같이 말려들게 된다. 이 트릭은 플랜트나 선박, 건설 분야 등 다양한 이슈들을 한꺼번에 다루는 비즈니스 협상에서 빛을 발한다.
 
다음은 데드라인의 역할이다. 한·미 FTA 협상 시한을 2007년 3월 말로 미리 정한 것을 놓고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하지만 협상 시한은 타결에 큰 기여를 했다. 협상 열 달 동안 8번이나 만나 밀고 당겨도 별 진전이 없던 쇠고기·쌀 등 쟁점들이 모두 데드라인 48시간 전에 극적 타결됐다. 이는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M&A) 등과 같이 잘못하면 마냥 늘어지기 쉬운 비즈니스 협상에선 시한을 정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상대가 먼저 양보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더라도 데드라인이 가까워지면 ‘주고받기 식’으로 타결되곤 한다.
 
마지막으로 표정 관리다. 서양인과 상담할 때 헤프게 웃으면 안 된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협상 때 웃음을 머금는 게 일종의 호의라고 생각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서양인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징표’라고 오해한다. 오히려 ‘포커 페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김종훈 수석대표처럼 표정을 짓는 게 훨씬 낫다.
 

♤ 이 글은 2007년 10월 9일자 중앙일보 [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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