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11 09:52:11
공무원·군인 연금법 개정하라
현진권(조세재정팀장,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내년에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2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내년 예산은 참여정부 들어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여 국민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어차피 내는 세금이라도 국민을 위해 제대로 지출된다면 국민은 불만이 없다.
공무원 및 군인연금은 특수직 연금이라 하지만 공무원과 군인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다.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민은 양질의 공공서비스와 신체적 안전을 원하기에 그들을 고용한 것일 뿐이다. 게다가 아직 국민은 부자가 아니다. 지금 살기도 어렵지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정부를 믿고 적립한 국민연금도 처음 약속과는 달리 덜 받도록 개혁됐다.
그러나 2001년에 공무원과 군인들의 연금 적자분마저도 국민이 부담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들 특수직 연금 적자분의 규모에 관계없이 국민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만들었던 것이다.
연금정책이란 본래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표 잡기 원칙이 작용하는 대표적인 분야다. 정책 효과는 몇십 년 뒤에 나타나는 반면 정권과 정치인들의 수명은 기껏해야 5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모든 정권은 먼 미래의 국가재앙인 줄 뻔히 알면서도 시장 수익률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이익집단에 보장했다.
2001년에 있었던 공무원연금법과 군인연금법 개정은 이러한 이익집단과 정치인의 인기전략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인은 정치 생명을 연장할 수 있고, 이익집단은 상식 수준 이상으로 수익률을 얻을 수 있어 정치적 타협이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본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수는 정책 방향이 잘못돼도 그 비용을 다수로 나누면 개인 부담이 높지 않으므로 정치적 그룹으로 결집하지 못한다. 그래서 1700만 명이 가입한 국민연금 개혁이 쉽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소수는 이해관계가 뚜렷이 작용하므로 쉽게 결집해 정치적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난번 100만 명이 가입한 공무원 연금의 개혁 논의조차도 얼마나 어려웠던가.
공무원 직의 특수성과 불충분한 보수체계는 국민 모두가 충분히 공감한다. 그래서 살기가 어려운데도 국민이 공무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전체 보험료 중에서 반을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금액 수준에 맞게 연금을 지급해야지, 시장 수익률보다 훨씬 높게 지급하고 발생하는 모든 적자는 국민이 또다시 부담해야 하는 구조는 어떻게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러한 적자 보전이 한두 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매년 증가하며 2010년에는 3조원을 초과하게 된다. 이 정도의 구조적 모순이면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야말로 특수직 계층이다.
연금정책은 경제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설득하면 대부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그러나 연금개혁은 정치인들에 의해서만이 현실화될 수 있고 정치인들은 국민의 관심만을 먹고 산다. 지금 침묵하고 있는 다수 국민의 결집력은 느리지만 한번 응집되면 그 힘은 놀라울 것이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다. 어떤 대선 후보도 공무원과 군인의 표를 무시하고 특수직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울 강심장은 없을 것이다.
2001년 법 개정은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이뤄져서 적자분을 모두 세금으로 충당하도록 했다. 이제야 국민은 이로 인해 야기된 추가적 세금 부담의 무게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올 국회에서는 국민을 봉으로 아는 특수직 연금에 대한 법 개정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개혁 방향은 확실하다. 국민은 복잡한 연금구조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국민세금으로 특수직 연금 부족분을 메워 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잘못된 법은 이제라도 재개정해 바로잡아야 한다.
♤ 이 글은 2007년 10월 2일자 중앙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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