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1 10:06:51
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인가?
박세일(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의 대북(對北) 정책은 크게 잘못되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북정책 속에 우리의 형제자매인 북녘동포의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고통, 기아와 탄압과 공포에 대한 실존적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 대북정책 속에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배려는 컸지만 북한 동포에 대한 ‘진정한 동포애’는 없었다.
그래서 북한체제가 붕괴의 위기를 맞자, 우리 사회 진보인사들은 더 이상 통일을 이야기하지 않고 평화와 경제협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25일 뉴욕에서 “햇볕정책은 북한의 옷을 벗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핵심은 평화적 공존과 협력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핵(核) 강성대국, 수령절대주의라는 북한의 옷을 벗기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 것은 북녘 동포이고 이익을 보는 것은 김정일 체제이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은 평화와 협력이라는 명분으로 김정일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정책이 된다. 또한 이번 뉴욕 발언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바람직한 통일은 일방적 통일이 아니다. 남과 북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고 누구도 일방적으로 지배당하지 않는, 함께 공동 승리하는 통일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독재와 민주가 공동 승리하는 통일이란 어떤 것인가? 북핵과 평화가 공동 승리하는 통일이란 과연 어떤 내용인가?
요즈음 우리나라의 좌파진보들은 통일이란 거대 담론보다 남북협력이란 실용적 접근이 더 중요하다고 강변한다. 왜냐하면 통일을 제대로 논의하면 북의 사상과 체제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이미 어려운 입장에 있는 김정일 위원장에게 더 큰 부담과 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통일논의는 사라지고 평화공존과 경제협력만이 강조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선언’, ‘평화지대’ 등 평화라는 구호만 대단히 요란할 것이다. 장밋빛 남북 경협(經協)의 청사진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1991년 남북의 총리들이 만나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에 합의하고 남북불가침과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 후 북은 핵을 개발하고, 무장공비를 침투시켰으며(1996) 연평도(1999)와 서해교전(2002)을 일으켰다. 북은 남과의 약속을 한 장의 휴지조각으로 만든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대통령은 북에 대해 왜 [평화와 비핵화]의 약속을 안 지켰는가에 대해 제1차 정상회담(2000)에서도 거론하지 아니했고, 이번 제2차 회담에서도 거론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서로가 지키지 않을 것을 알면서, 북핵을 머리에 이고 북녘 동포들의 인권탄압의 현장에 서서, 또 하나의 ‘거짓 평화’를 선언할 것이다.
더 이상 대북정책이 이래선 안 된다. 거짓이 아닌 진실 위에 서야 한다. 대북정책의 기본 목표를 북녘동포의 ‘기아와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두고, 북의 정상국가화(正常國家化), 근대국가화(산업화와 민주화)에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1)북핵 제거 (2)개혁 개방 (3)인권 존중 (4)국제규범 준수를 목표로 보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며, 원칙을 확고히 지키는 개입정책(aggressively principled engagement policy)을 추진해야 한다. 북이 변화를 수용할 때 줄 수 있는 당근(유인)도 보다 크게 만들고, 변화를 거부할 때 가할 채찍(압박)의 강도도 훨씬 크게 만들어, 북의 변화를 일관성 있고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북녘 동포를 살리는 길이고, 참된 평화와 진정한 선진통일을 앞당기는 길이 된다.
지금이라도 정상회담 추진자들은 이번 제2차 회담이 제 1차 때처럼 북녘동포의 고통을 외면하고 북의 핵개발을 용인하는 ‘반(反)통일 반(反)평화의 회담’이 되지 않도록 최후의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다.
♤ 이 글은 2007년 9월 30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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