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9 10:57:28
국가적 장애물이 될 ‘혁신도시 말뚝’
신도철(한반도선진화재단 법치교육연구소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안타깝다는 생각부터 든다. 노무현 대통령은 12일 제주혁신도시 기공식에서 “토지 보상도 끝나기 전에 기공을 서두르는 것은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두고 싶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균형발전정책을 비롯, 노 정부가 추진해왔던 많은 정책이 우리나라의 앞길에 큰 장애물로 남을 것이라고 보는 필자로서는 대통령의 임기 말 대못박기 마음가짐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혁신도시 건설의 문제점은 그동안 많은 사람이 여러 각도에서 지적해왔다. 수도권의 공공기관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면, 많은 경우 관련 부처나 수요처와 멀어짐에 따라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직원과 국민과 기업의 불편이 가중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동시다발적 물리적 신도시 건설이 이른바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며, 오히려 인근 구시가지의 쇠퇴만 가져올 수 있다. 중앙정부에 의한 공공기관의 나눠주기식 지방 이전은 지역 간 갈등을 조장한다. 혁신도시는 일본의 경험에서 보듯이 많은 경우 자족적인 도시로 발전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그 건설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 낭비만 초래할 공산이 크다.
노 정부 균형발전정책의 문제 의식은,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으므로 수도권 집중의 억제, 정부 기관과 기업의 지방 분산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의식 자체가 문제다. 경제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 인구 이동과 도시의 형성 등에 대한 이론과 경험은 소수의 대도시권으로 인구와 경제활동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말해준다. 세계화·정보화의 추세와 함께 대도시의 집적화와 광역화가 한 나라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력과 자본과 기술의 국제이동성이 점증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웃 중국의 한 지방 크기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지역균형발전을 한답시고 많은 비용을 들여 공공기관 등의 분산 배치를 추진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자율적 지역 발전이 가능하도록 광역화된 지방정부에 재정·계획·규제·교육·치안 등의 권한을 대폭적으로 이양하고, 수도권 규제는 과감하게 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기초 위에서 지방은 각자의 개별적 특성과 잠재력을 스스로 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주민들도 시설이나 기관이 아니라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한 기초임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대통령은 임기 안에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고 싶은 것일까. 혁신도시 건설 등 균형발전정책이 옳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러한 정책이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마도 두 가지 요인이 모두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념적 집착과 대중 영합이 결합돼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 노 정부의 많은 정책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나친 굳히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균형발전 정책뿐만 아니라 평준화 교육정책, 부동산 세제, 기자실 통·폐합 조치 등이 차기 정권에서도 유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은 정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 공무원 숫자는 계속 늘리고 있다.
정책이 자연스럽고 타당성이 있다면 다음 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곳곳에 대못박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책의 타당성에 자신이 없다는 반증인가.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를 다시 뽑는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춰보면 이런 식의 임기 말 대못박기는 후임자에 대한 결례가 아닐까. 나라의 장기적 발전에 주름살을 안길 정책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폐기나 조정을 희망하고 있는 정책들을 차기 정부도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말뚝과 대못을 박고 있는 임기 말의 노 대통령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심정일까.
♤ 이 글은 2007년 9월 17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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