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강석훈] 재벌 회장과 휠체어 마술
 
2007-09-14 10:38:02

재벌 회장과 휠체어 마술

 
강석훈(한반도선진화재단 금융정책팀장, 성신여대 경제학부 교수)

 
휠체어는 일반사람에게는 보행을 도와주는 보조기기에 불과하지만 재벌 회장들에게는 큰 곤경을 빠져 나오게 하는 마술을 부릴 수 있게 해준다.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 마술’은 메뉴도 다양하다. 편법 상속 의혹 흐리기용 마술이 있고, 정경 유착의 X파일 의혹 회피용 마술이 있다.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돌파용 마술이 있으며, 최근에는 폭행과 폭력배 동원 우회용 마술이 선을 보였다. 삼성이 그랬고, 현대자동차와 한화가 그랬다.
 
물론 실제로 이들 회장들이 걷기 힘들 만큼 몸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재벌 회장들이 곤경에 처할 때면 으레 휠체어에 탄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오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
 
사법 당국이 재벌 회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집행유예의 솜방망이 처벌을 계속하는 것 또한 ‘휠체어 마술’의 결과 아닐까. 나는 사법부가 항상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재벌 회장에 대한 판결은 법과 국익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한 결과일 것이다.
 
실제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배경 설명이나 판결 내용으로 판단할 때 법보다는 경제 국익을 우선하여 내린 판결인 듯하다. 재벌 회장의 판결에 대해 사법부가 고민하는 이유는 재벌 회장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당장 중요한 투자 결정이 연기되고, 해당 기업의 매출이 하락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직접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이미지와 신인도 하락에 따른 무형의 손실이 엄청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당사자들이 깊이 반성한다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법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듯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국익을 우선한다고 할 때 사법부의 국익 계산 과정은 오류가 있다고 판단된다.
 
재벌 회장이 구속되면 단기적으로 해당 기업은 손실을 볼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엄정한 판결은 해당 재벌로 하여금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단기적 손실을 초과할 정도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어정쩡한 처벌은 재벌이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불법 행위로 인한 손실 가능성보다 이로부터 받게 되는 기대 이익이 더 클 때 불법 행위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사법부의 관대한 처분은 불법 행위에 의한 손실 가능성을 낮춤으로써 다른 기업에 대하여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법부는 재벌 회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관대한 형량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벌 회장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더욱 더 엄중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들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불법으로 얼룩진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가 없다.
 
재벌 회장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이 한국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중의 하나이며 또한 한국 사회의 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부를 존경할 수 있는 문화이며, 재벌 회장들은 그들이 가진 부만큼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기업이 발전할 수 있고,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 시장경제가 꽃필 수 있다. 한국의 재벌 회장들이 가장 존경받는 존재가 될 때 한국의 시장경제에 희망이 있다.
 
더 이상 재벌 회장들의 ‘휠체어 마술’과 여기에 들러리 서는 듯한 사법부도 보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재벌 회장에게서 보고 싶은 것은 존경받는 기업가의 돈 버는 마술이요, 진정으로 사법부에서 보고 싶은 모습은 법을 세워 나라를 세우는 모습이다.
 
 
♤ 이 글은 2007년 9월 13일자 조선일보 [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26 [강경근] '10·4선언' 국민 동의 필요하다 07-10-05
225 [손태규] '무례한 언론' 07-10-02
224 [유호열]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 07-10-01
223 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인가? 07-10-01
222 [강경근] 30대 부활의 장,로스쿨 07-09-21
221 [김영봉] '잘난자' 가로막는 한국교육 07-09-21
220 [김진현]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은 지속 가능한가. 07-09-20
219 [김영봉] 노 대통령의 국토에 대못 박기 07-09-20
218 [신도철] 국가적 장애물이 될 ‘혁신도시 말뚝’ 07-09-19
217 [이창용] 양다리 경제외교 07-09-17
216 [이인실] '일하기 3분의 1 법칙'을 깨자 07-09-17
215 [강석훈] 재벌 회장과 휠체어 마술 07-09-14
214 [홍규덕] 평화체제가 성공하려면 07-09-14
213 [강경근] “노무현정부,포퓰리즘 앞세워 사법 능지처참” 07-09-14
212 [강석훈] 건전한 투자 시스템의 열쇠 07-09-11
211 [강경근] 檢, '靑 고소'에 휘둘리지 말라 07-09-11
210 [조영기] 수신료 인상 시도는 KBS 이기주의 07-09-10
209 [박영범] 현대차 10년만의 무파업 타결 07-09-07
208 [황성돈] 전자적 국토 개조 사업 07-09-07
207 [김형준] ‘중대선거’의 길목에 선 대선 07-09-06
111 112 113 114 115 116 117 118 119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