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4 10:32:03
평화체제가 성공하려면
홍규덕(한반도선진화재단 외교안보팀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평화체제 논의가 보다 본격화되고 있다. 물론 비핵화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밝혔지만, 부시 대통령이 평화체제의 완성을 목표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한다는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평화체제를 북한을 달래는 전술적 수준에서 언급한 것이라면 책임 있는 세계지도자로서 합당한 자세로 보기 힘들다. 또한 그가 정녕 동북아에서 평화체제가 단기간에 성사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의 아마추어적 판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평화체제란 결코 단기처방이 가능한 신비의 묘약이 될 수 없으며, 성공의 요구조건들이 그만큼 까다롭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구축의 당위성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제정치를 전쟁으로 점철된 피의 역사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새로운 질서를 찾는 국제협력의 모색 역시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문제는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역사상 수많은 노력들이 기대만큼 완벽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30년 전쟁을 종결시키며, 국제사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베스트팔렌 평화체제’는 다양한 후속 평화체제들의 원형에 해당된다. 국가 간의 형평성을 인정하고, 세력균형의 원칙을 적용하려는 당시 노력은 가히 파격적이고 창의적이었지만, 평화체제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17세기 중반부터 2차 대전까지 약 63회의 국가 간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결과 인류가 엄청난 고통과 피해에 시달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정치에서 평화체제의 위험성은 잘못된 기대를 증폭시키거나 이러한 분위기를 국내정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심리를 부추기는 데 있다. 참여정부가 임기를 불과 6개월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평화체제를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국내정치적 효과를 떠나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한 점을 이미 간파한 부시행정부가 굳이 이를 반대하거나 설득하기보다 오히려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주며 맞장구를 치는 이유 역시 그들의 국내정치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이라크 사태에서 오는 압박과 이란의 농축우라늄 생산 우려가 북한의 핵 폐기와 비핵화 실천에 더욱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국제체제는 결코 하루아침에 안정될 수 없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는 철학적 논쟁은 이미 17세기부터 시작됐지만, 토머스 홉스도 그로티우스도 완벽하게 답을 제시하진 못하고 있다. 홉스가 주장한 강력한 패권국의 완벽에 가까운 역량을 21세기 한반도 상황에서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힘의 분산과 제도화가 오히려 평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그로티우스의 주장도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평화체제의 성공은 가치의 공유, 세력균형의 유지, 집단안보에 대한 확고한 의지, 그리고 제도를 뒷받침할 만한 탄탄한 재정적 토대에 입각해야 가능할 것이다. 이는 수세기 동안 평화체제의 제도화를 추구해온 유럽인들이 거듭된 실패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다.
물론 역사의 교훈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으며, 역사발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그대로 반복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체제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해준다는 순진한 믿음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몰이해의 진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로운 문제 해결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선의의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이해와 비전이 사라진 공간에 평화체제 완수라는 정책목표와 돌파의 의지만이 가득 차 있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 이 글은 2007년 9월 11일자 세계일보 [통일 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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