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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 “노무현정부,포퓰리즘 앞세워 사법 능지처참”
 
2007-09-14 10:23:55

“노무현정부,포퓰리즘 앞세워 사법 능지처참”


강경근(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숭실대 법학과 교수)

 
“불법행위는 묵인…사법부 코드화로 규범의 아노미 가져왔다”
 
노무현정부는 선거에 의하여 5년 임기의 행정권을 위임받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위임받지도 아니한 다른 권력 특히 사법권을 수하에 두려는데 집요하였다. 사법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부단히도 침해하여 온 것이다.
 
이 정부는 그 자신의 독립성 외에는 스스로를 주장할만한 ‘힘’을 가지지 못한 사법부를 만만히 보고 사법을 자신의 법무참모쯤으로 여겨 사법을 여론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수 있는 여론재판으로 격하시키려 하였다. 그 결과는 법과 질서를 실종시킨 규범적 아노미의 현상과 공동체의 정체성 훼손이었다.
 
노정부가 실패하였다는 현재의 일반적인 평가가 맞는다면,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사법을 자신의 수하에 두려고 하는 과정에서의 법질서 훼손 및 국가정체성의 멸시에 있다.
 
노무현정부는 사법을 독립된 개체라 하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사법을 자신의 수하에 두려고 한 정권 치고 성공한 정권이 없음은 역대 어느 정권이건 예외가 없어 왔다는 점을 잊은 것이다.
 
판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사법제도에 대해서 오랫동안 가다듬은 생각이 없지 않았을 것이었다. 거기에 사법은 속수무책이었다.
 
2003년 3월 노 대통령 취임 2주도 안된 일요일 ‘검사와의 대화’라는 자리가 바로 ‘노무현식 사법개혁’의 전주곡이었다. 토론보다는 추궁에 익숙한 검사들을 상대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며 검사들의 ‘반개혁성’을 부각시킨 뒤 밀어붙인 사법의 소위 개혁이라는 것은 사법 독립의 훼손 과정이었다.
 
그러나 법치국가의 헌법원칙을 흔드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하여 사법부는 절실하게 대응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검찰이나 변호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기술적인 공판원칙들에 신경을 쓰는 듯하였다. 큰 권력과 타협하고 그 권력을 호가호위(狐假虎威) 함으로써 작은 권력에 대한 자신의 영역을 다지는 데 정성을 쏟아 사법의 큰 파이를 놓칠 수 있음을 절실하게는 기억하지 않는 듯하였다.
 
우리가 사법에 기대하는 것은 한 시대를 뒤흔드는 광풍 속에서도 날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쇠심줄과 같은 역할 즉 ‘사법의 독립성’이다. 사법의 독립은 법관 개개인의 독립성의 보장으로부터 나온다. 그 가장 큰 몫은 법관이 그 판결로 인한 어떠한 권력의 간섭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결의 관을 열어 그 시체를 참(斬)하는 능지처참의 일을 노무현정부는 거리낌 없이 하였다. 어쩌면 노무현정권과 사법부의 합작일수도 있었다. 노대통령의 사법시험 제17회 동기들 중에서도 이른바 7인회의 멤버들이 대법원, 헌법재판소, 법무부 등 법원과 검찰의 요직에 들어선 것은 사법의 인적인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었다.
 
2006년에 대법원장을 제외한 전체 대법관 12명의 절반 가까이가 바뀌게 되었다. 특정 세력이나 이념 심지어는 특정인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코드인사’는 사법의 본산으로서의 대법원을 망치고 대법원으로 대표되는 한국 법치주의에도 종언을 고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고언들을 단칼에 무시하였다.
 
대법원은 그래도 여러 인사들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모든 대법관들을 코드인사 화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는 그 소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2006년 당시 임기가 3년여 남은 헌법재판소의 전효숙 재판관을 사직하게 하고 곧바로 헌법재판소 소장으로 임명해 주기 위한 일련의 헌법과 법절차 무시의 행위들로 인하여 당사자가 되는 전효숙 재판관은 헌재 소장직은 물론 그 재판관의 직마저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헌법재판소의 위신의 추락은 사법부 전체의 독립성까지 훼손케 한 일이었다.
 
우리의 사법체계의 건강성을 평가하는 지표에서 이제는 대법원에 견주어도 비할 바 없는 위치를 차지한 헌법재판소의 1987년 이후 20여년간 쌓아왔던 그 위상이 현저하게 손상된 것이었다. 당시 전효숙 재판관의 낙마 이후 임명된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한 나라의 권력의 향방과 사회의 나아갈 지표를 정하여 준다는 헌재의 그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시장경제의 헌법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지적된 신문법에 대해서는 그 한두 개 조항에 대해서만 형식논리적인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위헌이라 하였을 뿐 이를 살려 주었다. 또한 2005년 12월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사학법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끌다가 국회에서 그 일부 조항을 재개정한 이후 헌법소원 청구인들이 올해 8월에 그 청구를 취하하여 헌재는 사건에 대한 판단의 기회마저 빼앗기는 수모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법원은 2007년 5월 이른바 상지학원 판결을 통하여 사학법 판단의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판결을 하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법치주의 원칙이 이런 것임을 알린 이 판결은 당시 사학법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1년 반이나 지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한 헌법재판소와 대비되는 것이었다. 사법부의 인적 구성에 스며든 권력의 그림자가 얼마나 그 독립성과 권위를 해하는 지를 보여준 일례였다. 과연 이후 헌법재판소가 내리는 국가적 사안들에 대한 결정들에 국회는 물론 정치세력과 국민들이 설득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대법원이 홀로 그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민으로부터 직접적인 수권을 받지 않고 그렇다고 헌법으로부터 그 권한을 받은 것도 아닌, 단지 노무현정부라는 한 정권의 법제도에 의하여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판결을 담당한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로 한 일이 있었다. “긴급조치(1974년 1월∼1979년 12월 시행)를 위반한 혐의로 열린 589개 사건, 1412건의 재판 결과(1, 2, 3심 포함)에 대한 판결 내용과 판사 명단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과거의 잘못된 판결은 재심을 통해 바로잡는 것이 법원칙이며 단지 긴급조치 시절 재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과 헌법 그 어느 곳으로부터도 정당성을 부여받지 아니한 위원회가 이들을 ‘긴급조치 판사’라는 식으로 ‘단체로’ 몰아붙이고 여론재판화 하려는 것은 인민재판을 가능케 하는 사법의 코드화의 전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사법의 주인인 법원과는 전혀 무관한 과거사위에서 일률적으로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사법의 독립을 해치는 일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기(國基)라 할 수 있는 법치주의의 헌법원칙까지 훼손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재판이나 당시 사건의 법적인 문제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국 여론 재판이나 여론 심판으로 흐를 우려가 있는 것이었다.
 
사법을 정권의 여론몰이의 수하로 만들겠다는 이런 생각들에 대하여 대법원이 반대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사법부가 정권적 권력에 대한 사법의 독립성을 부르짖었다기보다는 자기 식구들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게 표출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배심재판제와 수사기관의 심문조서 대신 법정에서 진실을 가린다는 공판중심주의 도입은 사법 권력의 중심 이동이 검찰에서 법원으로 본격화한 신호탄은 될지언정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국민적 견제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법원이 사법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에서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과 일부 재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여론 눈치보기 현상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국민을 섬기는 사법’이라는 캐치프레이즈의 극명한 명과 암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사법은 우리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였다. 소송당사자를 넘어선 공동체 전체에 법적 평화의 상태를 가져다주지는 못하였다는 평가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법과 질서의 준칙을 가지고 영위되기보다는 점점 더 법을 잠탈하고 어기는 소수의 목소리 큰 자들이 사회의 큰 흐름을 막고 있으며, 이에 법원은 속수무책이다.
 
법원이 아직 우리 사회에 착근되기에는 시간을 요하는 영미식의 재판절차를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그 착근에의 시간적 간극을 힘과 간교함에 의하여 피해갈 수 있는 일부 거대의 노동 단체의 아노미적 무질서를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우리 사회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에 대한 정통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에 대한 법적인 재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사법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법적 쟁송을 여론재판화 함으로써 무규범적 아노미 현상을 사회에 퍼뜨리는 데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한국의 사법이라는 토양을 더 척박하게 만든 것은 퇴비를 멀리하고 수입 비료를 과잉으로 시비(施肥)한 대법원의 사법정책에서도 연유하는 바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사법부는 법원을 중심으로 사법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여러 조치들 예컨대 영장실질심사제의 실현, 공판중심주의의 강화 등 검찰과의 관계에서는 그 위상을 강화하였다는 일정한 성과를 무색케 할 정도의 ‘사법소극주의’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를 규정지었다. 그것은 동시에 여론재판으로 스스로를 옥죄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대법원 스스로도 ‘코드’예규를 통하여 사법권 독립을 무시하는 시도도 했었다. 대법원재판예규 제1084호로 시행된 ‘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가 각급 법원에 대해 처리하는 사건 가운데 중요한 사건의 처리 현황을 최고 법원인 대법원에 딸린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고, 각급 법원의 재판장에 대해 재판사무 시스템에 중요사건을 필요시 등록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의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 제도인 배심이나 참심제를 가지지 않고, 전형적인 직업 법관의 제도를 채택하여 사다리타기 식의 승진 제도를 가진 우리의 심판 구조에서는, 담당 재판부로 하여금 상급심 법원 특히 대법원,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할 것이다. 법관을 권력의 정점이 되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중에 매이게 하는 것이다.
 
제3공화국 당시 정부의 시책을 담은 국가배상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대법원판사 등 9명 모두 재임명 과정에서 탈락됐다. 사법이 임면권자의 눈치를 보는 이른바 ‘코드사법’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대법원은 우리 사법이 관방(官房) 사법화 하여 법관들이 사법 테크노크라트로 만들어지는 일을 노무현 정부는 끊임없이 시도한 것이다.
 
사법이 가져오는 법적 평화는 좁은 의미에서는 민사나 형사의 사건에서 그 법적 분쟁을 해결하거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만 더 넓은 범위에서는 나라 전체의 사법정의를 흐르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의 ‘성역 없는 개혁’이라든지 ‘역사바로세우기’ 등 일련의 개혁 드라이브가 법의 원칙을 훼손하여 시민의 신뢰이익과 예측가능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기득권타파라는 정치적 구호로써 박탈한 것이었고 감성적 대중의 포퓰리즘에 의거한 것이었음을 노무현정부의 사법부는 잊어 왔다.
 
정권과의 일정한 협력과 화해에 의하여 자신의 정치적 힘의 영역은 넓혔을지는 몰라도 제멋대로 행사하는 권력과 권력자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도 부인하는 막무가내식의 사회세력과 단체들에 대한 사법부 전체의 위상은 더없이 졸아든 모습을 스스로 보인 것, 그것이 노무현 정부 5년 사법의 실패를 한 눈으로 보여 주는 것이고, 이 문제는 사법의 독립과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의하여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요체는 공정한 법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법적 인프라인 독립된 사법부의 존재 및 검찰의 중립성에 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행정활동과 국회의 입법활동을 적절히 통제하도록 하며, 또한 사회의 이해갈등 조정 과정에서 준거부권을 가진 이익집단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권력의 묵인에 대하여 사법부가 법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여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정권의 성패가 바로 이러한 사법의 독립을 지키는 점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9월 11일자 데일리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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