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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건전한 투자 시스템의 열쇠
 
2007-09-11 09:27:50

건전한 투자 시스템의 열쇠


강석훈(한반도선진화재단 금융정책팀장, 성신여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10여 년간 한국 경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3%와 5%의 성장률 사이에 갇혀 있었다. 지난 4년간은 세계 경제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음에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경제성장률에 한 번도 미치지 못했다. 우울한 소식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진짜 이유는 세계 평균 미만의 경제성장률 뒤에 숨어 있는 투자 부진 때문이다. 모두가 투자를 강조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투자가 활발해져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장기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경제원론 교과서 제1장 제1절이다. 최근에는 완만한 경기 회복세에 따라 투자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증가율 수준은 기대에 못 미친다. 더욱 중요한 점은 투자 증가세가 향후에도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 부진의 원인은 다양하다. 정부의 복잡다기한 각종 규제와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경제 정책, 반기업적 정서의 만연, 정부의 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불신,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등이 1차적인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 단계가 이미 개발도상국을 벗어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투자 수익률이 저하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러한 투자 부진 요인들은 과거에도 있어 왔던 일들이다. 참여정부 들어와서 반기업 정서와 반시장적 정책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기업 투자 부진을 모두 이러한 정책적 요인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경제 이론적인 관점에서 기업 투자 부진의 진짜 원인을 찾아보면 불확실성의 증대와 투자 리스크 회피, 또는 분담 수단의 부재라고 할 것이다. 과거에 비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기업 간 경쟁이 격화되고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기업들도 몰락의 길을 걷는다. 금융 부문의 글로벌화로 인해 이제 어느 나라의 금융 시스템도 세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금융 복병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 최근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단적인 예이다.
 
이렇게 리스크는 커지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리스크 헤지 수단은 점차 소멸돼 가고 있다. 과거 정부 주도 경제 성장 시절에는 기업 투자의 리스크를 정부가 분담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저금리의 자금을 조달해 주기도 하고, 기업 부실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보조하기도 했다. 정부 주도의 경제가 민간 주도로 넘어가면서 정부의 리스크 분담 기능은 현저히 축소됐다.
 
다음 단계에서 기업 투자 활동의 리스크 분담 체계는 그룹 내 기업이었다.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 투자 손실을 본 그룹 내 다른 기업을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룹 체제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했던 이러한 교차 지원 방식이 더 이상 주식시장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결국 기업 투자의 리스크는 커졌는데 이러한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사라졌다는 점이 투자 부진의 진짜 이유다. 기업들은 가능한 한 투자하지 않고 현금을 많이 보유해 언젠가 다가올 불경기와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M&A에 대비하는 것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처하는 합리적인 방안이 되어 버렸다.
 
한국 경제가 투자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경제로 거듭나려면 기업 투자의 리스크를 분담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이는 결국 금융 시스템이 담당해야 한다. 금융 부문이 기업 투자의 타당성을 먼저 엄밀히 검토해 타당성이 부족한 투자를 막아야 한다. 타당성이 있는 투자를 위해서는 금융 부문이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지원해야 한다. 금융 부문이 기업 투자 결과의 수익을 공유하면서 기업이 신규 투자로 인해 순간적인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동북아 금융 허브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나,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좋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업 투자의 리스크를 공유하면서 기업 투자의 과실을 공유하는 기업과 금융의 복합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장기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운영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 이 글은 2007년 9월 10일자 한경비지니스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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