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1 09:18:19
檢, '靑 고소'에 휘둘리지 말라
강경근(한반도선진화재단 감사, 숭실대 법학과 교수)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차기 대선 100일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여론 조사되는 야당 후보를 형사 고소했다. ‘청와대’의 정치공작설, 배후설 등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데 실상은 형사 고소라는 법의 탈을 쓴 정치적 행위로 보인다. 고소인의 정식 명칭이 ‘대통령 비서실장’임에도 불구하고 고소장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실’의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정치적 표현을 쓴 것을 보면 그렇다.
‘청와대’는 법적으로 명예가 손상될 수 있는 자연인도 아니고 법인도 아니며, 기타 실체를 갖춘 권리능력 없는 사단 또는 재단도 아니다. 대통령, 대통령비서실, 경호실은 있어도 청와대라는 법적 용어는 없다. 행정예규인 ‘민방위경보발령·전달요강’에 ‘청와대 각 부서’라는 장소적 개념이 보일 뿐이다. 이런 어법은 현 정부 인사들이 즐겨 말하는 ‘과거 독재정권’ 시기에 위세를 떨친 ‘중앙정보부’를 ‘남산’으로 부르던 습관적 말투와 다를 바 없다. 남산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말이 이상하다면 청와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말도 이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라는 말을 쓴 것은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발언은 없이 단지 ‘권력의 중심세력’ ‘청와대의 누군가’ ‘청와대의 지시’ 등의 말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청와대에 근무하는 대통령 보좌진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데, 청와대라는 공적 장소와 그곳에 근무하는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한다면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수단을 정치적 무기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명예훼손이 사람의 인격적 가치의 사회에 의한 승인 또는 평가를 사실을 적시하여 저하시키는 행위라 해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 내지 공중의 관심사인 사항에는 논평의 자유가 있으며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책임을 성립시키지 않는다. 물론 진실에 반하는 사실에 기초한 경우에는 그러지 못한다.
우리 법원 역시 공적 인물에 대한 발언이라도 진실 여부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비방 목적이 뚜렷하다면 엄격한 책임을 물어 왔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의 20만달러 수수 의혹을 제기한 현직 국회의원의 징역형 및 위자료, 동원산업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대선후보의 직접 요구로 50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현직 의원이 명예훼손으로 구속기소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들을 보면 이번 명예훼손의 고소 건에 대해서 청와대와 이명박 대선 후보자는 비등비등한 싸움을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본질은 차기 대선에의 공정하고도 선량한 관리자로서 헌법상 주의의무를 지는 청와대가 차기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야당 후보자를 법적으로 건드는 이 정치적 쟁투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야당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적 상황에 있다.
야당은 차기 선거에서 정권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가지는 헌법적 단체다. 유신정권 말기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에 대한 다툼을 민사법원의 심사대상으로 할 수 있음을 핑계로 서울민사지법에서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끈 신민당 총재단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결정을 하고 국회는 그를 의원직에서 제명했다. 훗날 헌법학자들은 야당의 정치 형성이라는 공적 기능에 비추어 사법은 자제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규적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정치인의 명예훼손보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등의 직권남용 내지 정치사찰의 방지가 우선임을 웅변한다. 노 대통령의 일련의 선거법 위반 발언에 대해서 헌법은 형사면책특권으로 이를 보호한다. 반면 야당의 대선후보자에게는 그것이 없다. 그렇다면 검찰은 사법적 자제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 주어야 한다.
♤ 이 글은 2007년 9월 9일자 세계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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