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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이 정도 의혹이 ‘깜’ 이 안된다고?
 
2007-09-03 11:58:23

이 정도 의혹이 ‘깜’ 이 안된다고?

 

김영봉(한반도선진화재단 지도위원,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주말 모처럼 공석에 나와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이 많이 춤추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언론이 부풀리는 ‘깜 안 되는’ 의혹이란 정윤재 의전비서관의 뇌물수수 알선사건과 변양균 대통령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사건을 이르는 것이라 한다.
 
두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의 부패, 비리와 불투명성을 그대로 노출하는 사건이기에 뉴스 세례를 받고 있다. 먼저 정씨 사건은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관이 특별세무조사를 받는 건설업자와 부산지방 국세청장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세 사람이 청와대 인근 음식점 안방에 동석해서 식사한 후 1억 원의 뇌물이 건네어졌다. 그 뒤 부산국세청장같이 높은 분이 은행돈 떼먹고 회사 문 닫은 일개 중소건설업자의 세무조사를 무마시켜 주고 탈세 방법을 알려주고 제보자 신원까지 알려주었다. 그런데 검찰은 비서관이 개입한 혐의가 없다고 빼주었다.
 
부패하고 파렴치한 공무원의 작태와 권력의 연루 정황이 더 이상 심각하고 명백할 수 없는 사건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차떼기 당’이라고 그렇게 매도하고 선출된 자칭 청정(淸淨)집단의 대통령 아닌가. 그의 정직한 비서가 연루 의혹을 받는다면 누명이 벗겨지도록 누구보다 펄펄 뛰며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파헤치기를 주장했어야지 왜 ‘깜’이 안 된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신정아씨 등의 학위위조사건은 유명 인사들의 거짓 실체가 그대로 탄로 나는 사건이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덮어주고 비호하면 사기꾼들이 활개쳐서 정직하게 승부하는 사람들의 설 자리를 잃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선거에 나올 때마다 제출한 이력서에 왜 매년 최종학력이 다르게 돼 있는가”라고 질문을 받던 분이 대통령도 되고 노벨상도 탔다. 오늘날도 국민이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여당이 탈당·창당을 반복해 과거행적을 세탁하고 있다. 사회의 꼭대기부터 이렇게 과거를 속여도 사람들이 공분(公憤)을 못할 정도로 거짓에 무감각해졌기에 우리의 정치 기업 학문 예술세계에 거짓과 사기행위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신씨는 이런 사건의 진원에 해당하고 배후관계 또한 가장 복잡한 사람이다. 이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정책실장이 과테말라에서부터 무마해 달라는 전화를 했다는 정황이 있으니 그 몸통과 관련한 온갖 루머가 시중에 난무하는 것이다. 권력형 스캔들이 여기까지 왔으면 청와대의 주인이 먼저 공개수사를 천명해도 사그라지기 어려울 대(大)사건인데 왜 ‘깜’이 안 되는 의혹인지 알 수 없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저주의 굿판을 치우라”는 등 비판언론 때리기에 모든 공적(公的) 노력을 동원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도대체 뉴스가 ‘깜’이 되는지를 누가 결정하는가. 무엇이 중요한 낚시 ‘깜’인지는 낚시꾼이 결정하고 기소할 사건 ‘깜’은 검찰이 결정할 일이다. 보도 가치가 있는 뉴스 ‘깜’은 신문 방송 등 미디어가 결정할 일이지만 노 정권은 이 역할을 인정할 수가 없다. 오직 그들이 원하는 뉴스 ‘깜’만 보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관청의 기자실은 존재할 수 없고 정권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는 통합브리핑실만 있으면 된다.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각자가 타인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민주정권은 “그들만 정의롭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국민과 여론을 저희 뜻대로 이끌어가려 했다. 이런 독선이 국민 대다수의 원망(願望)을 무시하는 국정운영을 불러왔고 그 결과가 곤두박질하는 여당의 지지율로 나타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진정 민주주의를 믿는 분이라면 정권 말기에 마구 ‘도장 찍고 어음 발행해’ 다음 정권과 국민이 할 역할을 속박하는 일을 정말로 해서는 안 된다. 기자실에 대못질하고 국민 눈과 귀를 가리려는 것도 그중 하나다.

 
♤ 이 글은 2007년 9월 2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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