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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도 균형도 놓친 ‘균형 발전론’
 
2007-09-03 09:17:22

발전도 균형도 놓친 ‘균형 발전론’

박세일(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사를 바꾸려면 정권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정권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못된 생각과 낡은 사고를 바꾸는 일이다.
 
지난 5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헛된 생각이 바로 ‘균형 발전’이라는 구호이다. 듣기는 그럴 듯하나 사실은 허구이고 허상이다. 균형 발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지역에 같은 크기의 빌딩, 같은 수의 공장이 있어야 균형 발전인가? 이러한 의미라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대단히 유해(有害)하다. 지난 200년간의 인류 역사는 균형을 목표로 하면 발전도 균형도 이루지 못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올바른 방향은 ‘균형 발전’이 아니라 ‘발전 균형’이다. 각 도시, 각 지역이 나름의 장점과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발전한 결과로 나라 전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정답이다. 따라서 시급한 것은 ‘발전론 없는 균형 발전’의 허구에서 벗어나, 지방이 왜 낙후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세우는 일이다.
 
첫째, 지방이 낙후된 가장 큰 이유는 지방을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인 돈(예산)과 권력(인허가)을 지방정부가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식적 지방자치는 되었으나 실질적 지방분권은 대단히 미흡한 실정이다. 그런데 21세기 세계화 시대는 ‘지방 분권’도 뛰어넘어 ‘지방 주권’으로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권력은 지방에서 나오고 그 일부를 중앙에 위임한다는 식의 ‘준(準)연방제의 시대’를 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대가 이렇게 변하는데 돈과 권력을 여전히 중앙이 쥐고 앉아, 마치 큰 은혜를 베풀듯이, 지방에 부처 몇 개, 공공기관 몇 개를 이전해 준다는 식의 ‘균형 발전’으론 지방의 자생적 발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둘째, 각 광역지역마다 세계적 수준의 ‘초일류 교육기관’을 세워야 한다. 세계화 시대의 지역발전은 그 지역에 얼마나 우수한 창조적 인재가 모이는가가 결정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 유치’가 최우선이었지만 세계화 시대에는 ‘사람 유치’가 최우선이 되고 있다. 좋은 교육기관을 찾아 우수한 인재가 모이는 곳으로 돈이 모이고 기업이 찾아가는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평준화라는 이름으로 지방의 명문 고등학교와 명문 대학을 없애 버렸다. 그러면서 지방발전을 외쳐 왔다. 충남 연기·공주 지역에도 시대에 역행하는 정부부처의 강제 이전이 아니라, 계획을 바꿔 ‘세계적 대학촌’과 ‘최첨단 과학기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셋째, 수도권에 대한 규제를 확 풀어야 지방이 발전한다. 서울이 발전하면 지방의 발전이 위축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난 산업화 시대의 낡은 생각이다. 세계화 시대는 지방에서 인재와 돈을 끌어 와서 서울이 발전하는 시대가 아니다. 해외에서 인재와 돈과 첨단기술이 몰려와야 서울이 발전하는 시대이다. 서울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앞서 나가야, 이와 연계하며 지방이 발전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방을 위한다고 서울의 발전을 막아 왔다.
 
세계 대도시의 발전을 보면 자본, 인력, 정보, 기술의 ‘도시 집중’과 ‘도시 외연의 확대’가 도시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런데 우리는 공공기관의 지방분산, 수도권규제 강화 등으로 서울의 ‘집중화’와 ‘광역화’를 적극 막아 왔다. 세계적 도시인 런던은 서울보다 2.5배 크고 도쿄는 3.5배, 그리고 상하이는 13배나 크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도권이 너무 크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니 최근의 OECD 연구(2006)를 보면 세계 대도시 중에서 서울은 근본적 수술이 필요한 삼류(三流) 도시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니 어떻게 지방이 발전하겠는가?
 
지난 5년간 균형 발전을 내세워 우리는 발전의 길이 아니라 퇴보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더 이상 ‘균형 발전’이라는 포퓰리즘적 구호의 주술에서 벗어나, 세계화 시대에 맞는 ‘발전 균형’이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지난 60년간의 ‘근대화 혁명’을 마무리 짓고, 21세기 ‘선진화 혁명’이라는 제2의 국가도약을 이룰 수 있다.
 
 
♤ 이 글은 2007년 9월 2일자 조선일보 [아침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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