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30 11:23:00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선 정상회담
남성욱(한반도선진화재단 대북.통일팀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수해라는 북한의 천재지변이 정상회담을 남한 대선정국의 한복판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지난 95년 겪었던 100년만의 홍수에 해당하는 580mm라는 엄청난 폭우가 한반도의 북쪽을 강타하면서 2차 정상회담은 10월초로 연기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정상회담의 연기 사유로 수해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수해 이외에 뭔가 말 못할 각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것은 남한의 대선 정국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폭우가 끝난 14일 개성 예비접촉에서 북측 최승철 대표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가 문제가 없다고 언급한 만큼 수해 때문에 정상회담을 연기할 것이라는 예상은 의외였습니다. 또한 지난 2000년 송금이라는 기술적(?) 문제로 하루가 연기되었던 전례 역시 수해가 과연 전부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아마 지난해나 재작년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여론의 반응은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여론은 천재지변의 불가피성을 납득하였을 것입니다. 수해 이외에 추측되는 짐작은 북한 내부 사정과 남한 정국일 것입니다.
북한의 통전부는 정상회담 발표 이후 10여 일간 남한의 여론을 탐문하였으나 1차와 달리 평양이나 김정일 신드롬은 없었습니다. 70%의 국민 여론이 정상회담 자체에는 찬성했으나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임기가 4개월 남은 정권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북한 군부의 이견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부가 평양 예비접촉에서 언급한 사전 언약에 대해 북측이 약속 이행을 압박하는 시나리오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북측은 회담 연기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원인이 어떻든 간에 하여튼 정상회담은 10월로 연기되었습니다. 정부가 원했던 원치 않았건 이제 정상회담은 남한 대선 정국의 태풍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야당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사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는 임기 말이지만 할 일은 한다는 차원에서 정략적 회담은 상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호소력이 약합니다. 역설적으로 너무 늦은 정상회담은 10년 만에 정권탈환을 노리는 야당에게는 거대한 암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상회담으로 대선은 경제 회복이나 정책실패 논란보다는 평화와 전쟁 세력간의 대결구조로 변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기 말 정상회담은 수사적 차원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간접자본 지원은 어음형식이건 현금이건 총론적으로는 합의될 수 있으나 이행은 차기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 동의절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화체제 논의나 비핵화 협의 그리고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문제도 원론에 그칠 수 없습니다. 2달 후 선출되는 대통령 당선자가 본격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입니다. 결국 북한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늦게 남측의 정상회담 구애를 수용하였습니다. 물론 북한 통전부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판단을 하였다면 남한의 정세에 무지한 것입니다.
연기라는 카드가 취소로 이어지는 지연전술인지 아니면 모종의 언약을 지키려는 무언의 압박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정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논리를 전개하기에는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수해가 몰고 온 정상회담 연기는 결론적으로 남한 대선 정국에 허리케인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상회담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니 차기정부라도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상은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임기 하루 전이라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양보해야 하는가는 국민이 답할 주제입니다. 결론적으로 차기 정부 이양이 불가능하다면 노대통령이 거창한 통일 담론이나 북방한계선, 국내정치 개입과 같은 역풍의 가능성이 농후한 주제는 잊어버리고 오히려 담백한 심정으로 수해 복구에 나선 평양에 홀가분하게 다녀오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28일자 노컷뉴스 [뉴스해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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