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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폐지해야 할 것은 국정홍보처다
 
2007-08-27 10:16:25

폐지해야 할 것은 국정홍보처다



이창원(선진화재단 연구위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329명 조직이 혈세 3000억 써가며 5년간 해온 일은 언론통제 궁리뿐

지금은 다들 잊고 계시겠지만 지난 3월 정부는 ‘개헌 홍보’를 위해 정부 40개 기관을 동원하여 무려 341만여 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개헌 홍보 이메일을 발송했다.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포털 사이트 광고, 홍보물 85만부 신문 배포 등을 통해 ‘개헌 정당성 홍보’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이러한 소동의 중심에 국정홍보처가 있었다. 당시 법조계와 야당이 국민투표법상 ‘사전선거운동 위반’과 ‘공무원의 중립 위반’ 사항이라고 부르짖었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은 조직이 국정홍보처였다. 여기에 “박정희는 자동차, 노무현은 비행기”라는 대통령 찬가를 부르면서 공무원들에게 보수 언론은 만나지도 말고, 거기에 글도 쓰지 말고, 광고도 하지 말라고 괴롭힌 조직도 국정홍보처였다. 요즘은 “기자들이 기자실에서 죽치고 앉아 담합하지 못하게 하라”는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기자실 통폐합’ ‘취재 접근권 제한’ ‘기자등록제 시행’ 등 언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조직이 국정홍보처이다. 국정홍보처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5년간 이런 일을 하면서 썼거나 쓸 국민 세금이 3000억원에 가깝다고 한다.

 
이제 와 국정홍보처의 잘못된 정책 하나하나를 시시콜콜 비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홍보처라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언론통제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정부 부처 중 국정홍보처만큼 부침이 심한 조직도 없다. 1961년 공보부 신설, 68년 문화공보부로 개편, 90년 문화부와 공보처 분리…. 공보 업무는 산업화시대에 정권이 국민을 계도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방향을 잡아주는 첨병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이 97년 대선에서 야당(국민회의)이 집권하면서 공보처가 폐지되고 기능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었다. 정부가 오래간만에 방향을 제대로 잡은 듯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측은 항상 자신들의 업적 홍보와 언론 관리 및 통제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 같다. 공보실이 99년 5월에 국정홍보처로 부활한 것이다. 여기에 고도 비만 정부를 추구하는 노무현 정부 들어 조직과 기능을 더욱 확대하여 본부만 5국 체제가 되었고 본부 직원만 180여 명, 총 정원 329명의 대규모 조직이 되었다. 50명 정도이던 공보실이 이렇게 비대해진 것이다.
 
그러면 국정홍보처는 왜 ‘언론통제처’가 될 수밖에 없을까? 우선 현재 국정홍보처는 과거 공보처만도 못하다. 공보처는 그래도 적은 인원으로 국정 홍보와 각종 미디어 정책을 함께 수행하느라 고투한 흔적이라도 있다. 그러나 매체에 대한 협조 및 관리기능도 없고 또한 수행할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특히 매체 정책이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로 분리된 현 상황에서 국정홍보처가 할 수 있는 일은 ‘용비어천가 작사’에 열을 올리거나 아무도 보지 않는 국정브리핑을 만들고 ‘기자실 통폐합’ 같은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할 일이 없는 공무원들의 존재는 타부처나 민간 부문에는 재앙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찌 되었든 무슨 일이라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이 복잡다기하고 전문성 확보가 어려운 지식정보사회에서 정책포털(국정브리핑)과 같은 기능은 개별 부처 홍보 파트가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에 해외 홍보기능처럼 문화 홍보 기능과의 통합이 필요한 기능을 타 전문 부처(예: 문화관광부)에 이관할 경우 국정홍보처는 사실상 독립 부처로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독립 부처로 존재할 수 없는 국정홍보처가 계속 존재하는 한 그 조직은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정권 홍보’나 ‘언론 통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다. 국민의 혈세를 축내면서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데 앞장서는 이런 정부조직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폐지해야 할 것은 ‘기자실’이 아니라 ‘국정홍보처’다.
 
 
♤ 이 글은 2007년 8월 24일자 조선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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