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21 09:30:56
동의명령제 도입 취지와 문제점
박영범(한반도선진화재단 노동경제팀장,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년 4월부터 동의명령제를 도입하기로 최근 입법예고했다. 동의명령제란 공정거래위가 공정거래법을 집행하면서 심의 대상인 기업 행위의 위법성에 대한 최종판단을 하기 전에 기업과 합의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고 사건을 종결시키는 제도다. 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동의명령제는 지난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과정에서 미국과 도입키로 합의한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안을 보면 공정위의 조사나 심의를 받던 기업이 문제가 된 행위의 사실 관계 소명과 함께 시정 방안도 같이 제출하면 공정위는 동의명령 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 공정위 실무 당국과 기업이나 사업주가 합의한 동의명령안이 공정위 전원회의 또는 소회의에서 심의 의결되면 사건은 종결된다. 공정위는 정부 당국으로서 위법성 여부가 불분명한 사건의 조사와 처리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건 처리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고 기업도 이미지 손상이나 법적 분쟁으로 인한 비용을 회피할 수 있으므로 양 당사자 모두에 이익이 되는 제도라고 도입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 공정거래위의 입법예고안을 보면 동의명령제는 기존의 제도와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악용의 소지가 있다. 우선, 기업이나 사업자 단체의 담합 등 부당공동행위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담합 등은 그 위법성이 행정조치로 마무리해서 안 될 정도로 크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동의명령의 내용에 명칭을 바꿔서 기존 과징금 성격의 벌과금이 부과된다.
기업이 가장 기피하는 조사 대상인 담합을 제외하면서 과징금과 유사한 제재 조치도 함께 부과하도록 돼 있는 동의명령제는 기업 활동에 제약을 가져 올 수 있다. 특히 지나친 과징금을 매기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개입해 기업 활동에 부담을 주어 온 공정위의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우려가 앞선다.
공정위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편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정유 석유화학 은행 보험 인터넷포털 통신 교복 학원 부동산중개업소 등 기업의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현안이 되는 사건에 대해 무차별적인 조사를 해왔다.
공정위 조사는 길게는 1년이나 걸리는데, 조사 후 무혐의 처리되거나 장기간 표류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최근에는 SC제일은행에 대한 8개월에 걸친 집중적인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한 뒤 무혐의 처리했고, 인터넷포털이나 토플을 주관하는 한·미교육위원회에 대한 조사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조사 기간에 대상 기업이 받는 업무 손실과 스트레스를 고려하면 조사 대상 선정은 신중히 하고 일단 조사를 하면 철저하고 엄격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의 그간 활동을 보면 기업의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업무영역 확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국민의 정부 때는 인원이 줄었던 공정위가 현 정부 들어서는 25%나 늘었다.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 성향인 우리 사회의 현안 이슈에 대해 뚜렷한 기준 없이 위원장의 지시 한마디에 개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대통령이 전원 임명하도록 돼 있는 공정위의 위원 선임 방식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원비처럼 한참 논란이 되는 사회 이슈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동의명령 개시 후 공정위가 기업에 자발적 시정조치를 종용하여 받아들인다면 기업으로서는 사후에 냉철한 사법부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동의명령제를 도입하려면 담합 등도 포함시키고 벌과금 부과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16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번호 |
제목 |
날짜 |
---|---|---|
206 | [유호열] 남북 주민접촉은 투명해야 한다 | 07-09-06 |
205 | [강경근] 벌거벗은 국정원장 | 07-09-05 |
204 | [김영봉] 이 정도 의혹이 ‘깜’ 이 안된다고? | 07-09-03 |
203 | 발전도 균형도 놓친 ‘균형 발전론’ | 07-09-03 |
202 | [남성욱]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선 정상회담 | 07-08-30 |
201 | [비평 2007 가을호 특집] 21세기 국가비전 “대한민국 선진화의 길로” | 07-08-30 |
200 | [김형준] 한나라가 집권 7부능선 넘었다고 ? | 07-08-29 |
199 | [이인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자 | 07-08-27 |
198 | [강경근] 民心을 사는 대선후보 되길 | 07-08-27 |
197 | [이창원] 폐지해야 할 것은 국정홍보처다 | 07-08-27 |
196 | [황성돈] 참여정부의 전자정부사업 성과 | 07-08-24 |
195 | [김영봉] 학력위조 동정할 일 아니다 | 07-08-23 |
194 | [이창용] 채권소매시장 육성 정부가 나서라 | 07-08-22 |
193 | [남성욱] 정치 태풍으로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 | 07-08-22 |
192 | [강경근] '취재 봉쇄' 는 위헌이다 | 07-08-22 |
191 | [박영범] 동의명령제 도입 취지와 문제점 | 07-08-21 |
190 | [이인실] 미국발 금융위기의 교훈 | 07-08-20 |
189 | [신도철] 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 07-08-20 |
188 | [이창용] 증시, 멀리 보는 사람이 웃는다 | 07-08-20 |
187 | [강경근] 광복 62년, 자유민주주의 건국 59년 | 07-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