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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요란한 정상회담, 국민은 차분하다
 
2007-08-16 09:31:48

요란한 정상회담, 국민은 차분하다
 
유호열 (한반도선진화재단 남북문제팀장,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8월28∼30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에 가장 놀라고 당황한 측은 한나라당과 당 대선 예비후보들이다. 얼마나 혼란스러웠던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시기·장소·절차가 모두 부적절한 남북정상회담에 반대한다”고 했다가, 몇 시간 만에 사실상 정상회담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대선 예비후보들이 참여한 긴급대책회의 후 “매우 부적절하지만 개최키로 한만큼 실질적 회담이 되도록 북핵 폐기, 핵 폐기 없는 평화선언 논의 반대, 인권 문제 및 국군포로 송환, 그리고 회담 투명성 등 4개항을 요구”키로 당론을 바꾼 것이다.
 
당혹스럽기는 경선을 앞둔 당내 대선 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줄곧 당내외 지지율 1,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캠프별 긴급회의를 소집하며 대책 마련에 부산했다. 좋게 말해 신중하고 실제론 여론의 향배를 주시하며 곧 있을 당내 경선과 연말 본선에서의 득표력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느라 분주했다.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한 조건부 수용 의사를 밝혔을 뿐 보다 분명하고 소신있는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부산하다 못해 호들갑스럽기는 범여권 정당들과 출마 의사를 밝힌 대선 예비주자들도 별 차이가 없다. 민주신당, 열린우리당, 민주당, 민노당 등 각양각색의 정당은 저마다 햇볕정책의 계승 정당으로 인정받아 대선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 7년여 만에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을 경쟁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와 정상회담 파급 효과의 극대화를 꾀하는 거의 모든 여권 주자들은 앞다퉈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각자의 역할 홍보에 여념이 없다. 지리멸렬하던 범여권에 모처럼 생기가 돌고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평화 대통령’의 꿈에 한껏 고무됐다. 레임덕에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또다시 국내외 주목을 받으며 퇴임 시까지 정국을 주도할 자신감에 차 있다.
 
우리 민족끼리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번영, 조국통일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만 합의한 남북정상회담이 일시적이나마 메가톤급으로 국내 정국을 강타한 것은 정상회담이 괴물처럼 과도하게 상징화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한 방’이면 경선이든 본선이든 대통령이나 국방위원장 마음대로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란 검증되지 않은 믿음 때문이다. 칼등을 쥔 야당으로서는 정상회담의 북풍이 불면 대선 정국이 보혁의 양대 구도로 바뀌어 자칫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을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범여권은 정상회담을 통해 사분오열된 전열을 통합하고 본선에서 평화 대 반평화의 대결구도로 승부하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한마디로 야당은 지레 겁먹고, 범여권은 김칫국부터 마시는 형국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도 선거 득표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발표 후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반짝 상승했으나 만 하루도 못 돼 국민의 반응이 놀라우리만치 차분해졌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환영하고 있으나 불투명한 성사 과정과 불명확한 의제 등에 대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상회담 그 자체보다는 회담의 결과를 보고 평가하겠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나 국민의 입장이다.
 
남북관계 변화만으로 지지 정당과 후보를 바꿀 유권자도 그리 많지 않다. 한 번 속았으면 됐지 두 번 속지는 않겠다는 것이 민심이다. 임기 말임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차기 정부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라는 현 정부에 대해 “너나 잘 하세요”라는 것이 또한 민심이다. 우리 국민의 안목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노 대통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은 알아야 할 것이며 여야 정치인 특히 대선 주자들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8월 11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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