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14 13:22:00
철밥통과 보은 인사의 만남
이창원(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위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요즘 세종로나 과천 관가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요약하면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언론과 한나라당·민주당 등 야당이 일제히 ‘작은 정부’를 주장하면서 부처 통·폐합과 공무원 감축을 외치지만 일단 12월 1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신임 총리나 장관 하마평이 돌기 시작하면 ‘작은 정부’ 주장은 바로 물 건너 간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주장은 각 유력 대선 주자 캠프에 총리 후보가 최소 10명, 장관 자리 하나에 대략 10 내지 20여명의 후보가 포진하는 상황에서 “장관 자리를 하나라도 늘려야지 어떻게 정부 부처의 숫자를 줄일 수 있겠나?” 하는 이야기까지 첨언이 되면 정말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 같은 논리는 관료들에게는 참 한가롭고도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이야기라는 것이 그들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라는 것이다. 참여정부만 제외하고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역대 정권은 매번 정부기구 축소를 통한 ‘작은 정부’를 표방해 왔지만 그러한 약속은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었다는 측면에서 그들 철밥통 관료들의 지혜는 정말 빼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러한 철밥통 관료들의 확신을 더욱 강화시켜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요인은 ‘어떠한 대통령도 보은(報恩) 인사 관행을 뿌리칠 수 없다’는 확신일 것이다. 역대 정권의 마지막 해에 보면 보은 인사 관행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대선을 단지 4개월, 임기를 6개월 정도 남긴 상태에서 법무부 장관 등을 경질한 이번 개각이 실질적 국정 마무리를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차기 총선 등에 대비한 경력 관리를 위해 정권 말기에 벌이는 ‘마지막 보은 인사’로 보는 분석이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보은 인사의 관행을 깨지 못하면 정부기구 축소를 통한 공공 행정의 효율성 제고, 규제 철폐를 통한 경제 활성화 제고를 가능하게 하는 ‘작은 정부’는 물 건너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철밥통 관료들과 보은 인사의 이러한 만남은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 장·차관 등 정무직의 경우 현정부가 출범한 2002년엔 106명이었지만 지금은 136명으로 늘어났다. 장관급이 7명, 차관급이 23명 증가한 것이다. 집권 4년간 공무원 인건비 75조원은 직전 ‘국민의 정부’ 5년간의 전체 인건비를 이미 상회하고 있다. 정부 규모를 늘린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유수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의 세금 부담은 2002년 24조9000억원에서 2006년 39조5000억원으로 60% 가까이 늘어났다. 세금증가율이 소득증가율(22%)의 2.6배나 되어 참여정부가 ‘세금공화국’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럽형 환자’였던 영국과 독일,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일본이 정부 혁신을 조직과 인력의 대규모 감축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과 대조적으로 참여정부의 독불장군식 방만한 정부조직 운영이 빚은 결과이다. 이런 식의 정부조직 운영으로는 이제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참여정부 4년6개월의 교훈임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앞으로 대선주자들이 정부조직 운영에 대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역대 정부의 오랜 관행인 ‘철밥통 관료 집단과 보은 인사’에 대해 명확하게 본인의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8월 8일자 조선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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